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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입공매도 기업 시장가치 단기왜곡 바로잡아
인프라 등 보완해 공매도 부정적 이미지 바꿔야
지난달 26일 공매도 제도 개선을 위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한국거래소가 ‘무차입공매도추적시스템(NSSDS)’을 구축하고 증권사도 내부통제 기준과 전산시스템을 구축해 제재기준을 강화하고 공매도 상황을 확인할 의무를 법제화했다. 대차거래 상환기간은 개인과 기관의 차별을 없애고 90일 단위로 최장 12개월로 제한하는 등 미비점을 나름 보완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금융당국은 시스템 구축과 제도정비가 마무리되면 2023년11월5일부터 금지되고 있는 ‘차입공매도’를 2025년3월말부터 다시 허용할 계획이다. 이번 법개정으로 공매도 부작용과 시장의 뿌리깊은 불신이 완벽하게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공매도 거래질서를 바로잡는 의미있는 출발점은 될 것 같다.
우리나라 공매도제도 연구의 권위자로 평가받는 이관휘 교수는 ‘공매도’의 부정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법에서 허용한 ‘차입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를 ‘차입매도’로 용어부터 바꾸자고 제언한다(이것이 공매도다, 2019년). 공매도의 부정적 선입견을 바꾸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전적으로 공감한다.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과 엄격한 내부통제체제를 갖
추게 하고 아울러 차입공매도는 허용하되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 Selling)’는 법대로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
가지고 있지 않은 주식을 파는 행위가 공매도(Short Selling)다. 공매도는 당장 가진 주식이 없어도 다른 사람 주식을 빌려와 파는 ‘차입공매도’와 차입 없이 허수주문을 내는 ‘무차입공매도'로 구분된다. 차입공매도(이하 차입매도)는 약속한 기한내에 주식을 다시 사서 빌린 기간동안 이자와 함께 현물주식을 되갚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시장법(재180조)을 통해 ‘차입매도’는 허용한다. 차입매도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전산시스템과 체계적 관리제도 미비로 무차입공매도와 뒤섞여 시장에서 ‘공매도’로 통칭돼 부정적 이미지가 형성되고 개인투자자의 원성이 높다.
공매도는 순기능도 있지만 오해받을 일도 많다. 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팔거나 빌려오기 전에 미리 파는 소위 ‘무차입공매도’는 범죄행위로 처벌받는다. 시스템적으로 걸러지지 않아 무차입공매도가 현실에서 가능하다면 더 큰 문제다. 주식을 차입한 증권사가 아닌 다른 증권사에서 공매도 주문을 내는 경우 확인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라면 역시 구멍이 뚫릴 수 있다. 또 개인투자자는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주식을 빌리기 쉽지 않지만 기관이나 외국인은 주식을 빌려 팔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요즘같이 정보 비대칭이 줄어든 세상에서 비슷한 정보 획득력으로 같은 공매도 기회를 포착해도 기관과 외국인이 개인보다 훨씬 유리하다. 신용도와 자본력에 따른 불가피한 기회의 불균등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실과 다른 정보를 퍼뜨리는 공매도 세력의 공격에 시달리는 경영자는 합법적인 차입매도를 포함한 모든 공매도가 악의 근원이라 생각할 것이다.
무슨 연유로든 기업의 본질가치를 벗어난 시장가치(주가)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본질가치로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계 물리법칙처럼 이해되는 이런 상식을 기반으로 주식시장에서 돈 버는 방식을 법으로 허용한 제도가 차입매도다. 기업의 본질가치를 벗어나 주가가 과도하게 이상 급등하는 것을 발 빠른 투자자의 차입매도가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시장가격이 본질가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가격변동성을 줄여주고 시장을 안정시키는 역할이 차입매도의 순기능이다.
올 해 주식시장의 가장 큰 이벤트중의 하나가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이다. 지분율 17%의 외국인을 포함한 소수지분 주주들은 누가 이기든 높은 가격으로 차익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경영권 전쟁으로 단기에 과도하게 주가가 상승해 전후 복구비용 때문에 승자의 저주와 장기적인 기업가치 훼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분확보 경쟁이 발생하기 직전 1.20배 수준에 머물던 고려아연 PBR이 MBK의 공개매수가 시작된 9월13일 이후 단 몇 주일만인 10월23일(자사주 매입 종료일) 기준 1.94배까지 급상승했다. MBK 공개매수 선제공격 이후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종료일까지 주가가 65% 이상 올랐다. MBK 1차 공개매수가격 66만원을 시작으로 양측에서 시소게임처럼 가격인상을 주고받은 결과다.
10월21일 MBK측이 제기한 ‘자사주 매수중단 가처분신청’ 기각으로 한고비를 넘긴 고려아연이 23일 자사주 매입을 마무리했고 경영권 분쟁 1차전이 일단락됐다. 경쟁적인 가격인상으로 치른 1차전에 이어 법적 공방과 주총 표 대결 등 지리한 2차전이 이미 진행중이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끝나고 유통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추가적인 지분확보 경쟁 기대로 24일 기준 주가가 30% 급등해 PBR이 2.52배로 또다시 상승했다.
대부분의 시장참여자는 지분확보 전쟁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고려아연 주가는 당초 수준 언저리로 되돌아갈 것으로 생각한다. 지금 고려아연 주식을 빌릴 수 있다면 빌려서 팔고 나중에 가격이 떨어지면 사서 되갚아 단기에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파는 물량이 많아지면 가격은 떨어진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2023년 11월5일부터 일시적으로 이런 거래를 금지하고 있어 지금은 불가능하다.
차입매도의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많다고 판단해 법으로 제도운영을 허용했다. 만일 고려아연 공개매수 과정에서 차입매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했다면 가격변동성은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시장가격이 단기에 정상가격을 크게 벗어나 공매도 세력의 목표수익율 타깃 범위에 들어오면 매도물량 증가로 가격상승을 억제하는 효과가 발휘됐을 수도 있다. 물론 차입 가능한 현물주식의 규모나 주식 선물거래 가능성 등 여러 복합적 요인으로 일률적인 판단은 어렵다. 그럼에도 차입매도가 공개매수가격을 과도하게 부추기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계기로 공매도관련 전산시스템과 내부통제제도 등 부족한 인프라가 정비되고 자본시장이 건전한 방향으로 한단계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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