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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좌초됐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는 12일 열기로 했던 주주총회를 취소했다.
분할·합병 방안이 주총 문턱을 넘는다해도 계엄 사태 이후 주가가 크게 빠지면서 주주들의 주식매수 청구를 피하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실익을 따졌을 때 물러서는 것이 낫다 판단한 것이다.
개편안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두산밥캣을 떼어내 얻을 수 있는 재무적 이득을 취할 수 없게 됐다. 두산로보틱스 역시 두산밥캣과 결합으로 얻는 무형의 이득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다.
계엄 사태 발목…불확실성 커져
10일 두산에너빌리티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철회한다고 공시했다. 같은 날 두산로보틱스도 두산밥캣 지분이 포함된 두산에너빌리티 신설 법인과 분할합병 계약을 해제, 관련 제반 절차를 모두 중단한다고 주주에게 통보했다.
전날 국민연금이 정한 의결권 행사 방향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민연금은 9일 열린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에서 두산에너빌리티가 올린 모든 안건에 찬성하되 분할합병계약서 승인에 대해서는 '주식매수 청구 가격 이상으로 주가가 회복할 경우' 조건부 찬성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와 같은 날 열리는 두산로보틱스 주주총회에서도 주식매수 청구 가격 이상으로 시세가 회복할 경우에만 분할합병 승인의 건에 찬성표를 행사하기로 정했다.
국민연금 입장에선 주가 하락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통해 이익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실익 차원에서 이같이 정한 것이다.
당초 두산에너빌리티는 주식매수청구권 규모가 5000억원 이상, 두산로보틱스는 6000억원 이상 넘어가면 지배구조 개편안을 재검토할 방침이었다. 국민연금이 두산에너빌리티 보유 주식을 절반만 매수 청구해도 개편안이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보유 지분 전량을 매수 청구한다면 두산에너빌리티는 9162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두산로보틱스 역시 절반의 소액주주만 이탈해도 지배구조 개편이 간당간당하다.
사실 주식매수 청구권 행사 여부를 정하는 지표는 주총 당시가 아닌 행사 기간 만료 직전 주가다. 두산에너빌리티와 두산로보틱스 주주는 내년 1월 2일까지 회사에 주식 매수를 청할 수 있다. 주가가 회복한다면 주식매수 청구 규모가 예상 보다 적을 수 있다. 실제 작년 셀트리온 합병 당시 국민연금은 기권했지만 실제 매수 청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두산그룹이 개편안을 철회한 사유는 주가 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비상 계엄 사태에서 촉발된 정치적 불안감으로 주가 회복이 묘연한 상태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기권을 막으려면 이날 적어도 상한가를 기록해야 했다"며 "금융 시장 불안감이 커지면서 두산 입장에서 사실상 다른 옵션을 생각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 측은 "주가와 주식매수청구가격 간의 괴리가 크게 확대돼 분할합병 안건의 임시주주총회 특별결의 가결요건의 충족 여부가 불확실했다"며 "또한 당초 예상한 주식매수청구권을 초과할 것이 거의 확실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유무형 시너지 포기…시장 신뢰 회복 필요
최대 조단위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지배구조 개편을 포기하면서 두산에너빌리티는 향후에도 두산밥캣이 지급하는 배당금을 받게 됐다. 두산에너빌리티 별도 기준 영업이익에서 두산밥캣의 지급 배당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108%, 2023년 16.6% 수준으로 손익에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
반대로 두산밥캣을 떼어내 얻을 수 있는 재무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당초 두산밥캣을 두산로보틱스에 넘길 때 차입금 7000억원도 함께 이관할 계획이었다. 해당 차입금 7000억원은 2020년 두산인프라코어(현 HD현대인프라코어)에서 두산밥캣을 넘겨받을 때 두산에너빌리티가 떠안은 채무다.
또한 두산에너빌리티는 지배구조 개편 완료를 전제로 비핵심자산을 매각할 방침이었다. D20 Capital(644억원) 두산큐벡스(3709억원) 등이 대표적이다. 차입금 이관 및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유입·이자 비용 절감 효과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1조2000억원에 달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최대 7000어원 수준의 차입한도 여력이 확보되면 본업인 원전 사업 투자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두산로보틱스 역시 두산밥캣을 자회사로 두면서 상당한 시너지를 예상했다. 우선적으로 패키징 분야 공동 판매를 추진하고 2026년에는 두산밥캣 주요 고객사를 대상으로 팔렛타이징·패키징 솔루션을 판매할 예정이었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 분포된 두산밥캣의 거점은 두산로보틱스 입장에서 상당한 기회였다. 거점 공유 등을 통한 시너지 매출을 2026년 1000억원에서 2030년 5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세우기도 했다.
향후 두산그룹은 돌아선 시장의 신뢰를 돌리는데 집중할 전망이다.
박상현 두산에너빌리티 대표는 "현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라 당장 본건 분할합병 철회의 대안을 답하기 어려우나 추가 투자 자금 확보 등 성장 가속화를 위해 신중한 검토 뒤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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