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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간 IPO 시나리오? 'SK온·SK엔무브' 둘러싼 셈법

Numbers_ 2025. 6. 2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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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건너간 IPO 시나리오? 'SK온·SK엔무브' 둘러싼 셈법

SK이노베이션이 추진해온 자회사 기업공개(IPO) 전략이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 SK엔무브 상장은 사실상 철회되며 지분 전량이 모회사로 회수된다. SK온 상장 역시 당분간 보류되는 분위기다. 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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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이 추진해온 자회사 기업공개(IPO) 전략이 중대 전환점을 맞았다. SK엔무브 상장은 사실상 철회되며 지분 전량이 모회사로 회수된다. SK온 상장 역시 당분간 보류되는 분위기다. 최근 양사 합병설까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내부재편을 통한 구조조정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당초 계획했던 자회사 IPO에 따른 외부 자금 조달 대신 그룹 내부 인수합병(M&A)을 통한 자금 확보 쪽으로 선회한 모양새다. 이는 단순한 경영 판단을 넘어 정부의 규제 기조 변화, 자본시장 환경, 자회사 간 수익구조 차이 등 복합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해석된다.

SK엔무브, 상장 접고 '지분 회수' 택한 이유

SK이노베이션은 이달 25일 이사회를 열고 사모펀드(PEF)인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보유한 SK엔무브 지분 30%(1200만주)를 전량 인수하기로 결정했다. 주당 취득단가는 7만1605원이며 총거래액은 8592억원이다. 이로써 SK이노베이션은 SK엔무브 지분 100%를 확보하며 완전자회사 체제를 구축하게 됐다.

이번 결정은 SK엔무브 상장 계획이 사실상 철회됐음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재무적투자자(FI)는 상장을 통한 투자금 회수를 전제로 진입한다. 모회사의 지분 직접인수는 상장 추진을 접고 내부 정리에 나섰다는 의미로 읽힌다. 외부 자금 유치보다는 지배력 일원화와 사업유연성 확보에 방점을 찍은 전략으로의 전환이다.

이번 전략 수정의 배경에는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뿐 아니라 냉각된 자본시장 환경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자본시장 신뢰 회복과 기업가치 제고(밸류업)를 핵심 과제로 제시하고 '쪼개기 상장' 등 지배구조를 악용한 분할상장 방식에 대한 제도 정비를 예고해왔다. 자회사 IPO가 지배력 확대나 내부자 이익실현 수단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메시지가 반복되면서 구조적 리스크에 대한 기업의 경계심이 높아진 상황이다.

여기에 글로벌 긴축 기조 장기화, 국내 기준금리 고착,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IPO 시장 자체가 활기를 잃은 것도 변수로 작용했다. 최근 주요 기업들의 공모 흥행 실패와 기업가치 하향 조정 사례가 잇따르면서 SK이노베이션 역시 과거에 기대했던 밸류에이션을 확보하기 어려워졌다. 상장이 더는 '성장 자본 확보'의 효율적 수단이 아니라 정책 리스크와 시장의 역풍에 노출될 수 있는 고위험 이벤트가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SK이노베이션은 외형 확장보다 지배구조 안정과 자회사 실적 극대화를 우선하는 쪽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는 단기 실익뿐 아니라 향후 SK온의 IPO 추진 시기도 장기적 관점에서 다시 설계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IPO 시계 멈춘 SK온, '합병 시나리오' 떠오른 이유

SK엔무브의 상장철회와 지분회수는 SK온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두 회사 모두 외부 PEF 자금을 유치하며 상장을 전제로 한 구조를 갖춘 데다 상장이 무산될 경우 모회사가 대규모 풋옵션 부담을 지게 되는 공통된 리스크가 있다. 시장에서는 'SK온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관측과 함께 두 회사를 하나로 묶는 합병 시나리오까지 거론되고 있다.

SK온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2026년 IPO 추진'이다. PEF와의 약정에 따라 상장은 최대 2028년까지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뚜렷하다. SK온 관계자는 "상장에 실패할 경우 3조원 넘는 풋옵션 부담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를 자체적으로 감당할 여력은 없다"며 "지분 재매입이나 상장 전략 수정 여부는 SK이노베이션 또는 그룹 차원의 판단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단순히 IPO를 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 SK그룹 전체의 에너지 포트폴리오 재편 및 재무 전략과 직결돼 있다"고 덧붙였다.

이런 배경에서 SK온과 SK엔무브의 합병이 현실적인 구조조정 옵션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배터리와 윤활유라는 사업영역은 이질적이지만 수익성과 현금흐름 구조를 기준으로 보면 상호보완성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SK온은 수년째 적자를 지속하며 상장요건 충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반면 SK엔무브는 꾸준한 수익을 창출하며 배당여력까지 갖춘 알짜 자회사로 모회사 실적에도 안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양사가 합병할 경우 SK온의 손익구조를 일정 부분 상쇄하고 연결기준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효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상장조건인 '흑자전환'을 간접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 타당성이 존재한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를 IPO 전 재무구조 보강을 위한 우회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SK이노베이션 내부에서도 이를 배제하지 않는 기류가 감지된다. 장용호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최근 "성장성과 수익성을 기준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겠다"고 밝힌 것이 사실상 리밸런싱 전반에 대해 열어두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회사 측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안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