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공매도 엇갈린 판결] 과징금 산정 기준에 공통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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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공매도 엇갈린 판결] 과징금 산정 기준에 공통점 있었다
자본시장 사건파일공매도는 개미들에게 언제나 공공의 적이었다.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공매도가 언제든 내 주식을 향할 수 있다는 불안은 투자를 망설이게 했다. 막강한 자본력의 기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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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공매도는 개미들에게 언제나 공공의 적이었다. 주가가 떨어져야 돈을 버는 공매도가 언제든 내 주식을 향할 수 있다는 불안은 투자를 망설이게 했다. 막강한 자본력의 기관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왔다는 오랜 분노도 함께였다. 이런 여론을 의식한 금융당국은 불법 공매도를 뿌리 뽑겠다며 징계 철퇴를 휘둘렀다. 그런데 이에 맞선 금융사들의 줄소송을 두고 법원이 엇갈린 판단을 내놓고 있다. 당국과 금융사 사이의 치열한 법정 다툼은 지금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각 판결문에 담긴 천차만별 공매도 사례와 불법의 경계선을 톺아본다. <편집자 주>
'불법 공매도 과징금을 취소해 달라'는 금융사들의 잇따른 불복 소송에서 금융당국이 한 차례 승소, 두 차례 패소했다. 결론은 엇갈렸지만 공통적으로 금융사 자체의 행위로 발생한 공매도에 한해 과징금 산정 기준에 넣으라는 취지의 판결이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사들의 불법 공매도 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이들로부터 매도 요청을 받은 증권사 등 제3자가 실수한 주문까지 과징금 산정에 반영된 경우 법원은 당국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단했다.
현재 다른 금융사들도 과징금 산정이 부당하다며 소송을 제기하는 가운데 다음에도 비슷한 취지의 판례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1월 퀀트인자산운용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에서 증선위 승소 판결을 했다. 비슷한 취지로 케플러 슈브뢰, ESK자산운용이 제기한 소송에서는 증선위가 패소했다.
모두 실수에서 비롯된 사건들이었다. 케플러 슈브뢰 사건의 경우, 케플러 측은 A펀드 계좌의 주식 2만9771주에 대한 매도주문을 하려다 B펀드를 통한 매도 요청을 하고 말았다. 이후 증권사는 총 4만1919주에 대한 매도주문을 제출했고 최종적으로는 2만9771주에 대한 매도계약이 체결됐다. 증선위는 케플러 측이 소유하지 않은 주식 4만1919주를 매도주문했다고 보고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케플러 측이 위반한 행위는 주식 2만9771주의 매도를 위탁한 것"이라며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위법한 공매도 위탁이 발생한 사실을 인정했다. 하지만 증권사의 초과 매도 주문은 케플러 측이 예측하기 어려운 사정이었다. 이에 증선위가 증권사의 매도주문 금액까지 기본 과징금 산정의 기준 금액으로 삼은 것은 적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박성남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변호사는 "케플러 측이 B펀드를 통해 매도 요청을 한 실수가 있었고, 실수한 2만9771주에 대해서는 공매도를 인정했다"며 "다만 이를 넘어 증권사가 낸 매도주문(4만1919주)에 대한 공매도 책임은 물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사 자체의 행위로 볼 수 없는 부분까지 과징금 산정 기준으로 고려해선 안 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이러한 취지는 ESK자산운용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재판부는 제3자인 중개 업체 실수로 취소됐다가 다시 호가가 제출된 주문의 경우 ESK자산운용의 귀책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ESK자산운용의 주문 금액에 중개 업체가 중복 제출한 것까지 더해 과징금 액수를 산정한 증선위 처분은 위법하다고 했다.
김다정 라이크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위 두 건의 판결은 공통적으로 고의, 과실의 판단 이전에 금융사의 공매도 '주문' 행위 자체가 있었는지 여부에서 쟁점이 존재했던 경우"라며 "금융사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주문 행위를 걸러야 하는데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 주문을 과징금 기준 금액에 포함한 처분에 잘못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반대로 증선위가 승소한 퀀트인자산운용 사례에서도 자사 직원의 착오로 발생한 매도주문에 대해서는 공매도를 인정했다. 과징금은 그 범위를 기준으로 산정됐으며 처분은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이 소송들은 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그 취지에 따라 과징금 액수가 재산정된다. 김 변호사는 "금융당국은 판결에 따라 중복 또는 초과 산정된 수량을 제외하고 다시 과징금 액수를 산정해 재처분을 하게 될 것"이라며 "이런 점에 비춰보면 케플러, ESK자산운용 측이 1심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전부 승소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회색 지대' 생기지 않도록 가이드 필요
현재 또 다른 금융사들이 제기한 과징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변호사들은 앞으로 진행될 재판에서도 기존의 법원 판단이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박 변호사는 "세 건의 판결 모두 비슷한 취지의 결론을 냈고 공매도 여부와 공매도 인정 수량에 대해 유사한 판례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금융 실무를 고려해 공매도 책임 인정 범위를 제한했다는 점에서 타당한 결론이라고 본다"고 했다.
다만 관련 판례가 더욱 축적될 필요는 있다고 했다. 박 변호사는 "위 판결들은 공매도에 관한 선도적 판례이고 아직 정리가 안 된 부분이 많이 남았다"며 "예를 들어 매도, 매수 방식이 다양한데 유형별 공매도 사례가 대법원 판례로 정리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 이 과정에서 법적 회색 지대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점이 증권 시장에 불필요한 위험 요소가 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가이드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부연했다.
금융당국의 과징금 산정 기준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김 변호사는 "당국은 단순히 과실을 과징금 액수 산정에서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금융사 등 피조치자에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주문 행위 자체가 있었는지 유의해 징계 처분을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사들도 대응 방향을 설정할 때 케플러 등의 경우처럼 제3자의 귀책 등이 가미돼 피조치자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주문 건이 있는지 집중해 살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