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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당대출 대응 한심한 수준…“임종룡답지 않아”
연초 계열사까지 친인척 대출, ‘내부통제’ 안돼
“외부청탁 거절 미운털 박혔다” 음모론도 나와
‘尹정부 실세’ 對 ‘모피아 대표’ 충돌에 ‘주목’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5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우리금융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회장에 매우 가까운 친인척 관련 비리이다 보니 은행 내부의 의사결정 관여자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고, 은행 내부에서는 말들이 많았었다. 금감원은 이 사실을 다른 경로로 제보를 통해 사후적으로 알았다. 금감원이 감사에 착수해서 보니까 전임 회장 관련 대규모 부당대출의 문제점을 현 은행장에게는 작년 가을쯤 보고됐고, 최소 올 3월 이전에는 (우리금융)지주조차 보고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사건이 신임 회장과 행장이 온 후 2년 가까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법적 의무나 책임을 떠나 (금융당국이) 제왕적 지주 회장의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책무구조도’를 도입하는 상황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조직의 고위직 내부자들은 공직자에 준하는 윤리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뭔가 숨길 수 있다는 전제하에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 집행부 내에서도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우리금융 이사회가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승인한 지난달 28일에도 손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에 대해 거듭 사과했습니다. 그럼에도 의문이 제기됩니다.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행장은 이 사건을 공식 보고받고도 길게는 1년, 짧아도 4~5개월을 왜 감독기관에 보고하거나 공시하지 않았을까요? 게다가 ‘내부통제’를 어떻게 했길래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에서도, 특히 올해 1월까지 잇달아 전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대출이 실행된 걸까요?
이에 대해 우리금융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금융사고는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계속 조사할 수밖에 없다. 특히 전임 회장 관련 사안이어서 함부로 증거 없이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당장 의심이 된다고 사문서 위조다 배임이다 할 수는 없다. 근거가 되는 자료를 수집해야 하고 명백한 증거를 모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뭔가 숨기는 게 있어 금감원 보고와 공시를 미룬 게 아니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논리입니다. 믿어도 될까요?
우선 조병규 행장부터 보겠습니다. 조병규 행장은 구 상업은행 출신으로 권광석 전임 행장 시절(2020년 3월~2022년 3월)에 핵심 임원으로 일했습니다. 이복현 원장 말대로 우리금융 내부에서 의사결정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이 일을 알고 있었다면 조병규 행장도 예외가 아닐 것입니다. 조병규 행장은 3~4년 전부터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입니다.
조병규 행장은 임종룡 회장이 지난해 3월 취임한 후 7월에 은행장에 선임되고 9~10월에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에 대해 정식 보고를 받습니다. 이복현 원장은 이와 관련 늦어도 올 3월 이전에 우리금융지주에도 보고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조 행장이 정식 보고 받은 시점과 임종룡 회장에게 보고된 시점과는 최소 4~5개월 시차가 있습니다. 전임 회장과 관련된 엄청난 사고를 공식 보고받고도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몇 달씩 깔아뭉갤 간 큰 은행장이 과연 있을까요?
임종룡 회장은 내부 출신이 아니어서 금감원 추론대로 올 3월 이전쯤, 대략 연초에 이번 사건을 인지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의문은 남습니다. 임 회장이 손태승 전 회장 재임 때의 DLF 사태나 700억원대 대형 횡령 사고 등을 의식해 취임 초부터 ‘손태승 지우기’에 나선 사실을 감안하면 공식 보고를 받기 전에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전임 회장의 대출 비리에 대해 인지했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입니다.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바뀌면 전임 회장과 관련된 온갖 의혹과 비리가 신임 회장에게 쏟아지는 게 관례처럼 돼 있습니다.
백번 양보해 임종룡 회장이 올해 초에야 사건을 인지했다 해도 우리금융의 대응은 이해가 안 됩니다. 연초 우리은행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체 감사에 착수한 뒤 4월에 감사를 종료하고 징계까지 하지만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습니다. 금감원이 제보를 통해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그때야 감사 결과를 처음 전달합니다.
임종룡 회장은 평범한 금융인이 아닙니다. 재무부 사무관 시절부터 일 잘하기로 소문난 엘리트입니다. 재무 관료로서 경력도 화려합니다. 정무 감각도 뛰어납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금융사고가 아닙니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전직 회장의 부인과 처남이 관련되고 금융사 지배구조 이슈와 연관되는 매우 민감한 사안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도 아닌 임종룡 회장이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했다는 건 이해가 안 됩니다. 이복현 원장 지적대로 뭔가 숨기는 게 있다는 의심까지 하는 게 오히려 상식입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 금감원은 재검사에 나서 손태승 전 회장의 행장 재임 기간(2017년 12월~2020년 3월)까지 들여다보고, 우리은행만이 아니라 우리종금(우리투자증권) 우리금융저축은행 우리캐피탈 우리카드 등 전 계열사로 확대해 관련 대출을 파악 중입니다. 그 결과 저축은행 캐피탈 카드 등에서도 관련 여신 27억원이 드러났습니다. 당초 <블로터> 등이 제보를 받아 제기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이와 관련 손 전 회장의 처남인 김 모씨는 우리종금에서도 대출을 받은 적이 있다고 <블로터>에 밝힌 바 있습니다.
검찰도 수사에 나서 우리은행 본점 여신 관련 부서와 조병규 행장실 등을 압수수색했습니다. 일반 금융사고 때와는 관계 당국의 대응이 많이 다릅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검사가 마무리되면 금융당국은 임종룡 회장, 조병규 행장, 우리금융지주를 놓고 문책을 본격 검토할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은행법상의 미보고나 미공시의 문제가 아닙니다. 금융사 지배구조법상 내부통제와 관련해서도 위법 여부를 살펴봐야 합니다. 특히 올 1월 우리금융저축은행에서 7억원의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대출이 일어난 것은 설령 정상적인 심사를 거쳤다 해도 충격입니다. 이때는 우리금융지주와 임종룡 회장이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에 대해 이미 파악한 이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금융지주의 계열사에 대한 내부통제와 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금융 이사회가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를 결의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우리금융이 기관경고 이상의 제재를 받으면 M&A는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당국의 제재 결정이 늦어져 생보사 인수 승인이 지연되는 것도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큰 리스크입니다.
이복현 원장이 현 집행부 내에서도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 만큼 임종룡 회장이나 조병규 행장 중 최소 한 사람은 문책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임종룡 회장 입장에서는 본인은 피하고 조병규 행장이 모든 책임을 지더라도 리더십에 큰 타격을 입을 것입니다. ‘꼬리 자르기’라는 비난도 예상됩니다.
이번 우리금융 전 회장 친인척 대출 사고에 대한 이복현 원장과 금감원의 대응을 놓고 금융권 일각에서는 ‘단순한 금융사고 미보고’를 과잉 대응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정도의 ‘경미한 사고’는 흔한 일인데 과연 CEO까지 책임질 사안인가라는 반문입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금융당국과 우리금융 주변에서는 이런저런 음모론도 나옵니다. “임종룡 회장이 외부의 청탁을 거절해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입니다. “임종룡 회장은 우리금융이 망가진 게 외부 청탁 때문이라고 판단해 그룹을 경영하면서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원래부터 그런 걸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보니 타깃이 된 것 같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임종룡 회장이 얼마 전부터 이런 문제로 고민을 많이 했고, 주변 지인들에게 토로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강하게 나옵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의 대응은 변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미숙하고, 임종룡답지 않은 일 처리”라는 것입니다. 또 “원칙에 따른 경영을 강조하면서 왜 특정 인맥을 그렇게 중용했느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역대 정권을 넘나들며 요직을 맡았고, 모피아(재무관료 출신 인사) 세력을 대표하며, 여전히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관료 후배들이 많은 ‘해결사’ 임종룡 회장이 본인과 우리금융이 당면한 위기를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해 나갈지 자못 궁금합니다.
재무부 사무관 시절부터 30년 가까이 지켜본 임종룡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사람이 아닙니다. 과거 중도 하차한 재무 관료 출신의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과는 다릅니다. 임종룡 회장에게는 그를 응원하는 현직 후배 관료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는 게 큰 힘입니다.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에 대한 징계‧문책의 키는 임 회장의 후배 관료들이 포진해 있는 금융위원회가 쥐고 있습니다. 이미 취임 2년을 넘긴 이복현 금감원장이 중도에 물러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은 이복현 원장이 아닌 임종룡 회장 편일지도 모릅니다. 모피아 세력의 대표 선수인 임종룡 회장과 윤석열 정부의 실세인 이복현 금감원장의 충돌은 어떻게 결론 날까요?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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