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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후 쌈짓돈 거둬 '셀프 투자'…구멍 뚫린 건근공 '천태만상'

Numbers_ 2025. 5. 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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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노후 쌈짓돈 거둬 '셀프 투자'…구멍 뚫린 건근공 '천태만상'

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한 본부장이 리베이트는 물론 차명으로 회사를 만들어 공제회로부터 출자까지 받으려 한 정황이 드러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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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용직 건설 노동자들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건설근로자공제회에서 투자를 담당하는 한 본부장이 리베이트는 물론 차명으로 회사를 만들어 공제회로부터 출자까지 받으려 한 정황이 드러났다. 아울러 주요 공제회 임직원들에 대한 주식 매매 규정이 없던 점도 밝혀지는 등 연기금의 내부통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근로자의 은퇴 후 삶을 뒷받침해야 할 공제회의 자금운용 곳곳에 허점이 발견되면서 비판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은 건근공 이사장을 상대로 기관에 재직 중인 A 본부장에 대한 파면을 요구했다. 2011년부터 건근공에서 근무해 온 A 본부장은 2016년 팀장에 올랐고 지난해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A 본부장은 2016년부터 투자 검토 업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배우자, 자녀 등의 명의로 각종 사익을 추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팀장 시절이었던 2019년 말 감정평가사 지인의 명의로 A 주식회사를 설립, 2020년 4월 공제회 투자와 관련된 현지 브로커로부터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후 아무런 용역 수행 없이 컨설팅 수수료 2억8500만원을 수취하도록 했다.

2020년에는 해당 차명회사를 통해 처남과 허위 미술품 거래 계약을 체결한 후 처남에게 2억5000만원을 송금했고 다시 배우자 명의 계좌를 거쳐 본인 계좌로 2억5000만원을 그대로 건네받았다. 

특히 해당 본부장은 공제회 자금으로 조성된 펀드를 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출자확인서를 허위로 발급받아 차명회사를 업무집행사원(GP)로 등록했다. 출자확인서에 날인하는 과정에서 공제회 인감도 부정하게 사용되도록 했다고 감사원은 전했다. 

2024년 1월 본부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자신이 사적으로 추진하는 우드펠릿 사업에 공제회 자금을 몰래 투자해 펀드를 조성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펀드의 규모는 총 300억원이었다. 해당 펀드 운용에 자신의 차명회사를 참여하도록 해 펀드 관리보수를 수취하려고 계획했다.

또 공제회 자산운용 담당 직원의 경우 주식 매수가 금지돼 있는데도 자신 명의의 계좌뿐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명의의 계좌까지 이용해 최소 26억6800만원의 주식 매수 행위를 했다. 특히 투자심의위원회 자료를 통해 투자 대상 회사의 내부 정보 및 향후 실적 전망 등을 확인한 후 직무 관련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는 등 공제회에서 투자한 상장·비상장 회사의 주식을 매수하기도 했다.

건근공은 고용이 불안정한 건설 근로자들의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퇴직공제에 가입한 건설사업주가 매월 고용한 건설 근로자의 근로일수에 따라 공제부금을 납부하면 공제회에서 이를 적립해 건설 근로자가 퇴직할 때 지급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2024년 말 기준 운용자산은 5조546억원이다. 이중 대체투자 평가액은 1조5770억원이다.

감사원은 "근로여건 및 소득수준이 상대적으로 열악하고 고용이 불안정한 건설 일용직 근로자들의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노후생활 안정을 위해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으로서 높은 공공성이 요구되는데도 공제부금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이용한 것으로서 비위의 정도가 심하다"고 지적했다.

내부통제 부실은 다른 공제회들도 마찬가지였다.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공우이엔씨는 2019년 11월부터 인천 생활형숙박시설 사업에 시공사로 참여했지만 사업수익 대비 무리하게 보증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사업비 지출 점검 등 사업 관리를 하지 않았다.

특히 공제회 B 실장은 공우이엔씨 대표와의 친분관계(육사 선후배)를 사유로 사업 문제점을 은폐하기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공제회가 사업비 점검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우이엔씨가 변제해야 할 대출금은 367억원까지 늘어났다. 해당 사업은 2022년 5월 분양률 저조로 무산됐다.

아울러 주요 공제회 중에는 주식 매매에 대한 제한 규정을 마련하지 않은 곳도 있었다. 은행과 연기금 등은 임직원의 금융투자상품 매매를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공제회와 소방공제회, 지방재정공제회는 금융투자상품 거래 제한 규정이 없었고 군인공제회와 행정공제회, 중소기업공제회, 건근공은 거래제한 규정은 있지만 규정 준수 여부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고 있었다. 특히 주기적으로 점검하지 않은 4곳에서 총 22명이 규정을 위반하고 주식 등을 매입했거나 매도·보유 등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거래제한 규정 여부를 점검하지 않은 7곳의 점검대상 328명 중 154명이 총 7만2199회에 걸쳐 주식 등을 거래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누적액은 3816억7900만원에 달했다. 

이같은 공제회의 내부통제 부실은 사모펀드 운용사 등에 대한 출자 심사가 강화돼 온 흐름과 대비된다. 특히 금융당국이 은행과 증권사 등 금융사에 대한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지만 사실상 공제회는 사각지대에 있던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감사원의 공제회 조사 결과는 증권사, 운용사 등이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추세와 비교된다"며 "공제회 자체적으로 출자 심사를 강화하고 있으면서 오히려 내부 문제는 바로잡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한새 기자 sae@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