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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포기한 정용진 신세계 회장, 소주사업도 손 떼나…제주소주 물적분할 매각 시나리오

Numbers_ 2024. 7. 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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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포기한 정용진 신세계 회장, 소주사업도 손 떼나…제주소주 물적분할 매각 시나리오

지난해 위스키 제조 신사업 진출 철회를 선언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킹소주24 등을 생산하는 제주소주를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엘앤비로부터 물적분할하기로 하면서 제주소주 '매각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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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세계엘앤비가 제주소주를 물적분할하기로 하면서 신세계그룹이 위스키 신사업에 이어 소주사업에서도 완전히 손을 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제주소주 공장에서 생산되는 킹소주24와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사진 제공=이마트24

 

지난해 위스키 제조 신사업 진출 철회를 선언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킹소주24 등을 생산하는 제주소주를 이마트 자회사 신세계엘앤비로부터 물적분할하기로 하면서 제주소주 '매각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번 물적분할은 경제불황과 오프라인 유통 위기로 흔들리는 신세계그룹이 최근 본업으로의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소주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는 메시지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신세계엘앤비는 지난달 27일 제주소주 물적분할 결정을 공시했다. 신세계엘앤비가 제주소주 지분 100%를 보유하는 방식이며, 분할기일은 오는 8월6일이다. 분할 목적으로 신세계엘앤비는 “제주소주는 핵심 사업에 집중 투자하고, 신세계엘앤비는 제주소주의 외부 투자유치, 지분매각, 사업제휴 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재무구조 개선을 도모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번 물적분할은 신세계그룹이 소주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기 위한 전초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이마트는 지난 2016년 주류 시장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제주소주(옛 제주올레소주)를 190억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부채 121억원도 추가로 떠안으면서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자금을 썼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마트는 2017년 ‘정용진소주’로 불렸던 소주 브랜드 푸른밤을 야심차게 내놓았지만 반짝 호응에 그쳤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등 대형 주류업체가 이미 장악한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기도 어려웠다. 

매년 손실폭이 늘어나는 구조도 지속됐다. 영업손실은 인수 첫해인 2016년 19억원을 기록한 뒤 2019년 141억원, 2020년 106억원까지 급증했다. 이마트는 인수 후 5년간 유상증자로 670억원을 투입했지만 적자를 벗어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주소주는 2021년 8월 주류 계열사인 신세계엘앤비에 흡수합병됐다. 유사사업 부분을 통합해 효율적으로 사업을 관리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신세계엘앤비가 만성적자인 제주소주를 품고 있었던 것은 그룹 차원에서 기대가 컸던 위스키 제조 신사업 때문이었다. 신세계엘앤비는 소주 공장이 있는 제주에 위스키 증류소 설립을 계획하고 2021년부터 관련 프로젝트를 본격 준비했다. 'W비즈니스'라는 전담팀을 꾸려 제주위스키, 탐라위스키 등 제주 지역과 연관된 위스키 상표 14개를 등록했으며, 지난여름에는 세계적인 위스키 증류기 설비 제조·판매 업체인 영국 포시스와 제주 증류소 맞춤 증류기 주문제작을 계약하기도 했다. 공장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푸른밤 소주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희석식 소주 브랜드 ‘킹소주24’까지 출시했다. 한 관계자는 "제주소주의 희석식 소주 사업은 내부에서도 이미 적자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낸 상태였지만, 공장이 계속 운영돼야 취수권을 확보할 수 있어 울며 겨자먹기로 킹소주24 등의 신제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제주소주 공장의 존재 이유였던 위스키 신사업 철회가 결정되자 소주 사업을 더 이상 들고 있어야할 이유도, 명분도 사라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위스키전담팀을 해체할 때 제주소주 공장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면서 "다만 헐값에 공장을 팔기는 아까워 기회를 만들고 타이밍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물적분할이 제주소주 매각을 위한 작업으로 해석되는 이유다. 강종구 재무제표를읽는사람들 대표는 "공장을 파는 것은 유형자산을 매각하는 것으로 사업 자체를 포기하는 공식적인 행위를 뜻하지 않지만, 물적분할 이후 매각은 사업에서 확실하게 손을 뗀다는 공식적인 메시지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신세계엘앤비는 제조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제주소주 공장에서 과일소주를 위탁생산해 동남아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베트남의 순수소주·아라소주·힘소주, 미얀마 보라소주, 필리핀 봄비소주, 인도 펀터소주 등이 이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다. 주류제조면허도 있어 직접 주류를 생산, 판매할 수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소주뿐 아니라 음료 제조 비즈니스를 확장하려는 업체들에는 (공장이) 매력적인 매물일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제주소주 공장은 환경 등을 이유로 쉽게 신규 취수권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제주지역에서 지하수이용권을 가진 것이 가장 큰 경쟁력으로 꼽힌다. 신세계는 2011년 하루 150톤 규모의 제주 지하수 취수가 가능한 개발·이용허가권을 확보한 제주소주를 인수했다. 지하수법 제11조(권리・의무의 승계 등)에 따라 지하수 이용을 연장하려면 3년마다 신고해야 하는데, 최근 신세계는 관련 계약을 오는 2027년 7월9일까지 갱신했다. 신규 사업자가 들어서도 이 기한까지 제주시로부터 권리승계 허가를 받을 필요가 없으며, 기본적인 공장 가동 조건을 지킨다면 추후 기간을 늘릴 수도 있다. 

신세계엘앤비는 전체 매출의 70%를 차지하는 본업인 와인 수입·유통에 집중하며 당분간 조직을 '다운사이징'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신세계엘앤비는 주력 브랜드인 주류전문매장 와인앤모어의 효율화를 위해 수익성이 낮은 점포를 정리하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재정립하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올해부터 와인앤모어의 타사 발주도 멈추고 오프라인 매장을 줄이고 있다. 영업 중인 매장은 전국 47곳으로 지난해 3곳을 폐점했다. 

이유리 기자 yrlee@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