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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리스크뿐 아니라 평판 리스크도 관리 중요
거시적 전략목표 달성 위해 소탐대실하지 말아야
이사충실의무 등 지배구조 개선 법제도 정비 시급
합병가액 산정 등 M&A관련 자본시장법 개선도 필요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사회 곳곳에 법이 상식을 뒤집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난다. 법을 지키는 것은 중요하다. 법을 어기면 회사와 경영자가 민형사상의 직접적 처벌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이 법으로만 돌아가지는 않는다. 기업경영에서 법적 리스크 못지 않게 평판 리스크도 중요하다.
최근 지배구조 개편을 둘러싸고 두산그룹이 금융당국과 벌이고 있는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두산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에 사용한 계열사간 합병비율 산출방법과 수준이 논란거리다. 두산그룹은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5) 등 정해진 관련법을 준수해 적법하게 추진하고 있어 아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두산이 법대로 추진하는 경영전략을 금융당국이 법대로 강하게 제동을 걸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증권신고서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몇 번이고 정정 요구를 하겠다’고 했다. 금감원의 증권신고서 정정요구도 법적 절차(자본시장법 119조)에 따른 정당한 조치다. 두산이나 금감원 모두 법이 허용한 범위내에서 자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행동할 뿐이라는 태도다.
민간기업이 적법하게 추진하는 경영전략에 금융당국이 이처럼 강하게 어깃장을 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시장과 투자자의 불만이 크고 상식에 어긋난다는 방증일 것이다. 특히 금융당국이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정면으로 거스른다는 반감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은 그룹의 캐시카우(Cash Cow)인 두산밥캣에 대한 지주사 ‘두산’과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일가의 지배력 강화다. 먼저 두산에너빌리티(두산이 지분 30.39% 보유)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두산밥캣의 지분 46.06% 보유)로 인적 분할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인적분할해 신설한 ‘투자회사’를 두산로보틱스(두산이 지분 68.14% 보유)에 흡수 합병하는 것이 두번째 순서다. 그리고 합병된 두산로보틱스가 두산밥캣 잔여지분(54%)을 신주발행을 통해 ‘포괄적 주식교환’으로 100% 완전자회사로 편입해 마무리하는 것이다.
두산 지배구조 개편이 완료되면 지주사 ‘두산’의 두산로보틱스 지분이 68%에서 42%로 하락하고 두산로보틱스에 대한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배력도 26%에서 16%로 줄어든다. 반대로 지주사 ‘두산’은 두산밥캣의 지배력을 14%에서 42%로 높일 수 있고 ‘두산’ 지분 38.14%를 보유한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의 두산밥캣 지배력은 5.34%에서 16%로 강화되다.
지주사 ‘두산’과 오너입장에서 적자기업이지만 미래성장 가능성을 믿고 막대한 투자를 해야 하는 회사 지분은 줄이고 당장 큰 수익을 내는 우량기업 지배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투자자금이 필요한 두산로보틱스 주주들도 든든한 투자재원 조달창구로 두산밥캣을 거느리게 돼 나쁘지 않다.
하지만 두산에너빌리티 주주가 두산로보틱스 주식을 받을 때 적용된 교환비율의 적정성이 논란이 된다. 상장회사 두산에너빌리티가 투자한 밥캣 지분을 인적분할해 비상장 투자회사로 만들어 주식교환 방법을 시장가치가 아닌 본질가치평가법(자산가치 1대 수익가치 1.5로 가중평균한 가격)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5)을 근거로 했지만 임의조정 여지가 있는 방법으로 바뀌면서 공교롭게도 시가보다 교환비율이 낮아지고 두산에너빌리티 주주가치가 훼손됐다는 지적이다.
반면 시가가 과대평가된 두산로보틱스와 과소평가된 두산밥캣을 합병할 때는 역시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5)의 상장회사간 합병가액 산정방법을 적용해 시가기준으로 주식교환비율이 정해졌다. 두산그룹이 제시한 두 회사의 주식교환비율은 1 대 0.63이다. 두산밥캣 1주가 두산로보틱스 주식 0.63주와 가치가 동등하다고 평가했다. 2024년 6월말 두산밥캣 순자산이 6조5000억원, 반기 영업이익은 5740억원이다. 두산보로틱스는 순자산 4300억원, 누적결손금이 1000억원 넘는다. 두산밥켓 주주는 자신들의 자산가치를 두산보로틱스 주주에게 빼앗겼다고 받아들일 것이다. 2024년 8월20일 현재 두산로보틱스 PBR은 10.04배로 두산밥캣 PBR 0.67배 보다 15배 높게 평가돼 있다.
두산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계열사 두산밥캣은 지주사 ‘두산’의 손자회사다. 박정원 회장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38.14%인 ‘두산’은 두산에너빌리티를 30.4% 보유하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두산밥캣 지분은 46.06%다. 결과적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지주사 ‘두산’의 두산밥캣 지배력은 14%에 불과하다. 박정원 회장 일가의 두산밥캣 지배력은 고작 5.34%로 아주 낮다. 중간에 누수되는 세금효과 등을 감안하면 배당성향을 높여도 지주사나 오너일가 주머니로 들어오는 돈은 많지 않다.
특히 두산밥캣을 그룹의 캐시카우로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싶어도 상장회사이기 때문에 100% 지배권 행사가 불가능해 불편한 점이 많았을 것이다. 2015년 신설돼 7년째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두산로보틱스를 그룹의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하려면 안정적 투자재원 마련이 절실하다. 회사의 장기적 성장을 위해 활용가능한 모든 가용자원을 전략적으로 재배치하고 효율화할 필요성을 지주사 경영진들은 많이 느꼈을 법하다.
합병가액 산정방식을 법으로 정해 운용하는 취지는 ‘투자자 보호’가 목적이다.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입법 취지대로 ‘투자자 보호’의 목적이 달성되고 있다면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법 운용이 상식을 벗어나면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게 된다. 시장과 투자자의 불만이 고조되고 감독당국까지 나서서 민간기업의 경영전략 추진을 강하게 비토(Veto)하는 것으로 보아 입법 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두산그룹 지배구조 개편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은 다수의 소액주주들이고 이익을 챙기는 사람은 극소수 지배주주 일가들이라는 비판이다. 하지만 두산그룹 입장은 현행 자본시장법을 충실히 따른 것일 뿐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두산의 주장처럼 법적으로 문제는 없어 보인다. 금융당국도 문제의 핵심인 합병비율 정정을 명시적으로 요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시장과 투자자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다.
시장과 투자자는 두산로보틱스의 불확실한 사업모델보다 두산밥캣의 뛰어난 수익 창출력을 신뢰하는 것 같다. 투자자는 약속어음보다 현금을 더 선호한다. 두산이 시장과 투자자, 금융당국 등 이해관계자 설득에 실패했다는 지적이다. 합병비율을 산정할 때 법적으로 허용된 할인 할증을 통해 소액주주 가치 훼손을 줄이는 대책을 미리 강구하지 않은 점도 아쉽다.
현행법 테두리를 지키며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거시적 관점으로 노력하기보다 소수 주주들의 이익을 지키는 소탐대실을 저질렀다는 평가다. 우호적이지 못한 평판과 여건조성으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규모가 예상보다 급증하거나 주주총회 ‘특별결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은 무산된다. 우여곡절 끝에 성공해도 악화된 평판리스크를 치유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말 그대로 ‘상처만 남기고 실패하거나’ 아니면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법제도의 불안정성을 이용해 법치주의 외피를 쓰고 소수가 자기이익을 지키려고 다수의 이익을 침탈하는 일이 정당화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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