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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거버넌스 실험?...이사회·수펙스·자회사 '힘의 리더십'

Numbers_ 2025. 6. 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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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거버넌스 실험?...이사회·수펙스·자회사 '힘의 리더십'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합병을 통해 '아시아 최대 종합에너지기업'이라는 외형을 완성했다. 전통적인 정유·화학 사업을 넘어 액화천연가스(LNG)·도시가스·배터리까지 아우르는 밸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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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합병을 통해 '아시아 최대 종합에너지기업'이라는 외형을 완성했다. 전통적인 정유·화학 사업을 넘어 액화천연가스(LNG)·도시가스·배터리까지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한 것이다.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 강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고도화, 위원회 기능 정비 등 선진형 지배구조 모델을 표방하며 체질 개선에 나섰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사회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전략 수립 주체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겉보기와 달리 여전히 'SK식 지배구조'의 본질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표면은 선진형, 작동은 전통형? 

SK이노베이션의 이사회는 외형상 선진형 지배구조에 가까운 모습을 갖추고 있다. 전체 8인의 이사 중 과반이 사외이사로 구성됐으며 감사위원회·ESG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 등 위원회 체계도 기능별로 정비돼 있다. 의장 역시 사외이사가 맡고 있고 2021년부터는 최고경영자(CEO) 평가·보수·승계와 같은 핵심 경영사항에 대한 의결권도 이사회에 부여했다. 지배구조 보고서에 명시된 규범만 보면 책임경영과 내부통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는 정교하게 구성됐다.

이는 SK그룹이 지난해 11월 개최한 '디렉터스 서밋'에서 직접 시인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SK그룹은 이 자리에서 "이사회의 역할을 전략 방향 설정과 사후 성과 평가 중심으로 재정의하겠다"고 밝혔다. 이사회가 경영진이 상정한 안건을 검토·의결하는 것을 넘어 경영진과 함께 사전, 사후 소통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독립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사회 구성이 내부 경영진에 편중돼 있는 데다 일부 등기임원의 경우 자회사 이사회에까지 겸직하고 있다. 실제로 박상규 전 대표이사는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엔무브, SK온 등의 이사회에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 측은 각 자회사가 독립된 이사회 체계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SK이노베이션은 주로 사후 공유를 받는 구조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경영진이 그룹 내 복수 계열사의 이사회에 관여하고 있는 현재의 겸직 구조는 지배구조의 실효성이라는 측면에서 논의의 여지를 남긴다.

특유의 '이중 거버넌스'

SK이노베이션 이사회가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근본 배경에는 SK그룹 고유의 이중 거버넌스 구조가 자리잡고 있다. SK그룹은 그간 지주사(SK㈜)와 계열사 이사회 외에 '수펙스추구협의회'라는 독특한 전략 조율 기구를 운영해 왔다. 이 협의체는 그룹 산하 각 사의 CEO들이 참여하는 실질적 의사결정 기구로 중장기 전략과 대규모 투자를 논의·결정한다.

각 계열사는 독립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지만 중요한 전략 방향은 수펙스를 매개로 계열사 CEO들의 논의를 거쳐 각 사 경영진이 이사회에 보고, 이사회가 이를 검토 및 검증한다. 실제로 지난해 단행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또한 수펙스 차원에서 기획된 사업재편 전략의 일환이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합병은 SK이노베이션과 SK E&S 이사회에서 동시에 결의됐지만 그 의사결정은 그룹 전반의 재무구조 조정과 성장 방향 설정에 따라 이미 정해졌던 안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전략성과 독립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계열사 이사회가 그룹 전략에 종속된 채 병존하는 관계에 머물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SK이노베이션의 지배구조는 제도와 현실 사이에서 균형을 모색하는 과도기에 있다"며 "향후 지속가능한 거버넌스를 위해 내부 견제와 전략 수립 기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