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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멜린다 게이츠와 노소영

Numbers 2024. 9. 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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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멜린다 게이츠와 노소영

3년 전 ‘잉꼬부부’로 세상에 알려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이자 역시 자선사업가인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이혼을 발표해 충격을 던졌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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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잉꼬부부’로 세상에 알려졌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창업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이자 역시 자선사업가인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가 이혼을 발표해 충격을 던졌습니다. 창업자와 마케팅 매니저로 만나 7년간 연애하고 3명의 아이를 두었고 27년간 결혼생활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2000년대 들어서는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세워 질병과 기아 퇴치, 교육 기회 확대 등에 나섰습니다. 코로나19 백신 개발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재단 일은 빌 게이츠보다 멜린다가 주도했습니다.

알려진 대로 이들이 이혼한 것은 남편 빌 게이츠의 심한 외도 때문이었습니다. 결혼 후에도 예전의 여자친구를 계속 만났고 회사 내 여성 직원과 오랜 기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더욱이 소아성애자인 백만장자 엡스타인과도 오래 교제했다고 외신은 전합니다. 멜린다는 빌 게이츠가 변태적이기까지 했다는 대목에서 결혼생활을 정리합니다.

빌 게이츠와 전 아내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이혼 과정에서 서로 소송전에 대비했으나 빌 게이츠 전체 재산 중 4% 조금 넘는 금액을 받는 선에서 타협했습니다. 또 이들은 이혼 후에도 같이 3년간 재단 활동을 지속합니다. 멜린다는 지난 5월에야 재단의 공동의장직을 사임하는 것으로 빌 게이츠와 완전 결별합니다. 멜린다는 재단을 떠나면서 일종의 퇴직금으로 두 사람이 재단에 투자한 540억달러 중 23%에 해당하는 125억달러를 받았습니다. 

멜린다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혼 후 계속 울면서 분노에 찬 날들을 보냈다”고 회고하면서 “그렇지만 치유의 여정을 시작했고, 삶의 절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라져도 삶은 바뀌지 않았다”고 토로합니다.

인생에서는 한때 찬란하고 대단하게 여겨졌던 게 시간이 흐르면서 놀랄 만큼 빛이 바래고 초라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됩니다. 부부나 연인관계도 대개 그렇습니다. 천하의 빌 게이츠 멜린다 커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품격을 잃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멜린다 게이츠는 재단의 공동의장직을 사임하면서 받은 125억달러에 대해서는 “이 시대의 소녀와 여성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 부부 이혼만큼이나 우리나라에서 ‘세기의 이혼’이 된 SK그룹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막바지로 치닫습니다. 

빌 게이츠 멜린다 커플이 소송까지 가지 않고 적절한 수준에서 재산을 나눠 갖기로 합의한 것과 달리 최태원 노소영 커플은 본격 소송전에 나섰습니다. 특히 노소영 관장은 최 회장과의 소송 외에 그의 동거인인 김희영 티엔씨재단 이사장에 대해서도 3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습니다.

알려진 대로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두 사람 공동재산 4조115억원중 35%에 해당하는 1조3808억원을 분할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와 별도로 20억원의 위자료도 최 회장이 부담해야 합니다. 그동안 ‘특유재산’(결혼 전부터 가진 고유재산)으로 인정받았던 SK㈜ 지분 17.7%까지 분할 대상이 되면서 노소영 관장 몫이 크게 늘었습니다.

노 관장이 최 회장으로부터 받게 될 35%, 1조3808억원은 비율도 높지만 엄청난 금액입니다. 현금이 없는 최태원 회장이 1조40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마련하려면 보유 주식을 팔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대주주 주식 양도세 27.5%를 감안하면 대략 1조8000억원에 가까운 주식을 팔아야 합니다.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35%가 아닌 전체 재산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것을 노소영 관장에게 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현실적으로 최 회장이 1조8000억원어치의 주식을 팔아 양도소득세를 낸 후 1조4000억원을 마련하려면 상장사인 SK㈜ 보유지분 17.7%를 전액 팔아야 합니다. SK㈜ 시가총액은 8월 말 현재 10조4000억원 수준입니다. 노소영 관장 입장에서는 최 회장으로부터 1조3808억원을 받아 SK㈜ 지분을 사면 13% 정도를 확보하게 돼 그룹 지주사 1대 주주로 올라섭니다. 이혼 때 받는 재산분할금에는 세금이 없습니다. 

가사와 양육만 전담한 노소영 관장이 사실상 부부공동 재산의 절반을 가져가고 마음만 먹으면 그룹 지주사의 1대 주주로 올라서는 데 반해 빌 게이츠의 아내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는 사업의 동반자로서, 자선재단의 공동 운영자로서 평생 일했음에도 빌 게이츠 재산의 4% 수준과 재단 재산의 23% 정도를 가져가는 데 그쳤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SK그룹이나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항소심 재판부 판결을 절대 수용하지 못할 것입이다. 최태원 회장이 초호화 변호인단을 구성해 상고심 재판부에 500쪽 분량의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것은 이 때문입니다. 

최태원 회장 측의 반격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보면 상고심도 노소영 관장 측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습니다. 상고심은 기본적으로 사실 판단이 아닌 법리 해석과 적용이 맞는지 파악하는 법률심인데다 특히 가사 사건의 경우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산정 등을 문제 삼아 대법원에서 다룰 사안이 아니기에 더 그렇습니다. 

결국 이번 이혼소송 상고심은 ‘심리불속행 기각’(상고 이유에 관한 주장이 헌법이나 법률, 대법원 판례 위반이나 중대한 법령 위반에 관한 사항 등을 포함하지 않는 경우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으로 연내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물론 최태원 회장 입장에서는 심리불속행 기각을 피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끌고 가 재산분할 비율을 낮추는 전략을 펴겠지만 말입니다.

노소영 관장은 최태원 회장과의 이혼소송과는 별개로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에 대해서도 30억원대의 위자료를 달라고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지난달 22일 서울가정법원은 김 이사장이 노 관장에게 20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지난 5월의 서울고법 이혼소송 2심 판결에 이어 노소영 관장은 두 번째로 다시 이겼습니다. 더욱이 김희영 이사장이 선고 후 입장문을 통해 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여 항소하지 않겠으며 노 관장과 그의 자녀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달한다고 밝힘으로써 재판은 노소영 관장의 완승으로 끝났습니다.

노 관장이 최 회장의 동거인 김희영 이사장과 위자료 소송에서 이겼지만 위자료는 최태원 회장과 김 이사장이 공동 부담하는 이른바 ‘부진정연대채무’여서 노 관장 입장에서는 위자료를 더 받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굳이 김희영 이사장까지 걸고넘어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한데는 이른바 ‘상간녀 김희영’에 대한 악감정에다 최 회장과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실제로 노소영 관장 측은 김희영 이사장이 노 관장에 대한 사과와 함께 항소 포기를 선언하고 사흘 뒤 위자료 20억원을 노 관장 계좌로 입금하자마자 이 행위가 “노소영에게 돈만 주면 되는 게 아니냐는 ‘상간녀’ 측의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다시 한번 김 이사장을 직격했습니다.

‘상간녀’, ‘상간녀 위자료 소송’ 등의 용어는 법률 용어이긴 하지만 공개적으로 상대방에게 할 말은 아닙니다. 김희영 이사장에게도 사춘기의 딸이 있고 그와 가족들이 가짜뉴스와 댓글 등으로 받았을 10여 년의 고통도 생각해야 합니다. 오죽했으면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 인격 살인을 멈춰달라”고까지 호소했겠습니까.

김희영 이사장이 법적으로 정식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최태원 회장과 반공개적으로 부부처럼 활동하는 등 비난받아야 할 대목이 분명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 보면 그도 같은 여성이고 어쩌면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노 관장이 이번 재판 과정에서 내내 강조했던 ‘가족의 소중함과 가치를 지키는 일’은 김희영 관장한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합니다. 특히 노소영 관장 뒤에는 무수히 많은 지지자들이 있고 그들 덕분에 재판에서 이기고 있지만 김희영 이사장 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김 이사장에 대한 분노는 이제 거두길 바랍니다. 품격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투자의 귀재이자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평소 빌 게이츠 부부랑 자선사업을 같이 하는 등 가깝게 지냈습니다. 워런 버핏은 “빌 게이츠가 엄청 스마트하지만 판을 잘 읽고 크게 만들 수 있는 건 멜린다”라며 “둘 중엔 멜린다가 더 스마트하다”고 했습니다.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처럼 노소영 관장도 더 스마트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삶의 절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라져도 삶은 바뀌지 않았다”고 하루빨리 고백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멜린다처럼 재산분할과 위자료로 받는 돈은 그게 얼마든 노 관장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응원한 이 시대의 소녀와 여성들을 위해 아낌없이 쓰기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