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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된 지배구조 유한양행 한미약품 모두 주총 소란
전문경영 지배구조 성과를 앞지른 오너경영 지배구조
지배구조 핵심은 운영하는 사람과 내외부 감시 시스템
최근 제약업계를 대표하는 회사 두 곳이 지배구조 변경을 둘러싸고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전혀 상반된 모습의 지배구조로 운영돼 온 유한양행과 한미약품 이야기다. 한미약품은 최대주주가 모든 경영을 주도하는 전형적인 오너경영 기업이다. 반면 유한양행은 공익재단 유한재단을 대주주로 두고 자사 종업원 출신 전문가에게 경영을 맡기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지배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이런 두 회사가 모두 지배구조 문제로 이번 정기주주총회에서 굉장한 내부 소란으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다. 한미약품은 고 임성기 창업자 사후 경영승계과정에서 ‘골육상쟁’이 진행중이고 유한양행은 ‘마름의 주인행세’로 비치는 세간의 의구심을 떨쳐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국가든 기업이든 지배구조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되새기게 하는 것 같다.
나라마나 역사와 문화가 다르고 처한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대통령제나 내각제 등 자기 나라에 맞는 국가 지배구조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국가 지배구조는 선악이나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 지배구조를 운영하는 주체인 사람들이 문제일 뿐이다. 기업 지배구조도 다르지 않다. 대주주가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는 오너경영은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특정인의 전횡과 독단을 견제하지 못하면 공익보다 사익 그리고 다수 소액주주보다 소수 대주주 이익을 위해 충성하는 폐단이 생긴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 전문경영인체제는 장기적인 주주 이익보다 단기실적과 보수적인 경영으로 좋은 성장 기회를 놓지는 단점도 있지만 리스크를 덜 지는 안정적인 경영으로 변동성을 줄여 회사를 치명적인 위험으로 몰고갈 여지는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좋은 점도 있다.
고 임성기 한미약품그룹 회장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 직전 새벽별을 배경으로 등반가들을 담은 베이스캠프 사진을 무척 좋아했다고 한다. ‘R&D와 신약개발’을 삶의 목표로 두고 무한 질주해온 한미약품 창업주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 한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대주주 오너경영을 통해 눈부신 성장을 해온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전쟁은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주식지분 확보 경쟁으로 표출됐다.
국민연금을 한편으로 먹은 모녀 진영(지분 42.66%)과 선친의 지인을 후원자로 얻은 형제 진영(지분 40.56% )으로 편이 나뉘어 비즈니스 인생의 생사를 가르는 치열한 혈투가 펼쳐졌고 2024년 3월 28일 정기주주총회에서 일단 형제진영의 한판승으로 일합이 끝났다. 그동안 진행돼 온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의 전략적 통합 추진도 무산되고 양사의 성장전략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이 피 말리는 전쟁에서 역설적이게도 대주주들의 운명을 가른 것은 평소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소액주주(지분 16.78%)들이었다. 대주주 일가의 이해 다툼으로 경영혼란과 투자자 편익이 침해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좋은 기업지배구조에 대한 논란과 개선 필요성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분출하고 있다.
제약사가 신약개발에 투자하여 그 성과를 확인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은 기다릴 각오를 해야 한다. 장기적 전망으로 높은 실패 위험을 감수하면서 과감하게 투자하는 실행력 발휘는 강력한 대주주가 주도하는 오너경영 지배구조가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지속가능 성장을 도모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를 하려는 제약사 CEO의 의지를 가늠할 수 있는 좋은 지표 중의 하나로 R&D 투자비율이 거론되곤 한다. 2014년 이후 2023년까지 지난 10년간 한미약품은 총 1조8461억원(연결기준)의 연구개발비를 지출해 누적 매출액의 16.6% 이상을 R&D 투자로 집행했다. 같은 기간 유한양행의 연구개발비 지출은 1조 3439억원으로 한미약품보다 더 적었다. 연구개발비 절대규모 뿐 아니라 매출액 규모가 1.3배나 많은 유한양행의 R&D 투자비율은 9.0% 수준으로 한미약품의 절반에 불과하다. 그나마 최근 유한양행 경영진들이 연구개발투자를 적극 확대, 매출액의 10%대까지 끌어올린 결과이다. 아무래도 전문경영인보다 과감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는 오너경영 지배구조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를 이야기할 때 현존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범답안으로 회자되는 기업이 유한양행이다.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가 꿈꾸고 만들어낸 기업경영의 모습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후대의 많은 사람들이 닮고 싶어하는 좋은 기업의 표상으로 칭송된다. 유한양행 창업주가 기업경영과 지배구조를 논할 때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유는 단순히 가진 재산 전부를 사회에 환원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활용해 자신의 꿈을 이어줄 선진화된 지배구조를 생각하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창업 초창기(1936년)부터 종업원들에게 주식을 나눠주는 종업원지주제를 도입하고 개인 재산을 사회에 영구적으로 환원하는 방법으로 유한학원(1962년)과 유한재단(1970년)을 설립, 운영했다. 또 가족상속과 친족경영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종업원 중에서 적임자를 골라 최고경영자로 세우는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했다. 창업 대주주 일가는 재단운영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에 전념하고 경영은 회사를 잘 아는 전문가에 맡긴다는 원칙을 실행했다. 우리 기업사에서 창업주가 ‘회장’이 아닌 ‘박사’ 호칭이 더 자연스러운 이는 고 유일한 창업주가 유일하다.
모두가 칭송하는 훌륭한 기업지배구조로 운영돼 온 유한양행이 대주주간 최악의 내홍에 휩싸인 한미약품보다 현재까지 창출한 기업가치로 볼 때 결코 우월하다고만 할 수 없다. 지난 3년간(2021~2023년) 매출액 증가율이 한미약품은 11~12%대지만 유한양행은 4~5% 수준으로 낮다. 우리나라 의약품산업 3년간 평균성장율 9.2%(식품의약품안전처, 2022년) 보다도 더 낮다. ROE 수준 역시 유한양행 5~6%대로 한미약품 8~10%에 미치지 못한다. 자본 효율성을 나타내는 총자본회전율도 유한양행 0.9배 한미약품 1.4배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평가하는 기업가치인 시가총액 증가율도 오너경영 지배구조인 한미약품이 더 높다. 2024년 3월 25일 기준 유한양행 시가총액은 6조2482억원으로 10년 전 대비 3.2배 증가, 적지 않은 성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시가총액 증가율 4.6배에는 미치지는 못한다. 창업주의 선구적인 기업경영관 덕분에 건강한 지배구조를 일찍 구축하여 100여년 가까이 누려온 장수기업의 프리미엄을 충분히 활용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최근 유한양행 정기주주총회에서 ‘회장’ ‘부회장’직 부활을 놓고 말들이 무성하다. 창업주 고 유일한 박사 이후 28년만에 신설되는 회장직 부활 안건에 95%의 주주들이 찬성했다. 현 경영진들이 주인 없는 회사를 사유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적 시각과 제약사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앞으로 우수한 외부인재 영입도 필요한데 이를 위한 사전 준비 차원에서 취한 조치라는 회사측 주장이 엇갈린다. 유한양행은 CEO 임기를 3년 중임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대주주로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유한재단 10명의 이사진에 유한양행 퇴직 CEO를 포함한 전현직 임원 4명이 포진하고 있다. 유한양행의 주요주주는 유한재단 15.77% 유한학원 7.75% 국민연금 9.67% 기타 소액주주 46.9%로 구성돼 있다. 창업주의 외동 친손녀 유일링 유한학원 이사는 ‘회장’직 신설로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우려하며 창업주의 유지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사실상 반대의견을 피력했었다.
기업지배구조는 올바른 방향이 있을 뿐이지 현실 운영에 정답은 없는 것 같다. 고 유일한 창업주는 자신이 추구하는 기업경영 목표가 자신의 사후에도 훼손되지 않고 지속되길 바랬을 것이다. 생물학적 생명이 유한한 ‘자연인’ 보다는 공익재단이라는 ‘법인’을 통해 영원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창업주의 철학과 경영이념이 후대로 이어지게 할 방안을 고민했던 것 같다. 자연인이 아니라 법인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설계한 것이다.
물론 주주나 이사회보다 더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회사의 지속 가능성 확보를 의무감으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전문경영인도 많이 있다. 또 소유 분산으로 주인 없이 운영하는 회사의 ‘마름’인 이사회와 전문경영인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회사도 더러 있다. 기업 소유와 경영자원을 어떻게 안배하고 운영할 것인지 프레임을 만드는 지배구조의 설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소유와 경영의 분리만이 능사도 아니다. 지배구조와 제도운영은 사람이 한다. 중요한 것은 경영하는 사람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관리하는 지배구조 안에 있는 이사회와 밖에서 지배구조 운영을 지켜보고 견제하는 사람들이 제역할을 하는 것이다. 기업 내부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손쉬운 상시감시가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다. 이번 주주총회의 소란을 자양분으로 한미약품과 유한양행이 글로벌 제약사로 발돋움하고 리더십을 발휘해 회사가 표방하는 위대한 기업으로 더 성장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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