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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최재원과 배터리…SK의 ‘아픈 손가락’
지분없이 실행력으로 입지 다지는 보기드문 경영자배터리 사업은 곧 ‘최재원 프로젝트’…20년간 올인새 정부 중복 상장에 부정적, ‘배터리 해법’ 안보여요즘 재계에서는 그룹 총수 사후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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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없이 실행력으로 입지 다지는 보기드문 경영자
배터리 사업은 곧 ‘최재원 프로젝트’…20년간 올인
새 정부 중복 상장에 부정적, ‘배터리 해법’ 안보여
요즘 재계에서는 그룹 총수 사후 자녀들 간에 상속법에 따라 동일한 비율로 계열사 지분 등 유산을 나누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총수가 생존해 있을 때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분 상속을 미리 차등화하더라도 지분을 조금이라도 받지 않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데 대단히 예외적으로 지분 상속을 전혀 받지 못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SK 최태원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입니다.
1998년 최종현 회장이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하면서 SK그룹은 경영권 분쟁에 휩싸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SK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회장이 큰 결심을 합니다. 사촌 형제들 가운데 최태원 회장이 가장 뛰어나다며 그룹을 이끌어갈 총수로 추대한 것입니다. 사촌 형제들의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오릅니다. 최종건 회장의 아들인 최윤원, 최신원, 최창원, 그리고 최재원은 모두 상속 포기각서를 씁니다.
그 이전에도 최재원 부회장은 계열사 지분을 취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최종현 회장이 별세하기 4년 전인 1994년 최태원 회장은 현재의 지주사인 SK㈜의 모태가 된 대한텔레콤 지분 70%를 주당 400원에 매입합니다. 이때 여동생인 최기원 씨도 남편과 함께 대한텔레콤 지분 30%를 매입합니다. 대한텔레콤은 나중에 SK C&C가 되고, 이후 SK㈜와 합병합니다. 최기원 행복나눔재단 이사장이 현재 SK㈜ 지분을 6% 이상 보유한 2대 주주가 된 것은, 최종현 회장 생존 당시 대한텔레콤 지분을 취득했기 때문입니다. 최종현 회장은 장남인 최태원 회장과 딸인 최기원 이사장에게는 배려를 했지만 차남인 최재원 부회장에게는 형을 도와 그룹을 키우라는 정도의 뜻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장남과 딸은 배려했지만 차남은 없다
2003~2004년 소버린 사태를 겪으면서 SK그룹과 최씨 가문은 지배구조 강화를 절실히 인식합니다. 최태원 회장은 본인이 1대 주주로 있던 SK C&C를 통해 SK㈜ 지분을 매입했고, 최종적으로는 SK C&C와 SK㈜를 합병함으로써 지배구조 정비를 마무리합니다. 최창원 부회장 역시 SK케미칼, SK플라즈마, SK신텍, SK가스 등을 거느린 지주사 SK디스커버리의 확고한 대주주가 되어 SK그룹 내 사실상의 독립 소그룹을 형성합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분쟁에서 논란이 되긴 했지만, 최태원 회장은 2018년 본인이 보유한 SK㈜ 지분 가운데 5.11%, 약 1조 원어치의 증여를 발표합니다. 경영권을 지키고 그룹 발전을 위해 자신에게 지분을 몰아준 친척들에 대한 보답이었습니다. 이때 가장 많은 지분을 받은 사람이 바로 최재원 부회장이었습니다. SK㈜ 지분 2.4%를 받았습니다. 최태원 회장은 동생에 대한 미안함이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최재원 부회장은 형에게서 받은 지분 가운데 일부를 증여세 납부 등에 사용했고, 현재는 SK㈜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최재원 부회장은 그룹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형에게 지분을 몰아주고 자신은 경영에만 전념함으로써, 실적과 실행력으로 그룹 내 입지를 다지는 길을 택한 재계에서 보기 드문 경영자입니다. 또한 그룹에 위기가 닥쳤을 때는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글로벌 경영 감각과 전략 기획력으로 승부
경영을 뒷받침할 지분이 없는 최재원 부회장은 재계 오너들과 달리 자신의 글로벌 경영 감각과 전략 기획력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소유’가 아닌 ‘실행 기반의 권력’을 추구했습니다. 한때 SK텔레콤과 SK E&S 등에서 능력을 입증했지만 가장 몰입했던 분야는 배터리 사업이었습니다.
SK가 배터리 사업에 진출한 것은 2005년으로,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입니다. 이때 최재원 부회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찍이 배터리 사업을 SK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목했습니다. SK 배터리 사업의 첫 결실은 2010년 현대자동차의 소형 전기 승용차 ‘블루온’에 배터리를 공급한 것이며, 이 시승 행사에 최 부회장이 직접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2013년 펀드 자금 횡령 혐의로 구속되어 수감 중이던 최 부회장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장에게 편지를 보내 배터리가 정유와 석유 사업을 대체할 수 있을 정도의 유망한 사업이라며 독려합니다. 그는 2016년 가석방으로 출소한 뒤 취업 제한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2018년 헝가리 배터리 공장, 2019년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기공식에 직접 참석할 정도로 강한 열의를 보였습니다.
최재원 부회장이 2021년 취업제한에서 풀리자마자 8년여의 경영 공백기를 끝내고 SK온 공동대표에 취임한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SK그룹 내에서 최재원은 곧 배터리 사업을 의미했고, 배터리 사업이 성공하면 이를 발판으로 계열 분리까지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SK그룹에서 배터리 사업은 ‘최재원 프로젝트’로 통합니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4월까지 2년간 SK와 LG그룹 간의 배터리 분쟁이 벌어져 결국 SK가 2조 원을 배상하는 것으로 소송전이 마무리됐지만, SK가 끝까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한 배경에는 배터리 사업이 ‘최재원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재계에서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숙원인 배터리 사업을 맡아 후발 주자인 SK온을 한때 시장 점유율 10% 이상으로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지난해 기준 시장 점유율은 약 4% 수준으로, 중국 기업인 CATL(38%), BYD(17%)와의 격차가 매우 크며 LG에너지솔루션(11%)과 비교해도 크게 뒤처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전기차 수요 정체, 이른바 ‘캐즘’ 현상의 영향으로 실적이 개선되지 않고 있으며, 특히 SK온의 재무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 등 다른 계열사에도 부담을 주고 있습니다.
취업제한 풀리자마자 배터리로 달려가
2021년 말 최재원 부회장의 SK온 대표 취임과 맞물려, 같은 해 10월 SK이노베이션에서 물적 분할돼 독립한 SK온은 출범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3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이며, 누적 적자만 3조 원이 넘습니다. 1분기 말 기준 연결 순차입금은 23조 원을 초과해,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보다 10조 원 이상 많습니다. LG와 삼성은 상장 및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시장에서 조달했지만 SK온은 이러한 방식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대신 고비용의 재무적 투자자(FI) 및 금융권 차입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SK온의 실적 및 재무구조 악화로 인해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까지 충격을 받자 지난해 SK그룹은 현금흐름이 양호한 SK E&S를 이노베이션과 합병했습니다. 동시에 SK온은 SKTI, SK엔텀과 삼자 합병을 단행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현금흐름이 좋은 회사들과의 합병을 통해 ‘캐즘’을 극복할 시간을 벌자는 전략이었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올해 1분기 SK온의 영업손실은 3천억 원을 초과했으며, 현금흐름 역시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배터리 공장 가동률은 40%를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실적 악화가 가속화되자 지난해 6월 최재원 부회장은 SK온 대표이사 자리에서 물러나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재계에서는 이를 문책성 인사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SK온과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의 위기 탈출 방법은 무엇일까요. 과연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SK는 합병에도 불구하고 실적부진에 시달리던 SK이노베이션 CEO를 최근 전격 교체했습니다. 정유와 화학 사업이 부진에 빠진 데다 자금난 타개를 위해 추진했던 SK엔무브 상장도 무산되면서 이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풀이됩니다. 신임 대표이사로는 최태원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최창원 SK수펙스협의회 의장의 최측근이 선임됐습니다. 새 대표는 SK이노베이션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매각 등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배터리는 HBM이 될까 태양광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SK이노베이션이나 SK온의 미래는 여전히 밝지 않습니다. 과거에는 석유화학 경기가 불황에 접어들면 공장 가동률이 떨어짐으로써 업황이 다시 회복되는 식으로 위기를 극복했지만 이제는 중국과 중동 국가들까지 뛰어들면서 이런 구조 자체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배터리 사업의 전망은 더욱 비관적입니다. 제2의 HBM 메모리 반도체가 되기보다는 중국 기업들에 밀려 애물단지가 된 태양광 산업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그로 인해 SK그룹 외의 다른 상장사와의 합병설 등 이런저런 소문이 나돌고 있습니다.
SK온이나 SK이노베이션이 당장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넉넉한 자금 확보가 필수입니다. 재무구조 개선이라는 특명을 안고 출범한 장용호 신임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SK엔무브와 SK온의 상장입니다. 그러나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는 중복 상장, 쪼개기 상장에 대해 매우 부정적입니다.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 추진도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것입니다.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에서 물적 분할해 상장한 전례처럼 SK온이나 SK엔무브도 같은 방식으로 상장을 추진하길 희망하지만 현 상황은 매우 비관적입니다. 그룹 총수와 대표이사가 감옥에 갈 각오를 하지 않는 이상 그런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옵니다. SK온과 SK엔무브는 상장을 전제로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총 4조 원을 유치했고 향후 1~3년 내 이를 상환해야 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그룹의 핵심 축인 에너지 계열이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최태원 회장, 최창원 수펙스협의회 의장, 최재원 수석부회장과 주요 계열사 CEO 등 20여 명은 지난 13~14일 이틀간 경기도 이천 연구소에 모여 경영전략 회의를 열었습니다. SK텔레콤 해킹 사태로 인한 신뢰 회복, 본원적 경쟁력 강화, 중복사업 재편 가속화 등을 강조했지만 핵심은 배터리 사업 부진을 포함한 에너지 부문의 위기 탈출과 리밸런싱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도 업황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하고 유능해도 시절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SK의 배터리 사업이 바로 그런 사례입니다.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20년간 모든 노력을 기울였지만 성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물론 배터리 사업 부진에 대한 전략적 책임은 그가 피할 수 없지만,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 등 다른 경쟁사들 또한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릴 수는 없습니다. ‘최재원 프로젝트’인 SK온의 배터리 사업은 과연 어떻게 끝을 맺을까요. 최재원 수석부회장도, 배터리 사업도 SK 가문의 ‘아픈 손가락’입니다. 과연 SK온은 제2의 SK하이닉스가 될 수 있을까요.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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