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분석

[고려아연 갈등 시계제로] 자사주로 지킨 경영권…대가는 '자기자본' 출혈

Numbers_ 2025. 5. 2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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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 갈등 시계제로] 자사주로 지킨 경영권…대가는 '자기자본' 출혈

최윤범 회장 일가와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고려아연의 재무·지배구조 현황을 진단합니다. 과도한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자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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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범 회장 일가와 영풍·MBK파트너스 연합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고려아연의 재무·지배구조 현황을 진단합니다.

/그래픽=박진화 기자

 

과도한 자사주 취득은 기업의 자본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사주는 회계상 자산이 아닌 자기자본의 차감 항목(자본조정)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려아연의 자기자본이 큰 폭으로 줄어든 것도 이 같은 자사주 취득 영향에 기인한다. 고려아연은 향후 자사주를 순차적으로 소각해 자본구조를 정리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자사주 소각 시 이익잉여금이 함께 감소해 배당 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자사주 취득으로 자기자본 '마이너스'

 

올해 3월 말 기준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기주식의 장부가액은 2조662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9월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이 경영권을 위협해 오자 자사주를 취득하는 방식으로 맞선 결과다.

 

기존에도 증권사와 신탁계약을 맺고 자사주를 취득해온데다 대항 공개매수까지 나서면서 지난 한 해 고려아연이 자사주 취득에 쓴 비용은 총 2조1275억원에 달했다. 이후 우리사주조합에 1만4118주를 무상 출연했지만 여전히 2조 원에 가까운 자사주를 보유하고 있다.

 

자사주 취득은 고려아연의 자본 계정에 유의미한 변화를 초래했다. 자본변동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자본조정 항목에서 2조812억 원이 차감됐다. 이는 전년(2조927억 원)에 이어 또 한 번 자기자본을 크게 감소시킨 요인으로 자사주 취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자사주는 자본으로 인정되지 않는 자산이기 때문에 재무제표에는 '마이너스(-)'로 처리된다. 다시 말해서 취득한 자사주 만큼 자기자본을 빼줘야 한다는 뜻이다.

 

대항 공개매수 직전 9조4308억원에 달했던 고려아연의 자기자본은 현재 7조6541억원으로 감소한 상태다. 이익잉여금은 7조6000억원 수준에 이르지만 자사주 취득에 따른 자본조정 항목에서 2조원 가량이 차감되면서 전반적인 자본 효율성은 떨어졌다.

 

자사주 취득과 같은 비영업적 요인으로 자본이 변동할 때는 기업의 실질 수익성과 무관하게 자본 지표가 과대평가되는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ROE(자기자본이익률)는 분자인 순이익의 증감에 따라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분모인 자기자본이 줄어들면 실제 경영상태보다 지표가 부풀려지는 착시가 생긴다.

 

고려아연의 경우 연간 기준 ROE가 2023년 5.53%에서 이듬해 2.56%로 축소됐다. 같은 기간 고려아연의 순이익은 64% 감소했지만 자기자본이 함께 줄어 완충 작용을 했다. 자기자본이 전년 수준을 유지했다면 수익성 감소에 따라 지표는 더 크게 떨어졌다.

 

/자료 제공=고려아연

 

공개매수 자사주 내달 첫 소각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를 통해 취득한 자사주 204만30주를 전량 소각할 예정이다. 공개매수 당시 발표한 주주가치 제고 계획에 따른 조치다.

 

자사주 소각을 회계 처리하면 자본조정 항목의 마이너스가 없어지는 대신 동일한 금액 만큼 이익잉여금 또는 자본잉여금이 감소한다. 자본총계의 변동없이 자기자본 내 구성 항목만 자본조정에서 이익잉여금 또는 자본잉여금으로 바뀌는 것이다.

 

실제 고려아연은 지난해 5월 자사주 20만5305주를 소각하면서 장부가액 991억원만큼 이익잉여금에서 인출했다.

 

22일 주가로 204만30주 가치를 환산하면 1조5912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최근 3년치 순이익을 합한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배당 재원인 잉여금에서 소각 비용을 차감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소각 규모를 한꺼번에 집행하기보다는 여러 차례에 걸쳐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에 고려아연은 총 세차례에 걸쳐 순차적으로 자사주를 없앨 예정이다. 1차 소각분인 68만10주를 6월 12일에 처리하고, 9월, 12월에 각각 68만10주 씩 소각할 방침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공시한 일정대로 자사주를 소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