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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 정직한 수용 인지부조화 해소 첫걸음
기업 인사 조직개편 CEO 전략방향 시그널
삼성 하던 일 집중, SK 새로운 미래 ‘방점’
1979년 12월 신구 군사정권의 손바뀜 과정을 마지막으로 역사속으로 잊혀졌던 계엄령이 45년만에 좀비처럼 현실로 재등장했다. 3일 밤 10시23분부터 온 국민이 꼼짝없어 붙들려 강제로 관람한 코미디 같은 역사적 비극은 7일 밤 9시20분에야 겨우 1막이 끝났다. 긴박하게 이어지는 비극의 2막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참여해 함께 연기하며 상영중이다. 연극이 끝난 후 청구될 관람료가 얼마나 날아올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우리 5000만 국민들이 각자 나눠 감당하기에 벅찬 수준일 것은 확실하다. 지난 군사정권의 계엄령 트라우마로 벌렁거리는 가슴을 조리며 지켜보는 동안 주마등처럼 옛일들이 회상됐다.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와 '인지장애'가 부른 참극이다. 역사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많은 영웅들은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담대한 실행을 통해 목표를 달성한 것으로 우리는 흔히 알고 있다. 하지만 리언 페스팅어(Leon Festinger)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부조화’ 이론으로 설명한다. 인지부조화는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객관적 상황이나 사실과 부합하지 않을 때 나타나난다. 인지부조화로 불편해진 불균형 상태를 해소하는 방법은 두가지다. 이미 존재하는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고 부정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인지와 행동을 변화시켜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미 일어나 존재하는 사실을 바꾸는 것은 시간의 불가역성이라는 역학이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 안다. 하지만 인지장애로 상황판단 능력에 문제가 생기면 객관적 사실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며 심지어 서슴지 않고 조작까지도 태연히 감행한다. 대개 합리적인 보통사람은 있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자신의 신념이나 인지상태를 객관화하고 바꾸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사후적으로 ‘자기합리화’를 도모하는 동물이라고 페스팅어는 말한다.
대상을 기업으로 바꿔보면 위기에 빠진 기업이 대응하는 방법도 비슷한 것 같다.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인지능력이 떨어지면 경영위기 상황을 올바르게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된 ‘신념’으로 무모하게 대응해 ‘인지부조화’ 상황을 극대화시킨다. 인간의 이성과 감성이 어우러져 움직이는 혼돈(Chaos)의 ‘시장’에서 인지부조화 간극을 해소하지 못한 경영자는 경영권을 잃거나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시장과 현실에서 사라진다.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기업에는 불편한 인지부조화 상황을 큰 무리 없이 잘 해소한 현명한 경영자가 항상 있었다.
성공한 경영자는 ‘객관적 상황과 사실’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자신의 인지상태를 객관화해 필요할 경우 신속하게 기존의 신념과 행동에 변화를 도모한다. 지금까지 유지해온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사업구조를 바꾸고 보유중인 우량자산을 떼어내 매각하는 구조개혁을 단행하기도 한다. 경영혁신과 효율화를 내세우며 그동안 상황인식을 공유하며 함께 달려온 경영진을 교체하고 직원을 내보내는 인력구조조정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경영자가 인지장애 상황이라면 기업이 당면한 이미 저질러진 객관적 ‘사실’을 모르는 척 무시하거나 부정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끝까지 지키려할 것이다.
기업이 인지부조화를 해소하는 대표적인 행동이 인사와 조직개편이다. 기업의 조직도는 최고경영자가 직접 그리고 자리에 앉힐 사람도 그가 직접 고르는 것이 정석이다. 그래서 기업의 인사와 조직개편을 보면 그 기업의 상황인식과 전략방향을 읽을 수 있다.
최고경영자가 사법 리스크에 비슷하게 노출돼 있는 삼성과 SK가 최근 발표한 그룹의 조직개편과 인사를 통해 전하는 인지부조화 해소전략의 시그널이 사뭇 다른 것 같다. 삼성 이재용 회장은 불법승계 의혹으로 2심에서 징역 5년 벌금 5억원 구형을 받고 2심판결을 대기중이다. SK 최태원 회장 역시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위자료배상 2심 소송에서 1조원이 넘는 재산분할 판결을 받고 대법원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두 그룹의 핵심 비즈니스인 반도체부문의 경영실적이 SK하이닉스는 분기 역대 최대규모로 더 없이 좋지만 삼성전자는 향후 부정적인 실적전망으로 시장 투자자의 뭇매를 맞는 대조적인 상황이다.
두 그룹이 인지부조화 상황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상황인식과 대응전략이 사뭇 다르다. 삼성은 위기상황의 원인을 전략기능 약화로 판단한 것 같다. 삼성글로벌리서치(기존 삼성경제연구소) 내에 관계사의 경영진단과 컨설팅 기능을 수행하는 ‘경영진단실’을 신설하는 등 과거 미래전략실 출신을 중심으로 경영전략조직을 강화했다. 삼성전자의 인지부조화 해소전략은 ‘효율성’ 강화와 ‘하던 일 잘 하자’로 모아진다. 기술 ‘초격차’와 세계 ‘최초’를 최우선 가치로 삼던 ‘기술의 삼성’보다는 ‘가진 기술’을 잘 활용하고 글로벌 고객접점을 확대해 시장경쟁력을 강화하는 현재에 충실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조직운영도 실적이 부진한 반도체사업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재분리해 메모리와 파운드리(위탁생산)로 구분하고 각 사업부의 기술적 역량강화를 통해 사업운영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불과 1년전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의 미래기술을 선도적으로 개발하기 위해 신설했던 ‘차세대공정개발실’을 해체해 인력과 자원을 고대역메모리(HBM) 등 메모리 기술력 강화에 집중 재배치하겠다고 한다. 미래기술 개발보다 현재 수율이 낮아 고전중인 3나노 공정의 안정화를 바탕으로 약화된 주요 고객사와 관계를 강화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으로 이해된다.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기술보다 고객과 영업에 더 집중하며 미래보다 현재를 선택한 것 같다.
SK그룹은 경영실적이 좋은 SK하이닉스 출신을 SK실트론 등 반도체관련 계열사뿐 아니라 SK온처럼 어려움에 처한 배터리사업에 구원투수로 투입해 성공 DNA를 계열사로 확산시키는 전략을 추진중이라는 평가다. SK그룹의 신규임원 승진자 75명 가운데 44%에 해당하는 33명이 SK하이닉스 소속이다. 승진자 60% 이상이 R&D 생산 등 기술과 현장 출신으로 본원적 기술경쟁력 강화와 AI 디지털 등 미래전략과 관련된 인력이다. 미래전략의 화두인 인공지능(AI) 부문의 그룹 컨트롤타워로 ‘AI R&D센터’를 신설해 그룹의 AI 역량을 결집하고 SK수펙스추구협의회 산하에 디지털추진팀을 신설하는 등 ‘AI 추진단’을 확대했다. SK그룹의 인사조직개편이 주는 시그널은 ‘미래성장 세대교체 성과주의’로 정리된다.
실적이 좋은 회사는 미래를 준비할 여유가 있지만 실적이 나쁘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끄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우리나라 주력 수출업종인 반도체산업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인지부조화 해법이 모두 통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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