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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우리금융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고

Numbers_ 2024. 8. 19.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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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우리금융에서 일어난 이상한 사고

내부 고발 잇달아도 경영진도 이사회도 모두 무시괌 KAL기 사고처럼 고위층 간 소통 부재로 ‘참사’“전직 CEO 변호사비 대납 의혹도 차제에 밝혀야” 우리금융그룹 산하 우리은행에서 일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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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고발 잇달아도 경영진도 이사회도 모두 무시
괌 KAL기 사고처럼 고위층 간 소통 부재로 ‘참사’
“전직 CEO 변호사비 대납 의혹도 차제에 밝혀야”  


우리금융그룹 산하 우리은행에서 일어난 전임 손태승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 비리와 사고는 30~40년 전에나 있을 법한 대단히 복고적인 사건입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우리은행의 예상 피해 규모가 100억원 전후여서 2022년의 697억원 횡령 사고, 올 6월의 179억원 횡령 등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지만 이들 사건과는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요즘 같은 시절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곳곳에서 의문이 제기됩니다.

금감원 발표를 보면 우리은행은 2020년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손태승 전 회장의 친인척에게 총 42건 616억원을 대출했습니다. 이 중 28건 350억원은 대출 심사 및 사후관리 과정에서 부적정하게 취급됐으며 19건 269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했거나 연체 중입니다. 

우리금융은 지난 1월 이번 부정 대출의 핵심 인물인 임 모 전 본부장의 퇴직을 앞두고 재임 중 취급했던 대출에 대해 사후 점검하는 과정에서 사태를 파악했고, 3월 1차 검사 결과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에 보고했습니다. 우리금융은 관련 대출 잔액은 304억원이며 단기 연체 및 부실 대출이 198억원, 손실 예상액은 82억~158억원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우리금융은 이번 사건은 과거 손태승 전 회장 당시 이뤄진 일로 현 임종룡 회장이나 조병규 행장과는 무관하며 임 회장과 조 행장 취임 이후 집행된 대출은 신규가 아니며 담보도 충분하다고 강조합니다. 정말 두 사람과는 무관한 일일까요. 

우리금융 주변 관계자들의 제보와 설명을 들어보면 이번 손태승 전 회장 관련 특혜 대출은 그가 우리은행장으로 취임한 2017년 말부터 시작됐습니다. 금감원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금감원은 2020년 이전에도 관련 부정 대출이 다수 있었다는 제보가 있었지만 2020년 이전 대출은 전액 상환됐다고 말합니다. 

결론적으로 손 전 회장 관련 특혜·부정 대출은 2017년 말 또는 2018년 초부터 시작해 올해 1월까지 꼬박 6년간 이루어졌는데 그동안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됩니다. 핵심은 지난 6년간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것입니다.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손태승 전 회장은 2017년 12월 우리은행장에 취임하고 1년 뒤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오릅니다. 그는 2020년 3월까지 은행장과 회장직을 겸직하고 그 후에는 회장직만 맡다가 2023년 3월 퇴임합니다. 손 전 회장이 행장직을 그만두면서 후임자로 온 사람이 권광석 은행장입니다. 은행장 선임을 두고 손태승 회장이 지지했던 사람이 아닌 데다 한일 출신인 손 회장과 달리 권 행장은 상업은행 출신이어서 재임 2년 내내 갈등하고 충돌했습니다. 

우리금융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권광석 행장은 2020년 3월 취임 때 이미 손태승 회장의 처남·부인과 관련된 대출에 대해 많이 듣고 어느 정도 상황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은행 여신 담당 임원으로 손 회장과는 동향이고 3년이나 같은 업무를 담당했던 P씨의 보직을 바꾸려고 했지만 손 회장의 반대로 실패하고 맙니다. 금융권에서는 금감원이 이번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한 임 모 전 지역본부장 외에 P씨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임 모 전 본부장과 관련해서는 또 다른 증언도 있습니다. 권광석 행장이 겨우 2년의 행장직을 마치고 퇴임하기 직전 임 본부장의 승진을 둘러싸고 손태승 회장과 권 행장이 충돌한 것입니다. 임씨의 승진에 부정적인 권 행장은 며칠 출근을 안 하면서 본인의 뜻을 관철하려 했지만 결국은 손 회장 뜻대로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권광석 행장이 직접 손태승 회장에게 처남 및 부인 관련 대출의 문제점을 얘기했다가 “소탐대실하지 말라”며 오히려 경고를 받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물론 손 전 회장 측은 “권광석 전 행장이 지어낸 얘기”라고 반박합니다.

어쨌든 손태승 회장 재임 기간 내내 처남 부인 등 친인척 관련 대출을 둘러싸고 우리금융 내에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손 회장 최측근으로 일했던 전직 임원도 “여러 차례 손 회장 특혜 대출 관련 소문들이 많아 이것저것 뒤졌지만 특별히 문제될 게 없어 덮었다”고 말합니다.

손태승 회장의 친인척 대출과 관련한 말들이 내부에서 확산되면서 결국은 일부 금융지주 사외이사들까지 알게 되고 심지어 과점주주인 한 금융그룹 회장에까지 전달됐지만 묵살당했다는 증언도 나옵니다. 또 권광석 행장이 직접 일부 사외이사들에게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무시되고 말았다는 제보도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과점주주 체제의 우리금융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조병규 현 우리은행장은 권광석 행장 시절 경영기획그룹장을 맡아 호흡을 맞춘 권 행장의 최측근입니다. 같은 상업은행 출신입니다. 그런데 우리금융 발표를 보면 조병규 행장이 이번 사태를 인지한 것은 지난 3월로 돼 있습니다. 믿기지 않습니다. 우리금융 안팎에서는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에 대해 조병규 행장은 권광석 행장 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고, 권 행장이 이 문제를 당시 조병규 그룹장에게 여러 차례 얘기하고 불만을 털어놨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서 권광석 행장이 얘기를 하지 않았다 해도 은행 핵심 임원이 ‘공공연한 비밀’이었던 이 일을 몰랐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이제 문제는 손태승 회장이 물러나고 임종룡 회장이 취임해 행장 자리에 오른 조병규 행장이 이 일에 대해 신임 임 회장에게 보고했는지, 하다못해 사석에서라도 말했는지 아니면 끝까지 함구했는지로 귀결됩니다. 아니면 다른 루트를 통해 임종룡 회장이 전임 회장 관련 대출에 대해 알았을 수도 있습니다. 조 행장이 얘기했는데 임 회장이 가볍게 판단해 그냥 넘어간 건지, 아니면 말못할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조병규 행장도 임종룡 회장도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CEO가 그렇지만 특히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하자마자 내부통제 강화, 기업문화 쇄신을 강조하고 나섭니다. 2019년의 DLF 사태와 라임펀드 사태, 2022년의 거액 횡령 사건에다 해묵은 상업·한일은행 출신 간 갈등 등을 의식한 조치였습니다. 

여기에다 임 회장은 전임 ‘손태승 지우기’에도 적극 나섰습니다. 손 전 회장 시절 핵심 보직을 맡았던 임원 및 간부들을 대거 정리했습니다. 심지어 손태승 회장이 자신의 연임을 위한 우호적 여론 조성을 위해 거액의 광고·협찬비를 지출했다며 취임하자마자 홍보예산을 전례 없이 삭감했습니다. 

전임 회장을 ‘적폐’로 규정하고 지우기에 나섰다면 제일 먼저 할 일은 당연히 이번에 드러난 전임 회장 친인척 특혜·부정 대출 등을 찾아내 바로잡는 것이어야 했는데 제보가 들어가고 금감원이 나서 밝혀낼 때까지 임종룡 회장도 조병규 행장도 우리금융 이사회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이번 사건의 핵심입니다. 내부 고발자들의 얘기를 그냥 손 회장을 음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해 무시했는지, 아니면 서로 어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덮은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2000년대 초 발행된 말콤 글래드웰이 쓴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경영학 관련 베스트 셀러가 있습니다. 임종룡 회장이나 조병규 행장도 읽었을 것입니다. 이 책은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장해 유명한데 특히 기업 내부 최고경영자 간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반대로 소통 부재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는 지를 1997년의 괌 KAL기 추락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합니다. 글래드웰은 비바람 악천후 속에 기장이 착륙을 강행할 때 대한항공의 경직된 기업문화로 부기장이 ‘노’(NO)라고 직언하지 못해 무려 2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분석합니다. 

우리금융의 전임 회장 특혜 대출 사고는 상업·한일은행 출신 간 갈등이 아니라 소통 부재, 경직된 기업문화가 근본 원인이라는 점에서 KAL기 추락 사고와 비슷합니다. 다만 이번 사고의 경우 내부에서 이런저런 경보음이 오랜 시간 계속 울렸는데도 최고 경영진과 이사회가 이를 경시하고 무시했다는 점에서 더 나쁜 악성 사건입니다.

금융당국에 이어 수사기관까지 나서면서 이번 사고의 실체가 조만간 드러나겠지만 이와 별개로 밝혀내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전직 최고경영자의 오랜 재판과 관련해 개인적으로 부담해야 할 변호사 비용 중 상당 부분을 은행으로 돌려 사실상 대납했다는 주장과 제보입니다. 이미 금융당국에도 전달된 내용이라고 합니다. 이 일은 회장 친인척 대출 비리와 함께 오래전부터 제기된 우리금융의 해묵은 의혹입니다. 차제에 이에 대한 의혹을 털고 가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이런 일들이 제대로 밝혀지고 해명돼야 우리금융은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습니다. 새로 증권사를 출범시키고 보험사를 인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임종룡 회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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