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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중재 1세대'로 알려진 김범수 KL파트너스 대표변호사(연수원 17기)는 <블로터>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경제가 이렇게 발전하지 않았더라면, 국제중재 분야 발전도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0년대 김영삼 정권의 외환 자유화, 외환위기(IMF)를 거치면서 한국경제는 세계 경제에 편입되는 산통을 겪었지만, 결론적으로 국내외 거래·투자의 활성화라는 도약을 일궈냈다. 이러한 변화는 한국의 국제중재 분야가 발돋움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변호사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해외기업에 자문하고 국내외 기업 간 분쟁 등에서 법률대리를 맡는 경우가 점점 많아진 것이다.
1970~1980년대에도 국내에 진출하는 해외기업이 있었기에 국내기업과 분쟁 가능성이 있긴 했다. 하지만 국내기업이 해외기업에 맞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했을뿐더러, 국제중재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았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이와 같이 법률시장이 변화를 맞이하던 2000년대 초, 김 변호사는 법무법인 세종에 입사하면서 국제중재 분야에 들어섰다. 그는 세종에서 국제중재팀을 이끌며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2015년 그는 국제중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세종을 나와 KL파트너스를 설립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로펌 베이커맥켄지와 한미 합작법무법인 '베이커맥켄지 앤 케이엘파트너스'를 출범시켰다. 한국 최초의 한미 합작법무법인이다. 새로운 전환점에 선 김 변호사를 만나봤다.
"한국법·외국법 법률 자문으로 차별성...관건은 서비스 질 유지"
-한미 합작 법무법인을 설립한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기업들은 현실적으로 외국과의 거래가 아니면 먹고 살 방법이 많지 않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천연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 상품이나 서비스를 판매해 돈을 버는 비즈니스 모델밖에 없다. 그런 업무를 하려면 외국 변호사가 필요하다. 실제로 국내기업과 로펌에 많은 수의 외국 변호사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수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봤을 때 앞으로 분명히 외국 로펌과의 합작법무법인에 대한 필요성을 느낄 것으로 생각해 준비하고 있었다.
-해외 로펌 중 왜 '베이커맥켄지'인가.
△1949년에 설립된 베이커맥켄지는 1970년~1980년대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들을 대리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한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높은 곳이다. 약 20년 전부터는 한국에서 직접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크로스보더(crossborder) 분쟁 및 거래를 잘하는 한국 로펌을 찾다가 KL파트너스와 접촉하게 됐다.
KL파트너스는 전문성과 경험에 기반한 법률 서비스를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공해 왔다고 자부하는데, 이러한 점을 베이커맥켄지에서 높게 평가한 것 같다. KL파트너스 입장에서도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합작법무법인을 만들면서 고민이 있었다면.
△KL파트너스, 베이커맥켄지는 사실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이지만 중요한 건 사람이다. 좋은 구성원들을 그대로 유지해 잘 끌고 가려면 어떻게 대우를 해줘야 할지 고민이 있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같이 사는 거니까 서로에 대해 확신을 갖는 것도 중요했다. 함께 협의하고 양보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1년 7개월이 걸렸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다른 두 문화가 합쳐졌으니 자연스럽게 이견이 생길 수밖에 없다. 때론 굉장히 긴장감이 있지만 양보도 하고 이해하면서 맞춰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합작법무법인의 차별성은 무엇인가.
△합작법무법인은 한국에 설립된 한국 법인이기 때문에 한국법을 바탕으로 자문을 제공할 수 있고 외국법과 관련된 서비스도 가능하다. 반대로 합작법무법인이 미국에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다. 원스톱 서비스(one stop service) 제공자로서 법률시장의 필요한 수요를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객들이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업무 역량을 더 잘 알릴 예정이다. 다만 '외국법자문사법'에 따라 한국법원에서 진행하는 소송 업무의 경우, 합작 참여자인 KL파트너스 이름으로 수행한다.
-합작법무법인이 법률시장에서 자리 잡기 위한 관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서비스 질을 유지하는 것이다. 베이커맥켄지라는 이름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법인이 성장하려면 최선을 다해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훌륭한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확장할 생각도 있다.
9년간 판사 생활...WTO 사건 계기로 국제중재 업무 뛰어들어
김범수 변호사가 처음부터 국제중재 업무를 한 건 아니었다. 김 변호사는 1988년 판사로 법조계에 발을 들였다. 그는 9년 뒤 법복을 벗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곳에서 '통상법'을 접하고 흥미를 갖고 들었는데, 이는 법무법인 세종에서 세계무역기구(WTO) 분쟁 사건을 맡게 된 계기가 됐다. 유럽연합(EU)이 '한국의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불법적인 보조금 지급'이라며 한국 정부를 WTO에 제소한 사건이었다. 당시 한국 정부를 대리한 세종이 승소했다.
김 변호사는 국제중재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세계적인 로펌 평가기관인 영국 체임버스 앤 파트너스의 'leading lawyer'(Eminent Practitioner/Chambers & Partners Asia-Pacific)에 선정되는 등 다수의 수상 이력도 갖고 있다.
-WTO 사건을 변호사 경력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국내 로펌 최초로 공동변호인으로 참여한 사건이었다. 외국 로펌을 뒤에서 지원하는 역할이 아니라 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는 의미다. 세계 법정에서 우리나라를 위한 기회를 갖는다는 게 자랑스럽고 명예로운 일이었다.
-론스타, 메이슨 캐피탈과 한국 정부 간 국제중재 사건 등도 맡았다. 김 변호사가 대리한 론스타, 메이슨 캐피탈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왔는데, 특히 노력을 기울인 작업은 무엇이었나.
△론스타 건의 경우, 당시 한국 변호사들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금융위원회 문서를 평가·분석하고 결국 국가의 불법적인 개입이 있었다는 시나리오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 작업을 주로 우리 팀에서 맡았는데 금융위 문서를 영어로 번역했을 때 한국말과 다른 뉘앙스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경우가 있었다. 문서를 제대로 분석해 공동변호인인 외국 로펌 측에 적절한 의미를 전달해야 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소통하고 토론했던 게 굉장히 인상에 남는다.
또 한국팀 입장에서 부끄러운 내용의 정부 문서를 보게 되면, 아무리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고 있더라도 어떻게 전달하는 게 맞을지 고민에 빠지게 되더라. 결국 잘 정돈해서 전달했지만, 실무진들끼리 수없이 논의해야 했다.
-최근에는 아시아 지역에서 국제중재 판정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싱가포르에서 국제중재 허브를 만들면서 변화가 생겼다.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 등에 있는 중재기구로 갈 수도 있지만, 시차와 비용 부담 등의 어려움이 있다. 지금은 아시아 기업과 서양 기업 간의 중재 등은 싱가포르에서 하는 게 편하다는 인식이 있다. 결국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제중재 사건은 마무리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 힘든 점은 없나.
△국제중재에서 히어링(중재심리)은 매 순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피로도가 높다. 짧으면 5일, 길면 2주 동안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대면 심리를 한다. 중재 판정부 질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답을 할지 밤새 고민해 자료를 만든다. 그리고선 아침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료를 제출한다. 그때는 하루에 2시간 자면 많이 잔다고 할 정도로 전쟁이다.
그런데 변호사에게는 항상 최선을 다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최상의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절대적인 가치가 있지 않나. 이를 위해 평소에 체력 유지에 신경을 많이 쓴다. 변호사 업무를 3D 업종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체력이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없다면 훌륭한 변호사로 성공하지 못한다. 그래서 변호사 스스로 잘 가꾸고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대한상사중재원(KCAB) 중재인 등 외부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외부 활동은 단순히 마케팅의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 법률가들과 교류하고 그 업무에 참여하면서 관련 업무의 발전과 변화 방향, 향후 지향점들을 논의한다. 대한민국 변호사들도 세계화된 법률시장의 당당한 일원으로 참여하고, 때로는 그러한 발전을 선도하는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합작법무법인과 관련해 말하자면 현재까지는 국제분쟁, 회사법 및 인수합병(M&A), 에너지 프로젝트 관련 사안 등의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 하지만 그 외 분야에서 고객들이 요청하는 서비스 제공이 긴요한 상황이라 시급성을 느끼는 관련 서비스를 계획하고 있다. 조만간 해당 분야로 업무 확대가 가시화될 것이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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