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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끊고 술도 안마시고 주말에도 공부 전념
사장단 장·단점 등 메모해 사외이사들과 공유
內訌없고 신뢰받는 ‘일등보다 일류회사’ 목표
‘일목삼악발 일반삼토포’(一沐三握髮 一飯三吐哺), 한번 머리를 감다가 세 번이나 머리털을 움켜쥔 채 나오고, 밥을 한 끼 먹다가 세 차례나 뱉으면서 나와 사람을 만나고 공무를 처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만큼 혼신을 다해 일한다는 뜻입니다. 중국 고대사에서 최고의 성인 중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주나라 문공(文公), 희단(姬旦)의 업무 스타일을 상징하는 문장입니다.
‘논어’에는 꿈에서 주공(周公)을 보지 못한 지가 오래됐다며 자신의 노쇠함을 탓하는 대목이 나올 만큼 공자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이 바로 주공 희단입니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존속한 790년의 역사를 갖는 주나라의 개국 공신이자 고전 ‘주역’을 완성한 최고의 지식인이며 어린 조카를 왕으로 앉혀 7년이나 섭정을 하면서도 자리를 욕심내지 않았던 유명한 재상입니다.
신한금융의 진옥동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한 이래 좋아하던 골프를 끊었고 술도 안 마십니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에 평소처럼 일어나 운동하고 나서는 하루 종일 평소 못 봤던 리포트를 읽고 책을 봅니다.
회장 재임 기간 중 골프를 하지 않았던 사람으로는 KB금융의 윤종규 전 회장이 있습니다. 윤 전 회장은 평소에 술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진옥동 회장이 특별히 말하지는 않지만 그가 술도 골프도 하지 않기로 한 것은 윤종규 전 회장이 오로지 일에만 전념해 이른바 'KB사태'로 무너진 KB금융을 일류 금융그룹으로 만든 데 크게 자극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KB금융과 달리 신한금융은 2010년 ‘신한사태’를 기점으로 추락하기 시작해 아직도 예전의 일등 금융그룹의 위상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금융이 다시 1등이 되느냐 못 되느냐는 진옥동 회장한테 달렸다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옥동 회장의 경영목표가 거창하거나 대단하지는 않습니다. 그에게 경영 비전을 물으면 내홍(內訌)이 없고 고객들이 가장 신뢰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소박한 대답을 합니다. ‘정도경영’을 말하고 ‘1등보다는 일류’가 되겠다고 합니다. 후배 임직원들에게는 '스캔들 제로(Zero)' '고객 편의성' '지속 가능한 수익' 등을 강조합니다. 그룹 내 일부에서는 큰 비전이 없다며 비판도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습니다.
내홍 없는 조직을 강조하는 것은 ‘신한사태’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일 것입니다. 조직이나 기업이 무너지는 것은 외부 요인 때문이 아니라 내부 갈등에 의해, 내부의 적에 의해 스스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다행히 신한금융은 진 회장 취임 이후 지난해 10월 법정 합의를 통해 ‘신한사태’에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조용병 전 회장이 은행연합회장에 취임하고 신상훈 전 사장이 한국여자농구연맹 총재에 오른 것도 내부 화합에 큰 힘이 됩니다. 진옥동 회장도 이를 위해 애를 많이 쓴 것으로 전해집니다.
고객들이 신뢰하는 회사가 되고 일류 금융사가 되려면 무엇보다 금융사고가 없어야 합니다. 진옥동 회장은 우리금융 전 회장의 친인척 관련 대출 비리가 터지자 신한금융그룹 경영진의 친인척 관련 대출을 파악하도록 했습니다. 신한은행은 진옥동 회장의 ‘스캔들 제로’ 방침에 맞춰 은행권 처음으로 ‘책무구조도’를 도입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분명히 했습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신한은행은 올해 들어서는 그야말로 거의 사고가 없는 ‘스캔들 제로 은행’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룹 사장단 회의 때 경영실적을 갖고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늘 어떻게 미래에 대비할지, 미래에는 뭘 먹고 살지, 어떻게 고객들이 만족하는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사장단에 묻고 토론했습니다.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도 계열사 사장들과 회의할 때면 절대 실적과 관련한 계수 보고는 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계수는 CFO가 관리하는 것이지 CEO의 핵심 업무는 아니라는 게 진 회장의 생각입니다. 1등이 아닌 일류가 되겠다는 그의 철학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됩니다.
신한금융은 올해 말부터 내년 3월까지 계열사 14명의 CEO 가운데 12명이 임기 만료됩니다. 신한금융은 이미 ‘자회사 최고경영자 후보 추천위원회’를 가동해 실무 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계열사 사장 인사를 결정하는 ‘자경위’는 진옥동 회장을 위원장으로 4명의 사외이사로 구성되는데 자회사 사장단 인사와 관련한 진 회장의 생각은 분명합니다. 계열사 사장 인사는 물론 회장 본인 인사도 금융지주 회장이 정하는 게 아니라 구성원들과 이사회가 동의하고 결정하는 것이라는 철학입니다.
진옥동 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평가와 관련해 늘 작은 메모 노트를 가지고 다닙니다. 1년 동안 개별 CEO와 일하면서 느낀 점이나 각자의 장단점 등을 그때그때 생각나는 대로 기록해 둡니다. 일부 사장들은 이 노트를 ‘살생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렇게 무시무시한 것은 아니고 그룹 회장이 본 사장 개인별 평가 정도로 보면 됩니다. 진 회장은 지점장 시절에도, 은행장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개별 임직원들에 대해 평가했습니다.
이렇게 기록된 내용들은 반드시 본인한테 알려줍니다. 개별적으로 불러 메모 노트에 기록된 내용들을 읽어주는 식입니다. 직접 말로 하기는 쑥스러워서 읽어주는 방식을 택했다고 합니다. 진옥동 회장은 연말 연초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는 자신의 노트에 기록된 내용들을 자경위 멤버인 사외이사들에게도 공개하고 공유할 생각입니다. 이런 방식의 소통을 통해 자회사 사장들에 대한 거취를 이사회와 함께 결정합니다.
진옥동 회장은 신한금융이 ‘지속 가능한 수익’을 확보하려면 특히 비은행 분야 강화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판단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금융이 인수를 추진 중인 동양생명 등에 대해서도 이미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동양생명은 여러 이유로 접었지만 언제든 좋은 매물이 나오면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전임 회장 때인 2019~2020년 두 차례에 걸친 1조9000억원 유상증자로 크게 떨어진 주가를 올려 주주들에게 보답하는 것도 큰 과제입니다. 진옥동 회장은 이를 위해 현재 5억 주가 넘는 주식 수를 2027년까지 3조원 가량 투입해 5000만 주 이상 소각해 4억5000만 주 수준으로 낮출 계획입니다. 이렇게만 하면 얼추 KB금융과 비슷하게 됩니다.
머리를 감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세 번씩이나 중단하고 사람을 만나고 일을 봤던, 공자가 흠모했던 주공처럼 신한금융 진옥동 회장도 골프도 안 치고 술도 안 마시며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소박한 도전이 어디까지 갈지, 어떤 성과를 거둘지, 또 신한금융은 다시 일류 금융그룹이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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