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O 리포트] 롯데손보 후순위채 사태…자율과 통제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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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롯데손보 후순위채 사태…자율과 통제의 충돌
사모펀드 대주주 이익과 금융당국 감독권 갈등조기상환 유혹에 금융당국은 건전성 악화 경고투자자 보호 외치지만 자본확충 부담 벗어나야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이 금융감독원의 강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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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대주주 이익과 금융당국 감독권 갈등
조기상환 유혹에 금융당국은 건전성 악화 경고
투자자 보호 외치지만 자본확충 부담 벗어나야
롯데손해보험(이하 롯데손보)이 금융감독원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하려던 900억원 규모의 후순위채 콜옵션(조기상환권) 강행계획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초 롯데손보는 물러설 뜻이 없었지만 금감원의 강경한 반대로 하반기 자본확충 추진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은 보험업 감독규정상 지급여력비율(K-ICS)을 충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콜옵션 행사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롯데손보는 감독규정 완화가 예정돼 있고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조기상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손보 대주주가 사모펀드(JKL 지분 77.04%)일 뿐 아니라, 전직 금융관료 출신의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로 구성된 ‘지배구조’ 특성이 감독당국에 맞설 수 있는 배경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규제당국 의지에 반하는 롯데손보의 행보가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었지만 롯데손보 측이 일단 금감원 입장을 수용한 것으로 보인다.
후순위채는 발행사의 재무상태가 악화될 경우 다른 채권보다 변제 순위가 밀리는 자본성 증권이다. 보험사는 K-ICS 비율 관리를 위한 보완자본 확충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다. 발행사는 만기 전에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이는 엄격한 감독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가능하다. 보통 만기는 10년이나 5년 경과 시점에 콜옵션을 행사하고 다시 발행하는 방식으로 운용한다. 5월 8일 콜옵션 행사 기간이 도래한 롯데손보 후순위채 역시 2020년 5월 10년 만기로 발행한 것이다.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으면 채권금리는 기존 5%에서 6.08%로 상승하는 스텝업(Step-Up) 조건이다.
금감원이 콜옵션 행사를 반대하는 핵심 이유는 롯데손보의 K-ICS 비율이 보험업감독규정 제7-10조5항에서 요구하는 150% 이상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2024년 말 기준으로 ‘예외모형’을 적용해도 K-ICS 비율은 154.59%로 가이드 라인을 겨우 충족하는 수준이고 올해 1분기 말 가결산 기준으로 후순위채를 상환할 경우 15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무해지·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을 금감원이 권고하는 ‘원칙모형’으로 적용하면 지난해 말 K-ICS 비율이 127.4%로 크게 낮아져 감독당국이 우려하는 것이다.
또한 롯데손보가 후순위채 상환에 일반계정 자금을 사용할 방침이라는 점도 금감원은 문제 삼았었다. 보험계약자가 선순위 채권자인데 회사 운영자금을 후순위채 상환에 사용하는 것은 ‘보험계약자 우선 원칙’을 위배한다는 입장이다. 롯데손보는 일반계정 자금 사용이므로 계약자 자산에는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금감원은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2월에도 금감원은 증권신고서 기재 미흡을 이유로 1000억원 규모의 롯데손보 후순위채 발행을 자진 철회시킨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롯데손보가 자사에 유리한 내용만 기재하고 자금차입 계약서의 기한이익상실(EOD) 위험 등 투자에 필수적인 정보를 제대로 공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후 외부 자본 확충이 어려워지자 롯데손보는 일반계정 자금을 통한 조기상환을 추진했고 이에 금감원이 K-ICS 비율 저하를 이유로 다시 제동을 건 것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K-ICS 비율이 조기상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콜옵션을 강행하려는 롯데손보의 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세훈 수석부원장도 유상증자나 자본증권 발행 등 추가적인 자본확충이 없을 경우 분기 결산 이후 후속 조치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보험계약자와 채권자 보호를 위해 롯데손보가 건전성 회복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롯데손보가 내세웠던 콜옵션 행사 명분은 투자자 보호와 금융시장 안정이었다. 발행 당시부터 콜옵션 행사 계획을 공지했고 자본력이 충분해 조기상환 이후에도 재무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콜옵션 행사가 선제적 리스크 관리이자 효율적인 자본관리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현재 채권자들과 실무협의가 진행 중이며 수일 내로 상환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지난 2월 차환을 위한 후순위채 발행계획이 금감원의 반대로 무산된 데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금감원이 수요예측 하루 전에 정정신고를 요구하고 발행 조건을 강화해 발행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이번 갈등은 ‘통제와 규칙’에 기반한 감독과 ‘자율과 신뢰’에 기반한 시장의 가치가 충돌했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금감원은 감독규정상 K-ICS 비율 150% 이상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 롯데손보의 콜옵션 행사가 부적절하다고 본다. 반면 롯데손보는 시장 관행과 채권자와의 약속 이행을 통한 신뢰 유지를 강조한다. 더구나 3분기부터 관련 규제 완화가 예정돼 있고 현재 자본력으로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같은 충돌은 양측 모두에게 부담을 초래할 수 있다. 롯데손보는 금감원 제재, 신용등급 하락, 자본조달 어려움 등의 부정적 영향을 감수해야 하며 한국예탁결제원이 상환 요청을 거부할 경우 콜옵션 행사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현실적 상황을 고려해 조기상환을 보류한 것이다. 반면 금감원 역시 롯데손보의 재무상황이 예상보다 악화되지 않는다면 규제의 정당성과 일관성에 대한 비판을 받을 수 있다. 또 콜옵션 행사와 관련한 감독 리스크가 롯데손보 자본확충뿐 아니라 다른 보험사들의 자본증권 조달전략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시장 자율성을 과도하게 억누른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롯데손보의 강경한 대응 이면에는 사모펀드(JKL)의 단기 수익 지향적 특성과 함께 금융당국 출신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지배구조의 영향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현재 롯데손보는 사내이사로 최원진(전 기획재정부 서기관)뿐 아니라 박병원(전 재정경제부 차관), 이창욱(전 금융감독원 국장) 등 전직 금융당국 출신 인사들을 사외이사로 두고 있으며, 지난해까지 신제윤(전 금융위원장), 성대규(전 금융위 과장, 전 신한생명 대표) 등도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보험사뿐 아니라 금융업계 전반에서 금융당국과 원활한 소통 및 정책 대응을 위해 관료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경우가 많다. 롯데손보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들을 영입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콜옵션 강행 과정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불필요한 오해나 갈등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작년 롯데손보의 무해지·저해지 상품 해지율 ‘예외기준’ 적용 논란에 이어 이번 콜옵션 강행 갈등은 감독당국의 권위와 시장 자율성 간의 조화 문제를 다시금 부각시켰다. 금감원은 보험사의 건전성과 계약자 보호를 핵심 책무로 내세우며 롯데손보는 투자자와의 약속 이행과 시장 신뢰 유지를 강조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금융규제가 현실과 괴리되었거나 감독당국이 시장 참여자와 충분히 소통하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발전을 위해 보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규제기준을 마련하고 시장과 긴밀히 소통해야 한다. 아울러 금융기관은 업의 본질과 규제 현실을 직시하며 정직하게 대응하고 책임 있는 경영에 임해야 한다. 롯데손보 사태는 금융시스템의 안정과 신뢰 유지를 위해 ‘감독당국의 권위와 시장의 자율성’, ‘현장 관행과 규제 원칙’이 어떻게 균형을 이뤄야 하는지를 되묻는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