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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보고’는 임회장도 마찬가지…특경법등 위반
막판까지 버틴 조행장 ‘스모킹 건’ 가졌을 수도
검찰수사 과하고 이례적…‘정치적 몰아내기’ 해석
“본인이 민영화한 금융사 회장 취임이 애초 잘못”
금융권 최초로 64일간의 오디션을 통해 선임돼 ‘기업금융 명가’ 재건을 외쳤던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취임 1년 6개월 만에 퇴진합니다. 지난 22일 우리금융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자회사 대표이사 후보 추천위원회(위원장 임종룡)는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의 ‘친인척 부당대출 사태’와 관련 ‘피의자’로 적시된 조병규 행장의 임기를 연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임종룡 회장은 지난해 3월 취임 후 4개월 동안 공을 들여 상업은행 출신의 영업통 조병규 행장을 선임한 뒤 주변 사람들에게 아주 잘 뽑았다며 자랑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랬던 조병규 행장을 자른 것은 임종룡 회장으로서는 울면서 목을 친 ‘읍참마속’(泣斬馬謖)일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꼬리 자르기’일 수 있고, 본인이 살기 위해 조 행장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임종룡 회장이 지난달 금융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부당대출 사태에 대해 거듭 사과하고 여러 후속대책을 발표하면서 한고비 넘긴 것으로 보였던 ‘우리금융 사태’가 반전된 것은 검찰이 지난 8월에 이어 18~19일 이틀간 우리은행 대출 관련 부서들뿐 아니라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행장 집무실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하면서입니다. 특히 검찰은 조병규 행장을 ‘피의자’로 적시했습니다.
구속 영장까지 청구된 손태승 전 회장의 처남 등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은 한두 건을 빼고는 대부분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은행장 취임 전에 일어난 일이지만 현 경영진이 늑장 보고를 한 게 화근입니다. 은행법은 ‘은행이 횡령‧배임 등 금융 범죄와 관련한 금융 사고를 사고가 발생한 날부터 15일 이내에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또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금융회사 등의 장(長)이나 감사 또는 검사의 직무에 종사하는 임직원 또는 감독기관의 감독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 직무를 수행할 때 금융회사 등의 임직원이 그 직무에 관하여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정황을 알았을 때는 지체없이 수사기관에 알려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이를 어기면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못 박습니다.
지난 8월 금감원이 발표한 우리은행 부당대출 사건 경과를 보면 조병규 행장은 지난해 9~10월경 여신감리 부서로부터 정식 보고를 받았습니다. 임종룡 회장도 올해 3월 이전에 보고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이 금감원에 보고된 것은 지난 5월이었습니다. 3~7개월이 지난 뒤 ‘늑장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것도 금감원이 제보를 통해 사건을 파악하고 사실관계 확인을 요청하자 우리은행은 그동안의 검사 결과를 보고합니다. 압수수색 등을 통해 몇 달 수사를 했던 검찰이 바로 이 대목을 문제 삼아 조병규 행장에 대해서는 우선 ‘피의자’로 적시한 것입니다.
임종룡 회장이나 우리금융 과점주주인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 푸본현대생명 유진PE 등과 그들이 임명한 사외이사(정찬형 의장, 윤수영‧윤인섭‧신요한‧지성배 이사) 입장에서는 검찰이 피의자로 적시한 은행장을 연임시키긴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은행과 우리금융은 이번 부당대출 사건과 관련 지난 6월부터 수시검사와 정기검사를 6개월째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복현 금감원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현 집행부 내에서도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조병규 행장은 취임한 지 1년 6개월 만에 ‘기업금융 명가’ 재건의 꿈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나게 돼 누구보다 회한이 클 것입니다. 조 행장은 지난 8월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았지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버티기’를 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번 우리은행 본점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서 검찰은 지난 3월 조병규 행장이 우리은행 실무진으로부터 손 전 회장 친인척에 대한 부당대출 문건을 보고받았을 무렵 임종룡 회장 역시 같은 내용을 보고 받은 것으로 명시했습니다. 이는 금감원 발표 내용과도 일치합니다. 은행장과 지주 회장이 같은 시기에 같은 사건을 보고 받고 이를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 결정은 누가 했을까요. 은행장일까요, 회장일까요. 당연 회장입니다. 조병규 행장의 결정이 아니라 임종룡 회장의 결정으로 보는 게 상식입니다. 그런데 책임지고 물러나는 사람은 임종룡 회장이 아니라 조병규 행장이라면 조 행장 입장에서는 어떤 생각이 들까요. 본인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많이 억울할 것입니다. 희생양이 됐다는 생각도 할 것입니다.
금감원이나 검찰 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지만 만약 조 행장이 이번 사건을 처음 인지했던 지난해 9~10월이나 그 이전에 임종룡 회장에게 보고했다면 사태는 아주 심각해집니다. 6개월 이상 임종룡 회장이 사건을 숨긴 것이 됩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증거를 모으는 데 시간이 걸려 보고가 늦었다”는 우리금융의 해명은 궁색합니다. 어쩌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조병규 행장이 ‘스모킹 건’을 쥐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알게 되거나 보고받고도 이를 금융지주 회장에게 보고하지 않고 깔아뭉갤 간 큰 은행장은 없습니다.
우리금융 내부는 물론 금융당국과 여론의 사퇴 압박 속에서도 조병규 행장이 거취를 표명하지 않고 버틴 데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만약 그렇다면 임종룡 회장이나 우리금융 사외이사들 입장에서도 조 행장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 행장 유임 불가 결정을 막판까지 몰려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정 때문으로 보입니다.
본심이야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임종룡 회장이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돌려 ‘비겁한 리더’가 되고 만 것은 큰 부담입니다. 이렇게 되면 구성원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갈 것이고 안타깝지만 앞으로도 우리금융에서는 사고가 계속 터질 수밖에 없습니다.
임기 만료된 조병규 우리은행장이 연임하지 않고 물러나는 것으로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은 한고비를 넘긴 걸까요. 임종룡 회장은 2026년 3월까지 임기를 채울 수 있을까요.
조병규 행장의 드러난 죄목은 부당대출에 대한 늑장 보고이고, 은행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을 어겨 피의자로 지목됐습니다. 이 죄목은 임종룡 회장한테도 그대로 적용되는 게 상식입니다. 금감원과 검찰 조사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봐도 임종룡 회장은 지난 3월경이나 그 이전에 이번 사건을 인지하고도 금감원에는 5월에야 보고합니다. 그것도 금감원 요청으로 말입니다. 2개월 이상의 시차가 있고 당연히 늑장 보고이며 은행법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입니다. 임종룡 회장도 앞으로 ‘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임종룡 회장이 은행법과 특정경제범죄법을 어겨 피의자로 지목되고 기소까지 되더라도 처벌이 무겁지는 않습니다. 특정경제범죄법에서는 겨우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돼 있습니다. 임기 중에 사퇴할 사안은 아닙니다. 과점주주나 사외이사들 입장에서도 은행장이 물러난 상황에서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임 회장까지 물러나라고 할 순 없습니다.
문제는 다른 데 있습니다. 검찰이 금융 사고에 대해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며칠씩 압수수색을 하고 은행장을 피의자로까지 적시했지만 이번 검찰 수사는 금융 역사에서 대단히 이례적이고 희귀합니다. 고위 관료 출신 금융계 인사는 “금융 사고를 늦게 보고했다고 검찰이 나서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말했습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대형 은행의 경우 1년에 쌓는 대손충당금만 5000억~1조원에 이릅니다. 그만큼 사건‧사고가 많습니다. 늑장 보고하고 심지어 깔아뭉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법 위반이긴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은행처럼 금융 사고를 제때 보고하지 않았다고 처벌하고 문책한다면 살아남을 금융 CEO는 많지 않습니다. 이번 우리금융과 우리은행, 임종룡 회장과 조병규 행장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과 수사가 다분히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금융계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윤석열 정부에서 미운털이 박힌 임종룡 회장을 압박해 물러나게 하기 위해 검찰이 나서 압수수색을 했고, 은행장을 피의자로까지 지목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조병규 행장이 아닌 임종룡 회장이 타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 행장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격입니다.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의 앞날은 험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임 회장이 미운털이 박힌 이유에 대해서는 설(說)이 분분합니다.
임종룡 회장과 우리금융에게는 검찰 수사가 전부가 아닙니다. 6개월째 지속 중인 금감원 검사의 허들도 돌파해야 합니다. 금감원 정기검사는 언제 끝날지, 결과가 언제 나올지 예측이 어렵습니다. 정기검사에서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3등급 이하로 나오면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가 무산됩니다. 이 경우 두 생보사 인수가격의 10%에 해당하는 1500억원의 계약금을 날립니다. 검사 결과에 따라서는 우리금융이 추진 중인 제4인터넷전문은행 참여에도 차질이 생깁니다. 금감원은 이미 이번 정기검사에서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의 CET1(보통주자본비율) 관리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발견해 대출 축소를 요구했습니다.
임종룡 회장 개인도 금감원 정기검사 후 징계받을 수 있습니다. 임 회장 재임 기간 중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전임 회장 관련 부당대출을 제때 보고하지 않은 데다 정기검사에서 새로운 잘못이 추가될 경우 중징계까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중징계가 아니더라도 당장 보험사 인수가 불허되고 이로 인해 계약금만 날리게 돼도 임 회장의 설 자리는 매우 좁아집니다. 설령 그의 최대 원군인 과점주주와 사외이사들, 그리고 금융당국 곳곳에 포진한 모피아 후배들이 지금처럼 지지하고 응원한다 해도 말입니다.
지금 임종룡 회장에게 유일한 희망이라면 윤석열 정부의 급격한 레임덕과 실세 관료 이복현 금감원장의 퇴진인 듯합니다. 금융시장에서는 실제로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정몽규 축구협회장,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거취가 현 정부의 레임덕을 재는 측도라는 말까지 회자됩니다.
‘주역’ 64괘의 첫 번째 괘는 6개의 양괘로만 구성된 ‘중천 건’(乾)입니다. 연못의 용이 뛰어올라 하늘을 나르는 대단히 좋은 괘입니다. 그러나 공자 등 옛 성현들은 중천 건괘를 설명하면서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습니다. ‘하늘 끝까지 오른 용에게는 후회할 일만 생긴다’는 뜻입니다. “대단히 귀한 존재지만 편히 쉴 자리가 없고, 뛰어난 참모들이 많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날 줄을 모르며, 채우려고만 하지 비울 줄을 모른다.”
학자들은 항룡유회의 상황을 ‘성공한 사람들의 예외 없는 말로’(末路)라고 설명하는데 지금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고위 관료 출신 금융계 인사의 지적처럼 국무총리실 실장과 NH농협금융 회장을 거쳐 금융위원장을 역임하고 총리 후보 물망에까지 올랐던 사람이 자신이 민영화한 우리금융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 애초 잘못입니다. 이는 금융업에서 절대 금기시하는 일종의 ‘내부거래’에 해당합니다.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에 대한 금감원과 검찰의 대응이 지나치고 과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임 회장의 과한 의욕과 욕심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인 듯합니다. 임종룡 회장이 이제는 물러날 줄도 알고 비울 줄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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