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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특히 토종 사모펀드는 죄가 없다

Numbers_ 2025. 5. 2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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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특히 토종 사모펀드는 죄가 없다

사모펀드 제재는 업계 아닌 잘못한 운용사를차입매수, 규제보다 금융사 자율 판단 맡겨야MBK, ‘행동주의 펀드’처럼 움직인 게 큰 잘못국민연금은 지난 3월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고려아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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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펀드 제재는 업계 아닌 잘못한 운용사를
차입매수, 규제보다 금융사 자율 판단 맡겨야
MBK, ‘행동주의 펀드’처럼 움직인 게 큰 잘못

국민연금은 지난 3월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M&A(인수·합병) 논란을 계기로 앞으로는 적대적 성격의 투자에는 참여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했습니다. 국민연금이 특정 사모펀드와 협약을 통해 LP(사모펀드에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로서 출자를 약속했더라도 해당 사모펀드가 적대적 M&A를 시도할 경우 약정한 자금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고려아연·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확산된 사모펀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처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적대적 M&A를 식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고려아연은 진짜 적대적 M&A일까

당장 고려아연 사례만 놓고 봐도 국민연금이나 일반 여론의 인식과 당사자인 MBK의 생각은 크게 다릅니다.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최근 인천공항 입국 직후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출국이 금지되기도 한 MBK 김병주 회장은 연초 기관투자가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영풍의 백기사로서 고려아연의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고 일반주주와 지배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겠다”고 밝혔습니다. MBK의 고려아연 인수 시도가 결코 적대적인 게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사모펀드 업계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러한 인식은 비단 김병주 회장만이 아닙니다.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MBK 김광일 부회장도 “고려아연 딜은 결코 적대적이지 않다. 고려아연 최대 주주인 장씨 측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적대적 M&A는 경영권을 보유한 대주주 또는 이사회 동의 없이 지분 매입이나 이사회 장악을 통해 경영권을 탈취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인수합병을 말합니다. 이때 적대적인지 여부는 세 가지 기준에 따릅니다. 법적으로 기업을 대표하는 최종 의사결정 기구인 이사회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CEO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 마지막으로 대주주의 의사에 반하는 경우입니다. 해당 기업의 이사회가 반대하고, 대주주와 CEO가 모두 반대하는 인수합병이라면 당연히 적대적인 M&A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대적 M&A를 둘러싼 국민연금의 고민

문제는 이 세 가지 조건 중 일부만 충족될 경우입니다. 고려아연의 경우 지난해 경영권 분쟁 발발 당시 영풍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등 장씨 오너 가문의 지분은 33.1%, 최창근 고려아연 명예회장과 최윤범 회장 등 최씨 가문의 지분은 15.9%였습니다. 따라서 고려아연의 지배주주는 지분이 30%를 넘는 장씨 가문이며, 이들이 고려아연의 실질적 주인이라고 보는 게 상식적입니다. 그러나 이사회를 장악하고 CEO를 맡고 있는 쪽은 최씨 가문입니다. 현실에서는 지배주주와 이사회를 장악한 세력이 서로 다를 때 분쟁이 자주 발생하며, 고려아연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런 점에서 지배주주인 장씨 측의 의뢰로 시작된 MBK의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 시도를 일반 여론이나 국민연금이 주장하듯 적대적 M&A라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MBK나 영풍이 거듭 말하듯 고려아연 지분에 대한 공개 매수는 적대적이고 약탈적인 M&A가 아니라 1대 주주인 영풍의 정당한 경영권 행사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고려아연을 둘러싼 적대적 M&A 논란과 여론 악화를 지켜본 국민연금은 향후 적대적 M&A로 판단되는 거래에는 투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민연금은 애초 사모펀드 업계와의 의견수렴과정에서 적대적 M&A를 대주주·이사회·CEO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정의하고, 이 중 두 곳 이상이 반대하면 적대적 M&A로 간주하겠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한 MBK의 오판

이러한 국민연금의 입장에 대해 사모펀드 업계는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특히 CEO가 반대하면 적대적 M&A로 간주한다는 기준에 대해서는 강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모든 CEO는 자신의 거취를 위협받는 M&A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논의 끝에 국민연금은 이사회나 대주주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적대적 인수합병으로 규정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물론 고려아연 사태와 관련해 MBK의 잘못과 전략적 오판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대부분의 국내 사모펀드와 마찬가지로 MBK는 기본적으로 경영권을 확보한 후 경영을 개선해 기업 가치를 높이고, 이후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는 '바이아웃 펀드'(Buyout Fund)입니다. 투자 수익을 얻기 위해 무엇이든 시도하는 행동주의 펀드나 헤지펀드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MBK는 고려아연 딜 과정에서 잇단 공개매수, 주주총회 압박, 경영진 교체 요구, 고도의 여론전 등 행동주의 펀드처럼 움직였습니다.

MBK가 바이아웃 펀드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행동주의 펀드처럼 행동한 것이 결국 많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온 MBK 펀드와 김병주 회장, 김광일 부회장의 실패는 필연적입니다. 두 사람 모두 앞으로 법적으로든 평판 측면에서든 큰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해외 사례를 봐도 바이아웃 펀드는 기본적으로 적대적 M&A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이는 평판 훼손을 우려해서도 아니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때문도 아닙니다. 수익성이 낮고 리스크가 크기 때문입니다. MBK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개입한 것이 향후 국내 기업들의 3~4세 승계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경영권 분쟁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한 탓에 큰 곤경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차입매수를 규제할 때 생기는 일

고려아연·홈플러스 사태를 계기로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새롭게 떠오른 이슈가 바로 차입매수(LBO, Leveraged Buyout) 규제입니다. 이 논의는 MBK가 홈플러스를 인수하면서 7조 2000억 원의 인수대금 중 5조 원 이상을 부동산 등 담보로 금융권에서 차입하고, 이후 거액의 차입금과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알짜 부동산을 연이어 매각하고, 결국 이로 인해 홈플러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기업회생 절차를 신청하게 된 데에서 비롯됐습니다. LBO 규제는 현재 금융위원회가 외부 연구기관과 함께 세부 방안을 검토 중이어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결론이 날 것입니다.

LBO는 사모펀드나 기업이 인수합병을 할 때 자체 자금만으로 거래를 완료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로부터 일부 자금을 차입해 인수하는 방식입니다. 이를 규제하겠다는 것은 마치 개인에게 적용되는 LTV(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DTI(총부채상환비율) 같은 대출 규제를 사모펀드에 적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경우 당연히 여러 문제가 생깁니다.

사모펀드가 M&A를 진행하면서 일부 자금을 차입할 경우 참여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금융회사입니다.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되면 인수금융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금융회사들이 인수금융 참여 여부를 결정할 때 가장 중시하는 것은 사모펀드 자체가 아니라, 사모펀드가 인수하려는 기업의 재무 건전성과 수익성입니다. 예컨대 EBITA(이자·세금·무형자산 상각을 제외한 핵심 영업수익) 등 재무지표를 기준으로 인수금융의 참여 여부를 판단합니다.

이렇듯 금융회사가 자체 기준에 따라 결정하는 영역에 감독기관이 개입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욱이 인수금융을 이용하는 주체는 사모펀드만이 아닙니다. 일반 기업들도 다른 기업을 인수할 때 대부분 인수금융을 활용합니다. 사모펀드만 규제하고 일반 기업의 인수금융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는다면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는 일입니다.

현재도 사모펀드의 차입에 대한 규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현행 자본시장법에서는 토종 사모펀드를 육성하기 위해 순자산 대비 400%의 차입 한도를 두고 있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이러한 규제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에서만 LBO 규제를 강하게 한다면 대형 M&A는 외국계 사모펀드가 독식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모펀드 없으면 구조조정은 누가

고려아연·홈플러스 사태 이후 단기 수익 추구로 인한 기업가치 훼손, 근로자 및 소비자에 부담을 전가하는 문제, 기업 지배구조의 왜곡 등 사모펀드의 역기능이 부각되지만 사모펀드의 순기능도 반드시 함께 봐야 합니다. 사모펀드는 기업의 리밸런싱과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비효율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며, 혁신기업의 성장을 지원하고, 비상장 기업의 상장을 유도함으로써 자본시장 전체를 활성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더욱이 지금 문제가 되는 고려아연·홈플러스 사태는 펀딩 자금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조달하는 MBK라는 특정 사모펀드가 일으킨 사례일 뿐 국내의 다른 사모펀드들과는 무관합니다.

사모펀드는 ‘탐욕의 화신’이 아닙니다. MBK도 그렇습니다. 고려아연 사태에서 MBK의 잘못은 자신들의 정체성인 ‘바이아웃 펀드’의 역할을 망각하고 행동주의 펀드처럼 움직인 데 있습니다. 또 홈플러스 인수의 경우 이커머스(E-Commerce)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지 못한 채 무리한 베팅을 감행한 게 잘못입니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논의할 때는 ‘누가 했느냐’보다 ‘무엇을 했느냐’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업계 전체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잘못을 저지른 개별 운용사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모펀드는 무죄입니다. 특히 토종 사모펀드는 죄가 없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