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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동반자 아냐"…영풍에 불편함 드러낸 고려아연

Numbers 2024. 4. 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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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동반자 아냐"…영풍에 불편함 드러낸 고려아연

영풍그룹의 최대 캐시카우인 고려아연은 경영과 지배가 완전히 분리된 회사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영풍그룹이 세워진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황해도 실향민 출신의 장병희, 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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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왼쪽)과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영풍그룹의 최대 캐시카우인 고려아연은 경영과 지배가 완전히 분리된 회사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영풍그룹이 세워진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황해도 실향민 출신의 장병희, 최기호 두 창업주의 맞손으로 영풍의 모태인 영풍기업이 설립됐다. 피 보다 진한 이른 바 '쩐'으로 얽힌 사이다. 1970년대 철강, 자동차 산업이 태동하면서 연, 아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자 영풍 외에 또 다른 비철금속 제련 회사인 고려아연을 설립하게 된다. 사업 동반자이자, 경쟁자로 영풍과 고려아연은 함께했다.

고려아연의 지배 주주는 영풍을 경영하는 장 씨 일가라도 경영은 최 씨 일가의 몫으로 여겨졌다. 계열 분리 가능성도 점쳐졌지만, 양가 어느 곳에서도 이를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은 3월 고려아연 주주총회 쯤이다. 장 씨 측이 서린상사 경영권을 행사하는 것에 대해 고려아연 측이 불편함을 내비친 것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공동구매·공동영업 계약까지 깨고 사실상 영풍과 결별을 선언했다. 이 모든 일의 시발점은 영풍이 제기한 '신주 발행 무효' 소송이다. 재계에 따르면 핵심 파트너인 현대자동차를 겨냥한 소송에 최 씨 일가가 적잖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원료 공동 구매 안 해"…계약 종료 선언 


고려아연은 9일 오전 A 거래처에 영풍과 원료 공동구매 및 공동 판매를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곧 계약이 끝나는 다른 거래처에도 동일한 내용을 전달할 예정이다. 

창사 이래 영풍과 고려아연은 거래처와 계약을 맺을 때 원료 구매는 물론 제품 유통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해왔다. 예를 들어 제품을 받기로 한 A거래처와 범 영풍까지 포함해 3자간 계약을 해온 셈이다. 고려아연은 영풍과 공동 계약을 해지함으로써 "불편한 갑옷을 벗어던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산량, 재고량이 영풍 보다 훨씬 많다 보니 계약 이행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손해를 봤다는 게 요지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원료 구매를 할 때 우리의 제품은 아연 함유량이 얼마 들어있든 유연하게 받아올 수 있는 반면, 영풍은 취급할 수 있는 원료가 한정적이다"며 "이런 제약을 앞으로 덜 받기 위해 공동 계약 형태를 끝내고 새로 계약을 하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계약은 어느 한 쪽이 이의를 제기하면 언제든지 종료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은 향후 개별적으로 원료 구매 및 판매 계약을 진행하더라도 차질은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이전보다 원료 구매 시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어 양 측에게 득이 되는 결정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영풍 관계자는 "각 사별로 영업팀이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며 "향후 개별적으로 원료를 구매하게 되면 단가가 이전 보다 높아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에게 좋은 결정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불편함 드러낸 이유가 현대차 때문?


재계에서는 이번 공동 계약 해지 선언을 '분리 선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하반기 고려아연이 영풍 빌딩에서 나와 종로 그랑서울로 이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려아연 측은 업무 환경 개선을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지만 재계에서는 영풍과 결별을 공식화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간 장씨와 최씨간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재계에서 심심찮게 흘러나왔지만 양측 모두 속내를 보이지 않았다. 고려아연이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계속해서 이사회에 참여시킨 것이 대표적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상당한 투자가 소요되는 이차전지 쪽으로 사업 기반을 넓히려 하는 것을 놓고 영풍 측에서 반발이 상당했던 걸로 안다"며 "그런데도 선대 회장때부터 함께 해온 것이 있기 때문에 고려아연 쪽에서 강하게 조치를 하지 못했던 걸로 안다"고 귀띔했다.

고려아연 행보의 배경에는 영풍이 제기한 신주 발행 무효 소송이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8월 현대차가 세운 'HMG글로벌'에 신주 104만5430주를 발행했다. 현재 HMG글로벌은 고려아연의 5% 지분을 쥔 주요 주주다. 지분 가치가 희석된 최대주주인 영풍은 신주 발행 자체를 없던 일로 해달라며 법원에 문제를 제기했다. 사실상 현대차를 겨냥한 영풍의 조치에 고려아연 측이 불만을 드러낸 것이라는 전언이다.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 입장에서 현대차는 주요 주주이자 고객사"라며 "예상치 못한 소송으로 신뢰 관계가 무너졌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영풍 측은 지속적으로 고려아연의 지분을 매집하고 있다. 앞서 고려아연이 현대차, 한화 등 우군을 확보한데 따른 조치다. 

장형진 고문의 아들인 장세준 코리아써키트 대표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3일까지 고려아연 주식 9300주를 매입했으며, 장 고문의 아내인 김혜경 씨도 이달 400주를 사들였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