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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경영권 '수 싸움' 새 국면…'깜짝 등장' 9000억대 지분 '캐스팅보트'
사모펀드에 수년째 묻혀 있던 9000억원대의 한진칼 지분이 한꺼번에 풀리게 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수 싸움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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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에 수년째 묻혀 있던 9000억원대의 한진칼 지분이 한꺼번에 풀리게 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수 싸움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주식을 야금야금 사들이며 어느덧 조원태 한진 회장에 맞설 정도로 덩치를 키운 가운데, 주인 없는 대규모 지분이 깜짝 등장하며 캐스팅보트 역할을 할지 주목된다.
이미 오너 일가의 내부 분열로 홍역을 치르면서 드러난 한진의 취약한 지배구조를 호반 측이 파고들지 관심이 쏠리는 와중,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한진칼의 주가는 양쪽에게 모두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진칼 주식 9.06% 한꺼번에 풀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2022년 8월 말에 3년 기한으로 설정돼 한진칼 주식을 매입했던 대신자산운용과 유진자산운용의 사모펀드가 오는 8월 말 일제히 만기를 맞는다.
두 펀드가 품고 있는 한진칼 지분은 9%를 웃돈다. 주식 수로는 670만주에 이른다. 대신자산운용이 327만1239주로 4.90%를, 유진자산운용이 277만6307주로 4.16%를 보유하고 있다. 합산 지분율은 9.06%(604만7546주)다.
이 지분의 현재 시장 가치는 9000억원 이상이다. 전날 종가 기준 한진칼의 주가는 1주당 15만원을 기록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한진칼 지분 9.06%의 시가는 9071억원이다. 운용사별로 나눠 보면 대신자산운용 펀드가 4907억원, 유진자산운용 펀드가 4164억원어치를 들고 있다.
해당 펀드들은 3년 전 반도그룹 계열사들이 한진칼 주식을 대거 매도할 때 만들어졌다. 시장에 나온 한진칼 주식을 두고 일부 대기업들의 투자 수요가 맞물리면서 클럽딜 형태로 펀드가 조성됐다.
당시 대호개발과 한영개발, 반도개발은 한진칼의 전체 지분 중 16.10%에 달하는 물량을 하루 만에 털어냈다. 1주당 매각가는 6만2500원으로, 총 6719억원가량이었다. 이들은 2022년 8월 26일에 갖고 있던 한진칼 주식 1136만1000주 가운데 대부분인 1075만1000주를 이 같은 조건으로 장내 매도했다.
조원태 회장 위협하는 호반그룹
공교로운 건 한진칼 지분이 다시 쏟아지게 된 시점이다. 가뜩이나 조 회장을 중심으로 한 한진그룹의 지배구조가 최근 도전을 받고 있어서다. 한진칼은 그룹 지배력의 정점에 있는 지주사다. 대량의 주식이 새 주인을 찾아 나서게 될 상황에 민감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척점에 선 주인공은 호반그룹이다. 한진칼 지분율을 부쩍 확대하며 조 회장과의 격차를 크게 좁혔다. 호반건설과 ㈜호반, 호반호텔엔리조트 등 호반그룹 소속 3개 계열사는 한진칼 지분 보유량을 기존 17.44%에서 이번 달 18.46%까지 확대했다. 조 회장과 특수관계인들을 모두 합한 한진칼 지분율이 올해 1분기 말 20.13%였던 것과 비교하면 차이는 고작 1.67%포인트(p)다.
물론 당장 지배구조가 흔들릴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한진칼과 투자계약으로 묶인 KDB산업은행의 지분이 조 회장 편에 서 있어서다. 산은의 한진칼 지분율은 10.58%다. 이를 포함한 조 회장 측의 한진칼 지분은 3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가장 최근 공시로 확인할 수 있는 조 회장과 특별관계자들의 한진칼 지분율은 지난 4월 22일 기준으로 30.54%다.
그래도 만에 하나 그동안 사모펀드에 묶여 있던 9%대의 지분을 호반 측이 고스란히 가져간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협적인 존재가 될 건 분명하다. 만약 관련 주식을 호반그룹이 그대로 매입할 경우, 한진칼 지분율을 최대 27.52%까지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되면 조 회장 등 한진 오너 일가의 지분율은 여유롭게 제치게 된다. 아울러 산은까지 더한 보유량과 비교해도 갭은 2.5%p 미만이다.
마지막 관문은 미국 델타항공이다. 델타항공이 들고 있는 한진칼 주식 14.90%는 산은과 더불어 조 회장의 우호 지분으로 꼽혀 왔다. 한진그룹 내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동종 업계의 글로벌 기업으로서, 20년 넘게 조 회장 측과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떠오르는 아픈 기억 '남매의 난'
한진그룹은 불과 몇 년 전 실제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더욱이 오너 일가 식구들끼리 등을 돌리는 모습이 연출된 점은 무엇보다 뼈아픈 대목이었다. 조 회장의 누나인 조승연(개명 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으며 이른바 남매의 난이 불거졌다.
반도그룹에서 사모펀드로 넘어갔다가 이번에 다시 시장에 나오게 된 지분도 한진그룹에서 불거진 경영권 갈등의 산물이었다. 반도그룹은 2020년 초 조 전 대한항공 부사장, KCGI와 손을 잡고 조 현 회장에 맞선 이른바 3자 연합의 일원이었다. 그런데 한진칼 지분을 둘러싼 양측의 힘겨루기에서 결국 조 회장이 승기를 굳히자, 갖고 있는 주식을 처분하며 발을 뺐다.
이는 한진그룹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돼 온 불안한 지배구조를 고스란히 노출한 사건이었다. 조양호 선대 회장의 갑작스러운 타계 이후 지분이 자녀들에게 분산되면서, 조 회장이 지배력을 제대로 다지지 못한 탓이었다. 조 회장이 소유한 한진칼 지분은 아직도 5.78%에 그친다. 이어 동생인 조에밀리리(한국 이름 조현민) 한진 사장이 5.73%, 어머니인 이명희 정석기업 고문이 2.68%를 보유 중이다.
이 때문에 한진그룹에서 호반그룹을 주축으로 새로운 경영권 다툼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호반 측은 한진칼 주식 매입 목적에 대해 단순 추가 취득이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고 호반그룹이 마냥 숨을 죽이고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난 3월 열린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 등 이사의 보수 한도를 90억원에서 120억원으로 증액하는 안건에 반대표를 던지면서다. 결과적으로 안건은 74.1%의 찬성률로 통과됐지만, 호반으로서는 조 회장의 연봉 확대에 반대한다는 뜻을 내비친 셈이었다.
'한판 붙나' 소식에 치솟는 주가
문제는 너무 올라버린 한진칼의 주가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늘렸다는 소식이 전해진 후 보름여 만에 1.5배 넘게 치솟았다. 경영권을 겨냥한 지분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주식 가치가 높아질 거란 기대가 깔려 있다. 이대로라면 한진과 호반 양측 모두 지분 싸움을 벌이기엔 부담이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확대했다는 공시가 이뤄진 건 이번 달 12일 장이 마감된 직후였다. 이날만 해도 한진칼 주식은 1주당 8만9200억원에 거래를 마쳤다. 하지만 이후 이틀 만에 주가가 15만원을 돌파했고, 지금까지 비슷한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IB 업계 관계자는 "호반으로서는 현재 주가만으로도 상당한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고, 여차하면 한진칼의 지배권까지 노려볼 수 있는 유리한 위치"라며 "사모펀드 물량이 대거 풀릴 때까지 주가 흐름을 살피며 다양한 선택지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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