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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탐구] 돌아온 박은영 광장 변호사 "복합 국제분쟁 시대 '종합병원식' 전략 필요"

Numbers_ 2024. 11. 14.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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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탐구] 돌아온 박은영 광장 변호사 "복합 국제분쟁 시대 '종합병원식' 전략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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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영 변호사 /사진 제공=법무법인(유) 광장


"귀사의 성공과 안녕을 바라며..."

수년 전 박은영(연수원 20기) 변호사가 한국 기업과 해외 기업 간 분쟁에서 국제중재를 맡았을 때 일이다. 앞서 한국 기업이 사업 파트너인 해외 기업에 보냈던 감사 메시지로 인해 '이 클레임은 억지 주장'이라는 오해가 생겼다. 계속 친절한 메시지만 보내던 한국 기업이 갑자기 해외 기업의 문제를 지적하며 중재를 신청할 리 없다는 취지였다.

박 변호사는 "당시 한국 기업은 불편을 참고 오히려 더 잘해주면 상대방도 잘해줄 것이라는 한국적 사고방식으로 전한 인사였지만 다른 문화권인 서구 중재인은 이를 신뢰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여러 기준과 가치가 충돌하는 국제중재에서는 법률 전문성과 더불어 문화의 차이를 보편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보편성'은 30년 가까이 국제중재 무대에서 활약한 박 변호사의 원칙이다. 법률 행위의 외형은 비슷해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동기가 다르고 각자의 문화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이에 박 변호사는 중재에 임할 때 선의와 악의 같은 더욱 근본적인 보편성의 문제로 설득력 있게 변론하도록 사안을 재편성했다.

판사 생활을 하던 박 변호사가 국제중재 업무를 시작한 건 1997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합류하면서다. 국제 업무를 하고 싶었던 그는 김앤장에서 국제분쟁해결팀을 이끄는 한편 국제변호사협회(IBA) 중재위원회 부의장, 싱가포르 국제중재원(SIAC) 이사, 런던국제중재법원(LCIA) 부원장 등을 역임하며 이름을 떨쳤다. 현재 SIAC 중재법원 상임위원 및 한국 평회의 의장, 인도 국제중재조정센터(IAMC) 감독위원, 국제상업회의소(ICC) 국제중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2년 박 변호사는 '독립 중재인'으로 출발하기 위해 김앤장을 떠났다. 특정 로펌에 소속되지 않은 진정한 '프리랜서 재판관'의 길을 택한 것이었다. 그런데 돌연 2년 만에 법무법인 광장으로 돌아와 국제분쟁그룹을 출범했다. △국제중재팀 △국제소송팀 △국제IP분쟁팀 △국제통상분쟁팀 △경제제재대응팀을 만들어 덩치를 키우고 전문화했다.

박 변호사가 조직에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분쟁그룹장 박 변호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제중재 30년, 분쟁 패턴·예방책 보여...누구에게라도 도움되겠다"

 

광장 국제분쟁그룹.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한상훈, 박정민 변호사, 정기창 외국변호사, 정유철, 장주봉, 장준아, 김진욱 변호사, 신정아 외국변호사, 박환성, 박은영, 이연우, 이경훈 변호사 /사진 제공=법무법인(유) 광장

 

 

-광장과 어떻게 연락이 닿았나

 

△광장에서 국제중재팀을 강화하고 재편할 필요성이 있다며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로펌을 떠나 독립 중재인으로 잘 활동하고 있던 터라 처음에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국제중재는 국제적인 성격 때문에 로펌의 열의 및 리더십과 경영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광장과 대화를 이어가던 중 국제중재뿐 아니라 국제분쟁을 전체적으로 강화하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여기에 광장이 깊이 공감하고 그 역할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하며 대화가 빠르게 진전됐다.

-독립 중재인을 그만둔 아쉬움은 없었나

△독립 중재인은 조직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편한 부분은 있었다. 그런데 마음에 아쉬움이 있었다. 국제중재를 하며 늘 부딪히는데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 중 하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는 제대로 권익을 보장받거나 대변 받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아시아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세계 경제를 구성하는 하부 구조를 뒷받침한다. 상부 구조를 구성하는 규범과 기준은 여전히 서구의 것이다. 특히 상부 구조의 첨병은 서구 중심의 중재다. 독립 중재인을 하면서 시야가 넓어지자 이런 점이 더욱 느껴졌다.

오랜 시간 중재 업무를 하다 보니 분쟁이 일어나는 패턴과 예방책이 보였다. 내게는 한국과 서양 문화를 모두 경험하고 국제중재인의 생각을 잘 안다는 장점도 있다. 이를 활용해 기업에 분쟁 예방책 등을 얘기해 주고 싶은데 중재인은 종결 단계에서 잘잘못만 판단할 수 있다. 기업의 수요가 있는지, 현장의 소리가 어떤지도 알기 어려웠다. "과거 대리인이었을 때 알았다면 기업을 종합적으로 도울 수 있었을 텐데"라는 여운이 남았다. 그러던 차에 광장의 제안을 받았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전문팀을 재정비하기보다 국제분쟁그룹을 구성한 이유는 무엇인가

△복합적인 양상을 띠는 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최근 세계는 자유무역에서 반세계화, 탈세계화, 지역 블록화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각국은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국가를 제재하고, 강대국은 다른 나라에 자국법을 적용한다. 통상 분쟁, 경제 제재 등은 서로 얽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다. 국제 규범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WTO 등은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유엔은 기능을 못 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는 전문팀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분쟁에 종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의료로 따지면 종합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아 병을 예방하고 협진을 통해 치료받는 것이다.

-종합화를 통해 그룹은 어떻게 성장할 수 있나

△국제중재의 외연이 넓어진다. 중재는 분쟁을 해결하는 플랫폼과 절차다. 분쟁 자체의 성격과 특성과 관련된 전문 분야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더 효과적이다. 사소한 경제 제재 문제라고만 생각했다가 종합적인 대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연관 산업팀과 협업해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전략적 사고가 가능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할 수도 있다. 

-기존 국제중재팀에서 활동하던 변호사들의 반응은 어땠나

△다들 막연하게 종합화에 대한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었다. 분쟁 현장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건을 해결하느라 종합적인 대응은 쉽지 않았다. 이번에 국제분쟁그룹이라는 우산을 만들고 나니 그 안에서 변호사들이 입체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대가 크다. 나 역시 기존에 있던 팀을 맡아 관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흩어진 조직을 체계적으로 엮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중이다.

광장이 국제분쟁 해결의 중심축 되도록 변화 만들 것 

박은영 변호사 /사진 제공=법무법인(유) 광장

 

-'보편성'을 강조했다. 국제중재에서 보편성은 무엇인가

△국제법 자체가 원칙 중심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법이 대륙법과 영미법으로 나뉘어 있지만 기원은 로마법이다. 법체계 즉 틀은 달라도 근본으로 돌아가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 미세한 간극을 메우는 법률가의 시각이 합리성의 법칙이고 보편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일률적으로 매뉴얼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같은 원칙을 적용해도 사건과 상황에 따라 사건별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건, 중재인에 따라 전달하는 메시지(변론)도 형식과 내용이 다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중재는 기성복이 아니라 맞춤 양복이라고 보면 된다. 같은 악보를 가지고도 지휘자에 따라 연주하는 곡은 다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중재에서는 합리성이라는 보편적 기준이 어떻게 해석되고 적용되는지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도 한다.

-SIAC 중재법원 상임위원 등 외부 활동을 통해 얻는 점은 무엇인가

△국제중재 발전의 중요한 기둥은 중재의 자율성 원칙인데 그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한 자율규제 시스템이 있다. 그 시스템의 핵심에서 런던중재법원, 싱가포르중재법원과 같은 주요 중재 기관의 상임위원회가 중추적 기능을 한다. 중재 규범을 만드는 입법, 중재인을 임명하고 감독하는 사법 행정 기능 그리고 전 세계의 권위 있는 중재 전문가로 개방직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중재 규칙의 적정한 집행을 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역할을 하도록 초청받는 인사들은 중재 커뮤니티에 봉사할 기회를 영예롭게 생각하며 업무를 수행한다. 개인적으로는 커뮤니티 내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은 전문가로서 최첨단의 이슈를 다룰 기회를 얻게 된다.

-국제중재 트렌드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나

△전 세계에서 나오는 주요 중재 판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국제분쟁그룹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국, 홍콩, 싱가포르, 미국 판례를 수시로 연구하고 이를 갖고 토론한다. 최신 판례를 알고 있어야 해외의 국제중재 변호사들과 소통할 수 있다. 변호사들은 세계적인 흐름과 각 지역의 흐름을 연계해 연구하는 작업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특유한 점과 세계적인 흐름을 연결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된다.

로스쿨 학생이나 국제중재에 관심이 있는 경우라면 당장 법률 서적을 읽기보다 근세 국제사에 관심을 두는 것이 좋다. 현재 국제법 체계는 근대사의 법적인 반향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역사를 알아야 국제중재를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룹장으로서 목표는 무엇인가

△우선 광장을 국제분쟁 해결의 중심축으로 키우고 싶다. 광장 나아가 우리나라가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하려면 사회적·법적 인프라가 뒷받침돼야 한다. 이를 통해 복합적인 국제분쟁에 휘말린 누구라도 도울 수 있길 바란다. 또 차세대 국제중재 전문가를 양성할 필요성도 느낀다. 향후에는 다른 로펌의 차세대 변호사들과 함께 중재 커뮤니티에 기여하는 상황을 그려본다. 중재 플랫폼이 확장되면 우리나라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중재 관련 제도를 한국의 법체계가 수용할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많은 이들이 중재 제도에 공감하고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 외국 변호사들이 한국의 제도를 국제적인 수준이라고 신뢰하게 되면 이곳이 국제중재 중심지가 될 수 있다.

바다에 물 한 바가지 더 붓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바가지만큼은 달라진 것이다. 변화를 만들었다면 만족한다. 로펌 국제중재팀을 시작했던 1990년대 후반에도 불모지였고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으로 밥도 못 먹을 텐데 익숙한 걸 하지 왜 험한 일을 하려고 그러냐"며 말리는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런데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오랜 시간 이 일을 했던 것처럼 지금도 도전하고 싶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