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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한강 프로젝트와 디지털화폐(CBDC), 은행의 미래
CBDC 시대의 도래는 은행에 위기이자 기회지급결제 맞춤 프로그래밍으로 화폐기능 진화단순중개자 넘어 디지털생태계 플레이어 변신최근 1년간 은행 창구를 직접 찾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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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DC 시대의 도래는 은행에 위기이자 기회
지급결제 맞춤 프로그래밍으로 화폐기능 진화
단순중개자 넘어 디지털생태계 플레이어 변신
최근 1년간 은행 창구를 직접 찾은 기억이 없을 정도로 금융 환경은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국내 은행의 입출금거래 84.6%, 조회건수 94.2%가 인터넷뱅킹으로 이루어지고 대면거래는 4% 내외 수준이다. 또한 최근 시중은행의 신규 금융상품 가입의 70~80% 이상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2025년 1분기 KB국민은행은 디지털 채널로 신규 상품을 거래하는 비율이 72%이고, KB증권은 95%에 달한다. 하나금융 역시 신용대출의 96%, 담보대출의 76%가 비대면 거래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금융거래가 스마트폰 하나로 가능하고 인공지능(AI)은 은행 창구를 넘어 고객 상담과 자산 관리 영역까지 넘보며 은행 업무의 풍경을 급격히 바꾸고 있다. 이런 거대한 디지털 전환의 흐름 속에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의 등장은 국내 시중은행에 중대한 도전이자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제시한다.
한국은행은 2025년 4월부터 6월까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BNK부산 등 7개 은행과 협력해 일반인 10만 명을 대상으로 1차 CBDC 실증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일명 ‘한강 프로젝트’로 불리며 2차 테스트는 올해 4분기로 계획돼 있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은행이 개인이 아닌 시중은행 전용(도매) CBDC를 발행하고 시중은행은 거래 고객의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전환해 유통시키는 2계층(Two-Tier) 모델을 검증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프로세스는 고객이 거래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을 통해 실명으로 전자지갑을 개설해 자신의 예금을 CBDC 네트워크상의 예금 토큰으로 바꿔 전자지갑에 보관하며 사전에 지정된 온·오프라인 가맹점에서 QR코드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 구매자금을 결제하는 방식이다. 이 모델은 ‘직접’ 유통 방식의 CBDC가 은행의 ‘금융 중개기능(Intermediation)’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의식해 한국은행이 선택한 ‘간접’ 유통 방식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법정통화다. 종이화폐를 디지털 코인으로 대체한 형태로 중앙은행이 보증하기 때문에 신용위험이 없다. 만약 CBDC가 기존 은행 예금보다 더 안전하고 편리하며 적정수준의 이자까지 지급한다면 고객이 전통 예금에서 CBDC로 이탈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예금 기반이 약화되고 대출 여력을 축소시켜 은행의 ‘금융 중개기능’을 저하시킬 수 있다. 예금 토큰 형태로 시중은행을 통해 간접적 유통방식을 취하는 ‘한강 프로젝트’는 이러한 우려를 줄이기 위한 신중한 전략이다. 중개자인 시중은행을 배제하고 중앙은행이 개인을 직접 상대하는 ‘소매형’ CBDC 제도를 도입할 수도 있지만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한국은행이 ‘도매형’의 간접 유통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CBDC 도입을 검토하며 은행의 중개기능 약화와 금융소비자의 개인정보 노출 우려를 불식하려고 아주 세심히 대응하고 있다. CBDC 시행이 은행의 존립을 위협하거나 금융자산과 거래정보 노출 우려 때문에 소비자 저항이 높아지면 제도 도입이 어려워진다. 최근 한국은행 디지털담당 부총재보는 ‘CBDC로 한국은행이 개인정보를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강 프로젝트’는 금융기관만 취급하는 ‘기관용’이며 중국 등 다른 국가처럼 중앙은행이 개인과 직접 거래하는 ‘범용 디지털 화폐’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CBDC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화폐(Programmable Money)다. 정부의 정책자금 지원이나 개인의 소비 목적에 따라 사용처를 세부적으로 지정할 수 있다. 이처럼 ‘진화된 지급결제기능’이 전통 화폐와 CBDC의 가장 큰 차별성이다. CBDC 이자를 지급하지 않거나 개인별 보유 한도를 설정하는 등 다양한 설계를 통해 제도 도입 초기의 충격을 줄이고 연착륙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한강 프로젝트’ 테스트 기간 중에 참가자의 결제금액 총 한도는 500만원, 보유 한도는 10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실제 제도 도입 시에는 한도를 완화하거나 점차 없앨 가능성이 높다.
국내 은행시장의 과점구조 상황을 감안할 때 CBDC의 안정성 편리성 경제적 효율성 등이 확인되면 시중은행의 금융 중개역할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제도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예금 유치 경쟁과 고객 확보 비용 증가로 은행의 순이자마진(NIM) 감소와 마진 압박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특히 지급결제 시장에서 CBDC가 ‘게임 체인저’로 부상할 수 있다. CBDC는 수수료 없이 실시간 정산이 가능하기 때문에 카드결제나 간편결제 시장의 대안채널로 자리잡을 수 있다. 이 경우 은행과 카드사의 결제수수료 수입이 줄어들고 시중은행의 수익성도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은행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간접 유통 방식으로 CBDC가 도입되면 코인 유통과 전자지갑 관리에서 은행이 중개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고객 신뢰 인프라 완성도 규제대응 경험 등 은행 고유의 강점을 바탕으로 자금세탁방지나 고객신원인증 분야 등에서 CBDC 생태계의 핵심 플레이어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CBDC 도입은 은행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단순한 비대면 채널을 넘어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초개인화 서비스나 슈퍼앱 같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해야 지속가능 성장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시에 밸류체인 내에서 이해관계자간 협력과 상생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다. 핀테크 기업과 경쟁을 넘어 상생 파트너십을 구축하고 CBDC 설계 초기 단계부터 중앙은행과 협력하여 은행의 새로운 역할을 확보해야 한다. 최근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핀테크 투자를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은행에 좋은 기회다. 또한 은행의 가장 강력한 무형 자산인 ‘신뢰’는 디지털 시대의 복잡성과 보안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핵심 경쟁력이다.
CBDC 시대의 도래는 시중은행에 위협임과 동시에 디지털 혁신을 통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변화의 흐름을 읽고 디지털 역량을 강화해 선제적으로 비즈니스 생태계를 확장하는 은행만이 미래 디지털 금융 지형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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