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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M&A 아닌 1대주주의 지배권 강화
소유구조와 지배구조 충돌땐 지분율 ‘우선’
한국앤컴퍼니 때와 달리 MBK 이번엔 ‘명분’
주주들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경우 지분율 격차가 크지 않으면 현 경영진 측이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공격보다 방어가 쉽기 때문이지만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경영권 분쟁에서는 이사회를 장악하는 것이 중요한데 당연히 이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현 경영진입니다. 공격하는 측에서 설령 과반 이상 지분을 확보하더라도 이사회를 장악하지 않고는 한 걸음도 나가기 힘듭니다. 기존 이사회를 바꾸는 것은 특별결의 사항이어서 참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이사회 결의를 거치지 않고는 주주총회를 개최하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경영권 분쟁은 한편에서는 여론 싸움입니다. 우호 지분을 1%라도 더 확보하려면 여론전에서 이겨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명분이 중요합니다. 언론은 물론 자본시장과 재계 동향, 정치권이나 정부 입장, 임직원들과 노조의 움직임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당연히 이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 온 현 경영진이 유리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려아연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는 영풍그룹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의 분쟁도 현재 이사회를 장악하고 임직원들의 지지를 받 는 최윤범 회장 측이 유리하다고 봐야 합니다. 심지어 고려아연 기술인력들은 MBK가 분쟁에서 이겨 고려아연을 인수하면 모두 회사를 떠날 것이라고까지 경고합니다.
고려아연의 지분 구성만 놓고 보면 영풍과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등 장씨 오너가 지분이 33.1%, 최창근 고려아연 명예회장 등 최씨가가 15.9%로 애초에 경쟁이 안 됩니다. 그럼에도 최씨 일가는 최윤범 대표가 2022년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1대 주주인 장씨가문을 뒤로하고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시작합니다.
한화 LG 현대차그룹 등 비즈니스 관계가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 투자 및 자사주 교환 등으로 총 17.3%의 고려아연 지분을 갖게 된 것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입니다. 한화(7.75%) 현대차(5.05%) LG그룹(1.89%) 등은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최씨가의 백기사 지분으로 보는 게 상식입니다. 이들 대기업 우호 지분 17.3%까지 합치면 최씨 가문은 33%의 장씨가와 지분율이 비슷해져 해 볼만한 싸움이 됩니다.
고려아연을 둘러싸고 분쟁이 터지면서 최씨 측과 그들을 지지하는 울산시와 일부 정치권, 내부 임직원들은 ‘약탈적 적대적 M&A’라며 목소리를 높이지만 1대 주주인 영풍과 장씨가 입장에서 보면 분통이 터질 것입니다. 엄연히 주인은 자기들인데 지분이 절반밖에 안 되는 최씨들이 고려아연을 삼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소유구조(지분율)와 지배구조(경영진 및 이사회 구성)로 유지되는데 소유구조와 지배구조가 충돌할 때 우선시 돼야 할 것은 당연히 소유구조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지분율입니다. 이 원칙이 흔들리면 기업도 자본주의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풍이 입장문을 통해 “고작 2.2% 지분을 가진 경영대리인(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75년간 이어온 동업 정신을 훼손하고 고려아연을 사유화하기 위해 전횡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편에서 납득이 됩니다. 영풍의 주장대로 이번 공개매수는 적대적·약탈적 M&A가 아니라 1대 주주의 정당한 지배권 및 경영권 행사로 봐야 합니다.
게다가 최윤범 현 회장은 신재생 에너지 및 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 순환 등을 신성장 동력으로 삼아 의욕적으로 사업을 추진 중이지만 성과는 시원찮습니다. 특히 SM엔터테인먼트 주식 인수에 동원된 원아시아파트너스와 전자 폐기물 재활용 업체인 미국 이그니오홀딩스 투자와 관련해서는 여러 의혹들이 쏟아집니다.
소유구조 측면에서는 지분이 자신들의 절반밖에 안 되지만 이사회를 장악한 2대 주주가 경영권을 무기로 ‘반란’을 일으켰을 때 1대 주주인 영풍과 장씨 일가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게다가 고려아연 현 경영진이 여러 신사업에 투자하다 보니 배당도 충분히 받지 못합니다. 결국 엑시트(Exit) 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 끌어들인 게 국내 사모펀드 대표주자 MBK파트너스입니다.
영풍은 MBK에 자사가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 절반과 1주를 넘기고, MBK는 고려아연 지분 7~14.6%를 공개 매수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우 공개매수 대금은 최대 2조원에 이릅니다. 이번 딜이 계획대로 마무리된다면 영풍은 MBK에 잔여 지분을 넘기고 고려아연을 떠날 것으로 보입니다.
자본주의 기업경영에서 최우선시되고 존중받아야 할 것은 지배구조가 아닌 소유구조지만 현실은 좀 다릅니다. 소유구조보다 지배구조를 장악한 쪽이 유리합니다. 현재 진행형인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납니다. 언론도 재계도 정치권도 노조도 굳이 말하자면 장씨 가문 보다는 최씨 가문에 우호적인 분위기입니다. ‘약탈적이고 적대적인 M&A’, ‘재벌 대 사모펀드의 싸움’ ‘고려아연의 중국 매각’ 등이 모두 현재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는 최씨 가문에 유리한 프레임입니다.
이 과정에서 욕을 제일 많이 먹는 쪽은 사모펀드 MBK입니다. MBK는 지난해 말 형제 간 경영권 다툼이 진행중이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에 주식 공개매수 방식으로 참전했다가 실패한 ‘전과’가 있어 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한국앤컴퍼니와 고려아연은 달라도 많이 다릅니다.
지난해 MBK가 경영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현범 회장 반대 편에 서서 공개매수를 추진하던 당시는 조현범 회장 지분율이 42%, MBK가 지지했던 장남 조현식 고문과 차녀 조희원 씨 지분은 합계 29.45%였습니다. 10% 포인트 이상 지분율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 2대 주주 편을 들어 공개매수에 나섰던 그야말로 적대적 M&A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고려아연은 1, 2대 주주 간 지분율이 33%대 16%로 1대 주주 지분율이 2대 주주 보다 배 이상 많은 상황에서 MBK가 1대 주주 편에 선 것입니다.
따라서 MBK가 이번 경영권 분쟁에 참전하면서 대외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주주가치 제고 등을 차치하더라도 단순히 사모펀드라는 이유로 욕먹고 비난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이번만은 MBK도 명분이 있습니다. 언론도 재계도 정치권도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한쪽을 편든다면 대한민국 자본주의는 큰 상처를 입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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