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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 이대로 둘순없어…대책 세워야
‘빈 카운터’ 버리고 기술자 중심 회사로
또 결단 미루면 더 이상 기회 오지 않아
삼성전자의 위기는 삼성그룹 전체의 위기입니다. 삼성전자 비중이 워낙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 위기의 시작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려졌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노키아의 혁신과 성공을 이끈 요르마 올릴라 회장에 비견되는 경영자입니다. 창업자의 영향이 절대적인 우리나라에서 삼성의 미래는 이건희 회장의 건강과 직결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IT산업처럼 변화가 빠른 분야에서는 더 그렇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려가 현실이 돼 이건희 회장에게 예상치 못한 유고(有故)가 발생했고, 이게 삼성 위기의 시작입니다.
이건희 회장도 후일을 걱정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회장은 쓰러지기 4~5년 전부터 이재용 이부진 두 사람에게 강도 높은 후계 수업을 시켰고 때로는 경쟁도 시켰습니다. 이부진 사장이 지금은 호텔신라만 맡고 있지만 당시 에버랜드와 삼성물산 경영전략 담당 사장을 역임한 것은 이런 맥락이었습니다.
이건희 회장의 이런 노력은 그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생이고 이 회장이 스카우트 제안까지 했던 대만 TSMC의 창업자 모리스 창 회장은 1931년생임에도 여전히 건강하게 활동 중입니다. 쓸데없는 상상이지만 만약 이건희 회장이 10년만 더 건강했고, 이재용 이부진 두 사람을 더 치열하게 훈련시키고 경쟁시켰다면 삼성은 크게 달라졌을 것입니다.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그룹을 온전히 물려받은 이재용 회장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국정농단 사건’으로 수감과 석방을 반복했습니다. 그 와중에 2017년에는 그룹 컨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됐고 ‘관리와 현상 유지’에 방점을 찍는 ‘사업지원TF’가 들어섰습니다. 또 세대교체와 조직문화 쇄신을 명분으로 60세 이상 최고경영자(CEO) 15명이 한꺼번에 물러났습니다.
경영학자들의 실증 분석에 따르면 기업 매출이 4년 연속 정체되면 퇴출 확률이 8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기업이 5년 동안 정체기를 거치면 70~80%는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10년간 매출이 거의 정체 상태를 보입니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가전 외에 새로운 먹거리와 성장동력을 찾지 못한 결과입니다. 1990년대 말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연간 15% 이상 성장했던 삼성전자 매출이 최근 10년간은 연평균 1%대 성장에 그쳤습니다. ‘삼성전자의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이건희 회장이 자기 파괴, 경계 파괴의 혁신을 통해 설탕과 옷이 아니라 반도체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 것처럼, 애플이 피처폰을 없애고 스마트 폰을 만든 것처럼 지속적으로 혁신해야 했는데 삼성의 혁신 시계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 멈춰서고 말았습니다.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의 위기는 이런저런 수치와 통계로도 입증됐고 삼성 스스로도 인정했습니다. 이제 남은 건 위기를 타개할 해법입니다. 삼성 안팎에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이자 사모펀드 스카이레이크를 창업해 업계 대표 회사로 키운 진대제 회장은 최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위기와 관련해 의미 있는 분석과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삼성이 파운드리까지 1등을 하기에는 무리다. 메모리를 잘하고 있는데 첨단 파운드리까지 잘하겠다고 하면 누가 지켜보기만 할까. 파운드리 사업은 분리하거나 포기하는 게 낫다. 이건희 회장은 조직을 늘 긴장하게 했고 늘 기술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을 좌지우지한 것은 ‘기술자들이 아닌 사람들’이다. 삼성은 지금 과거의 치열한 회의 문화와 정보 공유, 추진력이 없어지는 등 관료화됐다. 회사는 총수의 생각에 따라 기업문화가 만들어지고 움직이는데 지금처럼 총수가 발목이 잡혀 침울해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진대제 회장의 분석을 요약하면 삼성전자 위기의 원인은 파운드리, 재무·관리통 중심의 인사와 조직문화,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 등 3가지로 요약됩니다. 당연히 해법도 여기서 찾아야 합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최근 펴낸 2023년 보고서에서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해 ‘컨트롤타워’를 재건하고, 조직 내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는 장막을 제거하며, 최고경영자의 등기 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혁신적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진대제 회장의 제언과 준감위 보고서를 참고하면 대충 삼성 위기의 해법이 나옵니다.
먼저 파운드리 이슈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재용 회장이 “우리는 파운드리 사업의 성장을 갈망하고 있다”고 <로이터>에 최근 말함으로써 당장은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을 접거나 분사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전문가들도 TSMC와 격차가 계속 확대되고 연간 조 단위의 적자를 내긴 하지만 세계시장이 TSMC 단일 체제로 가는 건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위축되지 말고 투자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진대제 회장처럼 파운드리 사업을 분사하거나 아예 접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삼성전자처럼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은 종합 반도체기업(IDM) 인텔은 최근 파운드리 사업 분사를 결정했습니다. 자금 조달을 쉽게 하고 고객의 신뢰를 높여 수주를 늘리기 위해서입니다.
파운드리 사업의 분사 또는 철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삼성이 메모리와 파운드리를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칠 수도 있다고 걱정합니다. 특히 천문학적 시설투자(CAPEX)가 부담입니다. 삼성전자는 연간 반도체 투자에 총 40조~50조원을 쓰는 데 비해 TSMC는 파운드리 한 곳에만 40조원 이상 투자합니다. 파운드리 하나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 투자는 TSMC의 절반에도 못 미칩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늘 비용 절감을 강조하게 되고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에 대한 투자까지 제한받아 결국엔 R&D 투자 역량 약화와 전문인력 유출로까지 이어집니다.
파운드리 사업의 철수나 분사는 결코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업 분사만 해도 그룹 지배구조 이슈와 연결되고,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재판을 받는 등 트라우마가 있는 이재용 회장 입장에서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들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파운드리 사업을 계속 끌고 갈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파운드리 사업 철수나 분사에 비해 다른 해법들은 이재용 회장이 결단만 내리면 상대적으로 쉽게 풀 수 있습니다.
‘반도체 제왕’ 인텔이 1968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은 이른바 ‘빈 카운터’(Bean Counter, 콩알 세는 사람, 재무회계 및 관리 전문가)들이 회사를 지배한 것도 큰 원인입니다. 이들은 오로지 비용 절감만 강조했고 이로 인해 R&D 인력들은 뒷전으로 밀려났습니다.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그룹도 인텔과 똑같습니다. 그룹 사업지원TF와 경영지원실 파트가 그룹과 회사를 지배했습니다. 기술 담당 및 생산인력 등 회사의 핵심 역량 조직이 지원 부서 같은 보조역량 조직에 밀리고 포위당하면 회사의 미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빈 카운터들은 오너의 눈과 귀를 막았습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현재의 위기 상황이 이재용 회장한테 제대로 전달되는지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삼성은 더 이상 이씨(李氏)의 회사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입니다. 준법감시위원회 지적처럼 조직 내 원활한 소통을 방해하는 장막들은 하루빨리 걷어내야 합니다. 삼성전자는 기술 기업입니다. TSMC처럼 기술에 천착하는 경영 전략을 펼치고 기술 인력이 주축이 돼 돌아가야 합니다. 이재용 회장이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위기의 해법은 최종적으로 이재용 회장의 리더십으로 귀결됩니다. 진대제 스카이레이크 회장은 지금처럼 총수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침울해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안타까워했지만 그 침울함을 극복하는 것은 이재용 회장 본인입니다.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그동안 했던 것처럼 사법 리스크가 완전 종료될 때까지는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또다시 한다면 삼성전자도 삼성그룹도 더 이상 기회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경쟁기업들도 글로벌 시장도 결코 삼성과 이재용 회장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근기(根器)’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자질이나 기량, 됨됨이 등을 의미합니다. 삼성 이재용 회장 그릇의 크기, 자질과 역량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30만 삼성맨들이 이재용 회장만 쳐다봅니다. 그들의 마음이 오너와 회사를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들이 삼성맨으로서의 자긍심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하루빨리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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