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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판매 보험금 지급만으로 계약자 보호 불충분
보험 계약자 이익이 보험사 투자자 이익에 우선
밸류업 유행 회사별 기본요구자본비율로 차등화
부실보험사 정리방법 경영권 거래만이 답 아니다
보험 소비자 보호 강화와 피해 사례를 이야기할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보험 모집인들의 불법과 비도덕적 행태다. 또 하나는 소비자가 보험상품을 가입할 때는 쉽게 하면서 정작 보험사고를 당해 보상을 신청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보험금 지급을 하지 않는 보험사의 이율배반이 자주 지적된다.
이런 사실은 금융감독원의 금융분쟁조정 접수현황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보험은 타 업권의 추종을 불허하는 금융권의 영원한 민원왕이다. 2023년 금융권 분쟁조정 접수건수의 83%가 보험과 관련된 분쟁이다. 접수 건수가 3만1301건에 이르고 2년전보다 보험 비중이 1%가 더 높아졌다. 보험 분쟁조정을 유형별로 보면 보험모집, 고지의무 위반 등 모집단계에서 설계사와 관련된 분쟁 비중은 2021년 9%에서 2023년 6%로 크게 낮아졌다. 2020년 금융소비자보호 관련 법령 시행과 함께 금융상품 판매인에 대한 교육 및 처벌조항이 강화되면서 보험판매인의 인식과 문화가 많이 바뀐 영향이 반영됐을 것이다.
반면 보험금 산정이나 지급과 관련된 분쟁조정 접수건수가 2021년 62%에서 2023년 67%로 절대수준도 높고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보험상품은 태생적으로 어렵고 복잡하다. 게다가 의료기술 등 급속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보험 약관에 유연하게 반영해 적용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해관계자간 보험약관 해석을 둘러싸고 첨예한 이견으로 분쟁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보험 계약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분쟁의 원인을 찾아 신속하게 개선해야 보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되고 보험업의 성장동력을 되살릴 수 있다. 보험 소비자 보호를 위해 보험모집과 보상단계에서 일어나는 소비자 이익침해를 줄이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보장이라는 보험소비자의 궁극적인 이익보호는 불완전판매 축소와 보험금심사 이견을 조정하는 것만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충분치 않다. 보험소비자를 장기적으로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보험사가 부실해지면 그 피해가 모든 보험가입자에게 전가돼 더 큰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다.
2023년 생보사 보험금 부지급율이 0.89%이고 손보사 장기보험 부지급율은 1.45%였다. 부지급율은 보험사고를 당한 고객이 청구한 보험금을 지급요건이 충족되지 못해 보험사가 지급을 보류한 비율이다. 만일 보험사 재무 건전성에 문제가 생겨 보험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보험금 청구자 뿐 아니라 보험 가입자 전체가 피해를 입는다.
물론 보험사가 파산을 하면 예금자보호법에 의해 최소한의 보장은 받는다. 하지만 보험사를 믿고 예기치 못한 불행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가입한 미래의 장기적 보장을 충분히 받을 수 없게 된다. 2023년 개정된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은 보험사 파산시 사고보험금을 별도로 분리해 5000만원까지 보장해주는 것으로 일부 보완은 했다. 하지만 보험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면 보험사 파산시 보험금이 아니라 해약환급금만 보장된다. 요즘 유행하는 무해지 저해지상품의 경우 해지환급금이 적거나 아예 없다.
KDI(정책포럼 2021년12월)에 따르면 보장성보험 가입자의 46%는 보험사가 망할 가능성을 아예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한다. 또 보험가입자의 82%는 예금보험공사가 자신의 보험료와 보험금을 5000만원까지 무조건 보장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보험사가 파산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험상품을 구입한 보험 계약자와 보험사의 주식을 매수한 투자자 중 누구를 더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까? 최고의 보험사는 보험계약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보험사다. 투자자 몫의 이익배분은 보험 소비자 보호 이후로 미뤄야 한다. 보험소비자 권익의 실질적인 보호를 위한 중장기 관리지표로 ‘기본요구자본비율’(기본자본/기본요구자본)을 설정해 관심을 가지고 상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충분한 기본요구자본비율을 확보한 보험사는 밸류업 유행을 따라도 무방할 것이다. 하지만 향후 금리하락과 규제강화 추세를 감안해 그레이 존(Gray Zone)에 있는 보험사는 자본비율을 챙기는 것이 우선이다. 한번 약화된 자본을 정상화하는 것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보험사 가용자본은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으로 보험사 투자자인 주주 몫의 돈이다. 요구자본은 보험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다. 보험사고에 대비해 보험계약자가 구매한 보장서비스를 보호하기 위해 투자자인 주주의 돈이 어느 정도 비축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가 K-ICS 비율이다. 보험계약자 보호가 투자자 보호에 우선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K-ICS 비율은 자본성이 떨어지는 보완자본이 포함돼 있다.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요구자본 규제비율 산출기준이 지속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 보완자본을 제외한 ‘기본요구자본비율’을 끈질기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요즘 M&A 시장에서 자주 거론되지만 거래성사가 잘 안되는 보험사는 기본요구자본비율은 낮고 보완자본비율이 높은 경향이 있다. 손보사 중에는 기본요구자본비율이 20% 이하이면서 지급여력금액 중 보완자본 비중이 70%를 초과하는 회사도 두 곳이나 있다. 생보사 중에도 기본요구자본비율이 마이너스를 보이면서 보완자본 비중이 110%를 넘어선 회사가 두 곳이다. 금융지주 등 자본확충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대주주를 두고 있는 일부 보험사도 기본요구자본비율이 50% 이하로 떨어지고 보완자본 비중이 60~70%를 상회하는 회사도 3곳이 있다.
참고로 우리금융이 인수를 결정한 동양생명은 기본요구자본비율이 82%, 보완자본 비중은 46%이고 ABL생명은 각각 96%, 15%로 상대적으로 양호하다. 삼성화재 DB손보 메리츠화재 KB손보 삼성생명 교보생명 신한라이프 KB라이프 등은 상대적으로 두 지표 모두 양호하다.
부실한 보험사가 새주인을 찾지 못해 청산되거나 경영권이 아닌 P&A(Purchase of Assets & Assumption of Liabilities) 거래를 하는 경우 보험계약자는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할 수 있다. 신제도 도입 이후 늘어난 보험사 실적의 진정성이 도전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도 육안으로 관찰 가능한 금리 구간이 30년 정도인데 60년 이상 구간의 금리를 추정해 할인율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십년의 장기계약으로 미래 보험사고를 보상해야 하는 보험사의 자본건전성은 과도할 정도로 보수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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