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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브로드컴의 M&A, 삼성전자의 M&A
브로드컴의 질주…인수합병으로 세계 9위삼성전자의 위기…M&A도 위기 돌파 수단인수합병은 돈이 아니라 리더십과 비전으로 브로드컴(Broadcom)이라는 미국 회사가 있습니다. 퀄컴과 함께 네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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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컴의 질주…인수합병으로 세계 9위
삼성전자의 위기…M&A도 위기 돌파 수단
인수합병은 돈이 아니라 리더십과 비전으로
브로드컴(Broadcom)이라는 미국 회사가 있습니다. 퀄컴과 함께 네트워크용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다투는 기업이지만 기업 솔루션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게다가 빅테크 기업에 AI 칩까지 설계해줄 수 있는 역량도 있어 엔비디아처럼 AI 시대에 가장 잘 준비된 회사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브로드컴은 지난해 원화 기준 매출이 전년 대비 40% 늘어난 70조 원, 영업이익은 18조 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각각 300조 원과 33조 원을 기록한 삼성전자에는 못 미치는 수치입니다. 그러나 브로드컴의 시가총액은 5월 현재 약 1300조 원으로 글로벌 9위, 삼성전자(약 320조 원)의 4배에 달합니다.
브로드컴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최근 10년 사이 대규모 인수합병(M&A)을 통해 급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브로드컴은 마치 사모펀드처럼 M&A를 비전으로 삼는 회사입니다. 자체 성장보다는 기업 인수를 통해 외형을 키우고 기술을 확보하며 세계적인 기업으로 올라섰습니다. 특히 CEO인 호크 탄(Hock Tan)은 인수 후 비용 절감과 운영 효율화에 능한 ‘M&A의 귀재’로 불립니다.
브로드컴, 사모펀드처럼 M&A가 ‘비전’
브로드컴은 2016년까지만 해도 아바고(Avago) 테크놀로지라는 이름이었지만 무려 370억 달러를 들여 브로드컴을 인수한 뒤 사명을 변경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무선 통신용 반도체 시장에 진출했으며 2018년에는 189억 달러에 CA 테크놀로지를 인수해 소프트웨어 분야로 확장했습니다. 2019년에는 미국의 유명 보안 기업 시맨텍(Symantec)의 기업 보안 부문을 인수했고, 2023년에는 브로드컴 역사상 최대 규모인 690억 달러에 가상화 기술 전문 회사인 브이엠웨어(VMware)를 인수했습니다.
브로드컴의 M&A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2017년에는 무려 1300억 달러를 들여 적대적으로 퀄컴 인수를 시도했습니다. 이 인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로 반대해 실패로 끝났지만 브로드컴은 이를 계기로 본사를 싱가포르에서 미국으로 이전합니다.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을 지배하려면 내부에서 역량을 키우고 혁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어렵거나 빠르게 역량을 확보해야 할 경우 M&A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됩니다. 브로드컴은 대형 M&A를 통해 전략적으로 성장했고 지금은 AI 시대에 가장 잘 준비된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습니다.
브로드컴만이 아닙니다. 퀄컴은 누비아(Nuvia), 아마존은 안나푸르나랩스(Annapurna Labs), 애플은 비츠 일렉트로닉스(Beats Electronics), 마이크로소프트는 링크드인(LinkedIn) 등을 인수하며 성장을 가속화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성공한 M&A, 하만 인수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 삼성전자가 위기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삼성 스스로도 이를 인정합니다. 문제는 이 위기가 ‘기술의 위기’라는 점입니다. 2022년까지만 해도 스마트폰과 파운드리, 시스템LSI에 머물던 기술 위기가 이제는 삼성의 핵심인 메모리 분야까지 확산되었습니다. 특히 AI 시대의 핵심 반도체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분야에서 SK하이닉스에 뒤처진 것은 단순한 판단 실수가 아닌 기술력 열세 때문입니다. 이 격차를 만회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M&A는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수단입니다. 삼성 수뇌부도 이를 인식하고 있으며 기회 있을 때마다 강조해 왔습니다. 고(故) 한종희 부회장은 지난해 1월 “삼성의 리더십 유지를 위해 대형 M&A 계획이 올해 나올 것으로 희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초 CES에서도 “AI, 로봇, 메디텍, 공조(냉난방·환기·제습 등) 분야에서 꾸준히 M&A를 시도하고 있으며 다양한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최근 자회사 하만(Harman)을 통해 글로벌 오디오 브랜드를 인수했습니다. 하만은 미국 의료기기 기업 마시모(Masimo)의 오디오 사업부를 5000억 원(3억 5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앞서 2016년 11월에는 삼성전자 역사상 최대 규모인 80억 달러(9조 3000억 원)를 투자해 커넥티드카 분야 선두기업 하만을 인수한 바 있습니다.
하만 인수를 통해 삼성은 자동차 전장 사업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스마트·자율주행 시대에 대응해 소비자 가전 중심이던 성장축을 전장으로 확대한 것입니다. JBL, 뱅앤올룹슨 등 세계적인 오디오 브랜드를 확보함으로써 삼성 스마트폰과 TV에 음향 기술을 접목하고 차량과 클라우드, 모바일 기기를 아우르는 사물인터넷(IoT)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하만 인수는 9년이 지난 지금 대표적인 M&A 성공 사례로 평가됩니다. 초기에는 실적이 부진했지만 2021년부터 반등에 성공해 2023년에는 영업이익 1조 원을 넘었고 작년에는 1조 3000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올해도 호실적이 예상됩니다.
글로벌 오디오 시장 매년 10% 이상 성장
이번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 인수로 삼성전자는 글로벌 오디오 시장의 최강자로 올라섰습니다. 인수 대상에는 바워스앤윌킨스(B&W), 데논(Denon), 마란츠(Marantz) 등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전설’로 통하는 브랜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삼성은 하만의 고급 오디오 기술과 튜닝 노하우를 스마트폰, 노트북, 사운드바, 패밀리허브 등 주요 제품군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글로벌 오디오 시장은 소비자 오디오와 오디오 스트리밍 시장만 해도 각각 1000억 달러 이상이며, 오디오 장비와 전문 오디오까지 합치면 3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매력적인 시장입니다. 매년 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하만은 글로벌 오디오 업계 1위이며, 포터블 스피커 시장 점유율 1위, 헤드폰 2위, 무선 이어폰 3위, 자동차 오디오 부문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49%로 부동의 1위를 차지합니다. 이번 추가 M&A를 통해 하만은 오디오 최강자로서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했습니다.
하만 외에도 삼성은 루프페이(LoopPay), 스마트싱스(SmartThings), 비브랩스(Viv Labs) 등 의미 있는 스타트업을 인수해왔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삼성의 M&A 역사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내세울 만한 게 없습니다.
오히려 실패 사례와 아픈 역사가 많습니다. 1995년에는 글로벌 PC 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AST 리서치를 4억 달러 이상 들여 인수했지만 1999년 사업 철수로 마무리됐습니다. 기술력 부족, 수익성 악화, 문화 충돌, 경영전략 부재 등이 원인이었습니다.
엠스팟 실패, ‘소프트웨어 비전’ 포기 아픈 사례
금액은 100억 원 수준에 불과했지만, 2012년 미국의 소프트웨어 스타트업인 엠스팟(mSpot)의 인수와 실패도 삼성전자 M&A 역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입니다. 2010년대 들어 스마트폰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측면의 경쟁력 강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클라우드 기반 음악·영상 스트리밍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엠스팟을 인수합니다.
그러나 인수한 지 2년도 채 안 돼 운영 노하우 부족과 조직 문화의 차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주도하는 구글의 견제 등에 밀려 실패로 막을 내립니다. 엠스팟의 실패는 삼성이 구글이나 애플처럼 플랫폼이 되고 소프트웨어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길을 포기한 현실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이후 삼성전자는 소프트웨어 비전을 포기했고 삼성뮤직, 삼성앱스 등 자체 콘텐츠 개발 조직인 미디어솔루션센터를 해산합니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직후부터 삼성전자는 조직 개편을 단행했고, 이 과정에서 미디어솔루션센터는 사실상 해체되거나 다른 조직에 흡수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삼성 역사에서 매우 안타까운 순간입니다.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삼성전자 M&A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사건이 안드로이드 인수 제안을 거절한 일입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인 2013년, 안드로이드 창업주 앤디 루빈이 밝힌 바에 따르면 그는 2004년 말 삼성에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의 인수를 제안하지만, 비웃음만 사고 거절당합니다. 루빈은 2주 뒤 안드로이드를 구글에 5000만 달러를 받고 팝니다. 이후 구글은 안드로이드를 통해 전 세계 모바일 OS 시장을 장악합니다.
만약 삼성이 안드로이드의 가치를 알아보고 인수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삼성 스마트폰이 애플처럼 됐을까요? 아니면 엠스팟처럼 실패로 끝났을까요?
안드로이드를 인수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M&A는 혁신의 지름길이며 위기 탈출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한 강력한 수단입니다. 하지만 성공을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M&A가 성공하려면 전략적·재무적 요소는 물론 외부 환경과의 정합성이 중요하며, 합병 후 통합(PMI)과 조직문화의 융합, 인재 통합도 필수적입니다.
삼성전자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만 100조 원 이상 보유하고 있지만 M&A에서 성과를 내는 데는 미진한 모습입니다. 하만 인수는 성공적인 사례였지만 삼성전자가 가야 할 길에 비하면 지엽적인 성과에 불과합니다. 마시모 오디오 사업부 인수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삼성전자가 겪고 있는 메모리, 스마트폰, 파운드리 사업의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AI 시대의 확장성 측면에서도 매우 부족합니다.
M&A에서도 중요한 것은 비전과 리더십, 기업문화입니다. 삼성은 ‘관리의 삼성’에서 ‘창의의 삼성’으로 탈바꿈해야 하며, 이재용 회장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반도체 초격차’를 만든 권오현 전 회장의 말처럼 삼성전자의 위기는 리더십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M&A는 돈만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혁신은 보지 않고 수익성만 따지고 돈 계산만 하는 ‘빈 카운터’(Bean Counter, 콩알 세는 사람)가 지배하는 기업이라면 절대 혁신적 M&A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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