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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금감원 이복현과 우리금융 임종룡

Numbers_ 2025. 5. 9.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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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금감원 이복현과 우리금융 임종룡

중국과 외교마찰 등 고려 보험사 인수허용탄핵 덕분에 反轉…금융감독권 남용 ‘문제’“무더기 인사청탁 거절해 尹정부에 찍혔다”새정부 금감원 대대적 쇄신하고 책임 물어야 우리금융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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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외교마찰 등 고려 보험사 인수허용
탄핵 덕분에 反轉…금융감독권 남용 ‘문제’
“무더기 인사청탁 거절해 尹정부에 찍혔다”
새정부 금감원 대대적 쇄신하고 책임 물어야 

우리금융그룹이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승인받았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 속에서 유력 대선 후보의 사법 리스크와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대선 출마 등으로 정국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금융위원회는 지난 2일 조건부로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승인했습니다.

금융위는 금감원이 우리금융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2등급에서 3등급으로 낮춰 자회사 편입 승인 기준에 미달했지만 우리금융지주가 제출한 내부통제 개선 계획 등이 차질 없이 이행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금융위는 보험사 인수 승인 부대조건으로 우리금융이 제출한 내부통제 개선 계획과 중장기 자본관리계획을 충실히 이행하고 2027년 말까지 이행 실태를 반기별로 보고토록 했습니다.

당국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금융위원회가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로 대통령 선거를 겨우 한 달 앞둔 권력 교체기에, 전직 금융위원장 출신인 ‘임종룡 회장 봐주기’라는 일각의 지적을 무릅쓰고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를 허용한 데에는 3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금융위가 보험사 인수 승인한 3가지 이유

우선 동양·ABL생명의 주인인 중국의 다자보험그룹이 2조 원을 투자해 1조5000억 원에 파는 만큼 가격조건이 양호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동양·ABL생명의 주인이 실제로는 중국 정부라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경영실태평가 등급 하향을 이유로 금융위가 우리금융의 M&A를 불허할 경우 예상되는 중국 정부와의 외교적 마찰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 번째는 보험산업 측면입니다. 현재 시장에는 동양·ABL생명 외에도 MG손보 롯데손보 AXA손보 KDB생명 BNP파리바생명 등 자력 생존이 어려운 보험사 매물이 많습니다. 매물로 나온 보험사는 하나라도 빨리 정리해야 시장 질서를 왜곡하지 않고 산업 전체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임종룡 회장의 숙원이기도 한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가 우여곡절 끝에 마무리됐지만 금융감독 측면에서는 그동안 너무 많은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이번에 확인된 문제들은 곧 들어설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짚어 바로잡아야 합니다.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는 반헌법적 비상계엄 선언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하지 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임종룡 회장도 윤석열 정부가 무너지지 않았다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윤 정부를 상징하는 실세 관료 이복현 금감원장, 그리고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의 1년여에 걸친 갈등과 마찰, ‘전쟁’의 시작은 멀리 가지 않습니다.

임종룡이 회장 선임 후 제일 먼저 찾은 사람

윤석열 정부와 임종룡 회장은 2022년 5월 윤 정부 출범 당시만 해도 관계가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윤석열 정부는 금융위원장과 NH농협금융 회장을 역임하고 일도 잘한다는 임종룡 회장을 경제부총리로 영입하려 했습니다. 국무총리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임 회장은 개인사를 이유로 입각 제안을 거절합니다.

해가 바뀌고 2023년 초 임종룡 회장은 한국투자증권 등 우리금융 과점 주주들의 요청으로 우리금융 회장에 취임합니다. 임 회장이 2023년 3월 정식 취임하기 전 제일 먼저 이 사실을 전하고 일종의 ‘양해’를 구한 사람이 바로 윤석열 정부의 실세 이복현 금감원장입니다. 금융당국 주변에서는 당시 임 회장이 용산 대통령 비서실이 아닌 이복현 원장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는 이유로 최상목 당시 경제수석이 매우 불쾌해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어쨌든 윤석열 정부 내내 금융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실세는 경제수석이나 금융위원장이 아니라 이복현 금감원장이었던 만큼 임종룡 회장과 금융당국은 한동안 우호적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윤석열, 김주현 놔두고 이복현만 찾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금융권 관련 이슈나 지시사항이 있으면 경제수석이나 금융위원장을 통하지 않고 검찰 후배인 이복현 원장한테 바로 연락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렇다 보니 정부 직제상 상위에 있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이복현 금감원장한테 거꾸로 지시를 받거나 끌려다니는 이상한 일이 수시로 벌어졌습니다.

금융당국자들은 한결같이 윤석열 정부에서 가장 잘못된 일 중 하나로 금융위원장과 금감원장, 금융위와 금감원의 관계 역전을 꼽습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김주현 전 금융위원장의 독특한 성격 탓도 있지만 사적 인연에 따라 통치를 한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이 큽니다.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과 갈등의 시작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과 윤석열 정부의 실세 이복현 금감원장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외견상으로는 임 회장 취임 후 1년이 조금 지난 2024년 봄부터입니다. 손태승 전 회장의 처남·부인 등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이 공론화되면서입니다. 이른바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은 우리금융과 임 회장에게는 악몽과도 같았습니다. 1년여를 괴롭혔고, 이로 인해 M&A 등 모든 게 차질을 빚었습니다.

외부 제보를 통해 금감원에 사실이 전달되고, 우리금융 발표 전에 금감원이 먼저 비리를 언론에 공개한 이 사건은 730억 원으로 규모가 대단히 크지는 않았지만 전직 회장의 가장 가까운 친인척에게 부정 대출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충격이었습니다. 더욱이 부당대출 가운데 60% 정도가 임종룡 회장 취임 후에 집행됐다는 점에서 임 회장으로서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복현의 권한 남용, 임종룡 퇴진까지 압박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 사건을 ‘부실 내부통제의 전형적 사례’로 간주해 무관용 원칙으로 일관했습니다. 공개적으로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금감원은 사건이 터지자 우리금융 정기검사를 1년이나 앞당겨 실시했고, 검사 후 두 달여 만에 서둘러 3등급의 경영실태평가를 발표했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해 연말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줄곧 공개적으로 임종룡 회장이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퇴진을 종용한 것입니다. 검찰까지 나서 임 회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부당대출 사건이 대단히 후진적이긴 하지만 1000억 원 넘는 사고들이 수시로 터지는 금융권의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은행장을 넘어 금융지주 회장까지 책임져야 할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듭니다. 더욱이 이로 인해 정기검사를 앞당겨 실시하고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하향해 M&A까지 못 하게 막는 것은 아무리 따져봐도 지나칩니다. 금융당국자들조차 이 같은 금감원과 이복현 원장의 대응은 ‘권한 남용’이라는 지적을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렇게 ‘권한남용, 직권남용’이라는 비판을 들으면서까지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을 거칠게 압박했을까요?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당사자인 임종룡 회장은 입을 굳게 다물지만 임 회장이 취임 후 ‘용산’ 쪽의 ‘무더기 인사청탁’을 거절한 게 화근이 됐다는 전언입니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금융 회장에 취임하면서 옛 상업은행과 한일은행 출신 간의 갈등 해소 등 조직문화 혁신을 무엇보다 강조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부 청탁에 의한 인사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한두 명도 아니고 무더기 청탁은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는데 이게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복현, “우리금융 압박 본의 아니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최근 주변에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에 대한 압박이 본인의 뜻은 아니었다고 말하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금융당국 주변에서는 이 원장이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 초기에 강력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며 ‘고위층’으로부터 질타를 받고는 사의까지 표명했다는 얘기도 돕니다.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이복현 원장도 불가피하게 ‘무관용 원칙’을 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설령 고위층의 질타가 있었더라도 최종 행동은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이복현 원장의 야망과 권력욕이 결국은 ‘우리금융 사태’를 ‘금융감독권 남용의 전형적 사례’로 만들고 말았습니다.

금융감독이 정치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금융감독이 정치적 보복 수단이 돼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금융은 규제산업이고 감독당국은 금융사들에게는 하늘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금융감독권이 정치적으로 악용되면 금융사들과 금융인들은 설 땅이 없고 금융산업은 무너지고 맙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헌법적 비상계엄을 선언하고 그의 탄핵이 확실시되면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과의 타협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장면 중 하나가 지난 2월 금융연수원 ‘사외이사 양성 업무협약식’에서 이 원장이 환하게 웃으며 임 회장의 손을 잡은 것입니다. 이에 금융위가 중재에 나서 경영실태평가에서 3등급을 주되 조건부로 보험사 인수를 승인하는 것으로 절충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1년 전쟁 최종 승자는 이복현 아닌 임종룡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주역’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우주의 모든 사물은 언제나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변하지 않는 권력이 없습니다.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윤석열 정권도 겨우 3년으로 끝났습니다. 세상사도, 인생사도 좋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일이 생깁니다. 반대로 지금의 고통이 반드시 나쁜 것만도 아닙니다.

금융당국 역사상 가장 막강했다는 평가를 받고, 퇴임을 한 달여 앞둔 지금도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행사 중인 이복현 금감원장도 내달이면 물러납니다. 윤석열 정권이 끝나면서 보장된 미래도 없습니다. 단지 그에게 남는 것은 금융권과 금융당국자들의 평가입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윤석헌 전 금감원장에 버금가는, 대단히 부정적인 목소리만 들립니다. 즉흥적인데다 너무 정치적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원장뿐 아니라 새 정부가 들어서면 금감원도 대대적 쇄신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금융감독권 남용에 대한 책임을 여러 사람이 져야 합니다. 역사는 그래서 무섭습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윤석열 정부에 찍히고 부당대출 사건까지 겹쳐 숙원이던 보험사와 증권사 인수를 통한 종합금융그룹 도약이 좌절되는 것은 물론 3년 임기조차 채우지 못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으로 대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종합금융그룹의 꿈도 현실화되고 개인적 입지는 더 탄탄해졌습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이복현 금감원장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1년 전쟁은 임종룡 회장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인생에서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절 운(運)이 더 중요한 듯합니다. 그렇기에 힘을 가졌을 때 더 절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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