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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동업도 시대와 상황이 만들어낸 산물
주주는 가치와 경영철학 공유하는 동반자
고려아연 장기성장 지지할 새 주주 찾아야
추석연휴 직전인 지난 13일 ㈜영풍과 한국기업투자홀딩스(MBK 설립 SPC)가 고려아연 주식에 대한 공개매수를 전격 공시했다. 선대 창업주부터 75년을 유지해 온 동업관계를 끝내고 영풍 장씨 일가가 사업 파트너를 고려아연 최씨 일가에서 외부 사모펀드로 교체하기로 공식화한 것이다. 자본시장과 재벌가에서 더 격한 다툼도 일상적으로 봐온 터라 별로 낯설지도 않다. 친족도 아닌 동향 출신 창업 동반자로 두세대에 걸쳐 동업을 유지해왔다는 사실만도 대단한 일이다.
고려아연의 헤어질 결심은 2019년 3월부터 대표이사직을 수행해온 창업 3세 최윤범이 2022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화됐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다툼은 소유구조를 장씨 일가가 장악하고 있지만 경영권을 최씨 일가가 행사하는 독특한 구조에서 비롯됐다. 창업 2세까지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협업과 동업이 유지돼 왔지만 3세 경영으로 내려오며 불편한 동거를 정리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장씨 일가는 33.14%의 고려아연 최대주주로서 소유구조 지배력을 이사회와 경영전반으로 확장하려 했겠지만 최씨 일가는 15.61%의 취약한 소유구조가 그들이 생각하는 경영전략 추진의 걸림돌이라 여겼을 것 같다. 이에 최윤범 회장은 2022~23년 우호지분 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화 LG 현대차 등 비즈니스 관계가 있는 국내 대기업 해외법인과 신주발행 자사주 매각 등을 통해 협업 강화와 우호지분 확대를 적극 추진했다. 그 결과 15.61%에 불과한 최씨 일가가 우호 지분의 힘으로 33.14%의 장씨 일가와 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신사업진출에 대해서도 입장이 크게 엇갈린다. 고려아연의 최윤범 회장은 2차전지 소재, 신재생에너지 등 신사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투자재원 마련을 위해 차입을 늘리고 배당도 축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영풍의 장형진 고문이 무리한 투자로 재무건전성이 훼손될 리스크를 우려하고 배당을 축소하는 정책도 반대했다.
동업의 상징인 영풍그룹 계열사 서린상사(현 KZ 트레이딩)의 지배구조 개편 과정이 양 가문의 이별을 공식화하는 정점이 됐다. 서린상사는 고려아연의 비철금속 제품을 해외로 수출하고 광물 원자재를 수입해 영풍 계열사에 공급하는 사업이 주력이다. 법적 다툼으로 연기됐던 3월 정기주총이 8월 임시주총으로 대체됐고 소유지분 66.7%로 대주주인 고려아연은 33.3% 소수지분으로 영풍이 지배하던 서린상사의 경영권과 이사회 등 지배구조를 마침내 장악하게 됐다.
이해관계가 서로 다른 주주를 경영에 끌어들이면 소란이 더 커진다. 최씨 일가가 고려아연 경영권 사수에 집중한 반면 장씨 일가는 경영권을 내주며 사모펀드 MBK를 끌어들였다. 지분율 16.4% 정도로 고려아연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온 한화 LG화학 현대차 등 국내 재벌가도 본의 아니게 지분경쟁에 끼어들게 돼 마음이 편치 못하게 됐다. 주주는 아니지만 중요한 이해관계자로 정치권과 노조도 인수경쟁 논란의 당사자로 합류했다. 그야말로 전방위로 고려아연의 지분경쟁 논란이 확전되는 모습이다.
지배구조를 장악하고 경영권을 강화하려면 확고한 소유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자본시장에서 지분경쟁(M&A)은 돈이 결정한다. 누구의 자금줄이 더 든든한 지에 따라 고려아연의 주인이 정해질 것이다. MBK와 계약에서 장씨 가문은 고려아연을 경영할 뜻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고려아연의 경영권 향배는 MBK와 최씨 일가의 자금 동원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MBK가 목표한 최소지분 7% 확보 여부도 공개매수가격 66만원을 이미 넘어선 주가를 어느 정도까지 조정해 반영할 지에 달린 것 같다.
동업하던 파트너와 아름다운 이별은 매우 수준 높은 절제와 상호 공유된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2004년 LG 구씨 가문과 GS 허씨 가문의 이별이 최근 우리들이 지켜본 나름 아름다운 이별중의 하나였던 것 같다. 워런 버핏은 ‘사업은 본질적으로 장기적이기 때문에 삶의 동반자처럼 인생을 함께 할 생각이 없으면 동업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의기투합해 동업으로 성공한 창업주들이 물러나고 이어받은 후대 경영자들은 성장배경과 처한 환경이 다르고 삶을 대하는 태도와 생각도 다르다. 세월이 흐를수록 헤어질 결심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는 것이다.
고려아연 최씨와 영풍그룹 장씨는 애당초 아름다운 이별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도 모른다. 태생적으로 한 뿌리에서 출발한 동일한 사업모델을 가진 회사다. 분화되어 경쟁관계로 발전한 회사와 소유지분을 매개로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고려아연은 아연 구리 금 등 비철금속의 제련과 판매가 거의 전부인 핵심 비즈니스다. 영풍도 매출액 40% 이상이 제련부문에서 발생한다. 정제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 활용이나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관계다. 협업으로 누리는 제련 수수료 협상력과 비용 시너지 효과가 점차 반감되고 비전과 성장전략에 대한 이견이 누적되면 각자도생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고려아연은 해외합작투자 신사업 추진 등 아연을 넘어 다양한 금속정제로 사업확장을 도모하는 독립적 경영제체 구축에 몰두했다. 영풍은 사업다각화 리스크를 택하기보다 그동안 잘해온 아연 구리 정제업과 전자부품업에 집중하며 내부관리에 치중하는 보수적 경영스타일을 고수했다. 두 가문의 비즈니스 가치와 경영철학이 부딪히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공개매수 공시 직전인 9월 12일 기준으로 최윤범이 대표이사로 취임한 2019년 3월22일 이후 고려아연 시총은 32% 상승한 반면 영풍의 시총은 31% 하락했다. 최윤범이 회장으로 승진한 2022년 12월 12일 이후 고려아연 시총이 5% 줄었지만 영풍은 17% 감소했다. 시장은 고려아연 최씨 손을 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가 평생의 비지니스 동반자로 한세기를 풍미할 수 있었던 것은 소유지분으로 서로 다툴 일이 없었기 때이다. 소유지분으로 보면 버핏과 찰리는 동업자는 아니다.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 15.7%(의결권 31.6%)를 보유한 반면 찰리 지분은 0.3%에 불과했다. 찰리는 버핏의 경영고문이나 조언자 역할로 평가받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버핏은 찰리를 존중하고 그의 조언을 경청했으며 찰리는 버핏의 경영능력을 믿었다. 올 해 2월 공개된 버크셔 해서웨이 2023년 연차보고서에서 버핏은 작년 11월 타계한 찰리를 추모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찰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진정한 설계자였으며 나는 그의 비전을 실행하는 건축업자 역할을 했다’고 회고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은 잘 알려진 대로 버크셔 해서웨이 클래스 A주식이다. 클래스 A를 보유한 주주는 1500명 남짓인 것으로 알려진다. 2024년 9월 17일 현재 주가가 68만5250달러(한화 9억2000만원)에 달하며 조만간 70만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1주에 10억원에 이르는 주식을 보통 사람이 매입한다는 것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다. 의결권이 1/10000 주에 불과한 클래스B 주식도 주당 457달러(한화 61만원)로 낮지 않다. 2023년 주주서한에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계좌가 300만개 정도라고 밝혔다.
많은 일반투자자들도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가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워런 버핏은 보통 사람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비싼 주식을 액면분할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주주구성이 대중적으로 분산되면 자신의 경영철학을 펼치기 어렵다는 이유다. 단기시세차익을 노리는 투자자가 다수 주주로 구성되면 자신의 경영철학과 배치되는 요구가 커질 것을 우려했다.
워런 버핏의 생각처럼 기업의 소유구조는 지배구조보다 더 중요하다. 소유구조가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는 기업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경영통제와 의사결정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소유구조가 지배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어도 지배구조가 소유구조를 통제할 수는 없다. 고려아연 주주들이 지분확대 경쟁을 벌이는 이유다.
영풍의 장씨 일가가 대표주주로 내세운 사모펀드 MBK에 대적할 우호주주로 고려아연 최씨 일가가 누구를 데려올 지 궁금하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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