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그룹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한미약품그룹(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이 재계서열 38위인 OCI 그룹(지주회사 OCI홀딩스)과의 통합을 추진한다. 형식은 통합의 모양을 띄지만 한미약품그룹의 최대주주 자리가 OCI그룹으로 넘어가는 구조로 읽힐 수 있다. 상속세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한미약품 그룹 오너가 송영숙 회장의 딸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사장에게 경영 승계를 보장하는 조건으로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분석된다.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은 각 사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취득 등을 통해 그룹간 통합에 대한 합의 계약을 각 사 이사회 결의를 거쳐 12일 체결했다고 밝혔다. 향후 OCI홀딩스는 한미약품그룹과의 통합에 따른 새로운 출발과 도전, 혁신의 염원을 담아 브랜드(사명 및 CI) 통합 작업도 진행할 계획이다.
송영숙 회장은 이날 한미사이언스 보유주식 878만9671주 중 672만6408주를 OCI홀딩스에 양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양도 대금은 현금 약 2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송영숙 회장은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으로부터 받은 주식에 대한 상속세를 아직 납부하지 못한 상태다. 송 회장은 OCI로부터 받은 지분 매각 대금으로 상속세 납부를 완료할 것으로 전망된다.
송영숙 회장은 OCI홀딩스에 팔고 남은 주식을 임주현 사장에게 몰아줬다. 임주현 사장은 송영숙 회장과 함께 한미사이언스 주식 677만6305를 출자, OCI홀딩스 주식 229만1532주와 바꾸기로 했다. 송영숙 회장의 아들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장과 임종훈 한미약품 사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이번 거래에서 제외됐다.
최종적으로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구주 및 현물출자 18.6%, 신주발행 8.4%)를 취득, 임주현 사장은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한다.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며, 임주현 사장은 OCI홀딩스의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개인이 된다. 작년 12월 1일 기준 OCI홀딩스는 이화영, 이복영, 이우현 회장의 지분율이 각각 7.41%, 7.37%, 6.55%를 보유 중이다.
한미약품그룹 측은 이번 통합 작업이 임주현 사장의 경영승계를 마무리하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송영숙 회장의 두 아들은 이번 거래 이후 자연스럽게 최대주주와의 관계가 끊어져 단순 개인 지분 형태로 바뀌었다. 향후 한미약품그룹에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미약품그룹 관계자는 “송영숙 회장이 취득한 현금은 상속세 납부 등에 쓰일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번 통합 거래는 임주현 사장이 제약바이오 사업군을 독립적으로 경영하는데 방점을 찍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OCI홀딩스 측에 따르면 OCI홀딩스는 각 그룹별 1명씩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사내이사 2명을 선임해 공동 이사회를 구성하고, 이우현 OCI홀딩스 회장과 임주현 사장이 각자 대표를 맡는다. 양 그룹별 현물출자와 신주발행 등이 완결되면, 실질적으로 두 그룹이 하나의 기업집단으로 통합되며, 후속 사업조정 등을 거치면서 ‘제약·바이오’와 ‘첨단소재·신재생에너지’ 사업군을 기반으로 상생 공동경영을 해 나가게 된다.
OCI홀딩스 관계자는 “이번 통합에 따라 양 그룹은 이사회 중심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통해 사업과 관리의 통합을 이뤄냄으로써 각 부문 전문성이 더욱 강화되고, 신규 사업 추진에 대한 강력한 동력을 마련하게 됐으며, 양 그룹 전체 주주와 임직원 이익 보호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OCI홀딩스는 동반 상생 공동경영이라는 원칙과 합의를 토대로, 단계적인 사업 통합 모델을 제시할 계획이다. 통합그룹은 OCI그룹의 첨단소재·신재생에너지와 한미약품그룹의 제약·바이오를 두 축으로 글로벌 톱 티어 기업으로의 도약을 보다 구체화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한미약품그룹은 이번 통합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뤄내고 상속세로 인한 오너 리스크를 사실상 해결함으로써 보다 강력한 R&D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또한 임주현 사장에게 경영 전권이 부여된 점도 주목된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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