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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우리금융 보험사 인수를 둘러싼 논란들

Numbers 2025. 2. 11.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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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O 리포트] 우리금융 보험사 인수를 둘러싼 논란들

동양·ABL생명 M&A에 ‘감독 리스크’ 현실화금융사 경영책임을 금융당국이 질 순 없어감독권 행사 시장과 산업발전 우선 고려해야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본 사람들이 금융사 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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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ABL생명 M&A에 ‘감독 리스크’ 현실화
금융사 경영책임을 금융당국이 질 순 없어
감독권 행사 시장과 산업발전 우선 고려해야

대규모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피해를 본 사람들이 금융사 본점이 아니라 금감원으로 몰려들어 항의집회를 여는 경우가 더 많다. 금융시장에서 ‘투자’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돈을 걸고 게임을 하는 것이다. 판을 펼치는 금융사와 게임에 참여하는 투자자가 실현된 결과에 승복하도록 공정하고 합리적인 규칙(rule)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필요한 시점에 규칙을 완화해 경제 활성화를 유도하기도 하고 시장이 과열되면 규칙을 강화해 열기를 식혀 시스템 리스크를 줄이기도 한다. 금융당국의 정책수립과 감독권 행사에 금융사 로비나 정치적 논리가 스며들면 공정성과 합리성을 의심받는다. 금융산업의 발전과 국민경제 기여도가 금융시장의 규칙을 정해 운영하는 원칙이며 공정성과 합리성을 평가하는 기준이다.

우리금융그룹의 경영에 전현직 CEO와 관련된 ‘감독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복현 원장이 ‘매운 맛’을 보여준다고 연기했던 우리금융의 정기검사결과가 지난 4일 발표됐다. 부당대출 2334억원 가운데 67%의 대출에서 연체가 발생하는 등 자금운용 과정의 내부통제 실패가 크게 부각됐다. 특히 전임 회장 손태승의 친인척 관련으로 의심되는 부당대출이 당초 350억원에서 730억원으로 380억원 늘었다. 손 전 회장 친인척 직접대출 뿐 아니라 친인척 지인의 대출까지 조사대상을 확대한 결과다. 이복현 금감원장 ‘요리’의 ‘매운 맛’은 2023년3월 임종룡 회장이 취임한 이후 취급한 손 전 회장관련 대출이 61.8%라는 ‘레시피’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복현 원장은 우리금융이 추진중인 보험사 인수에 협조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이 원장은 금융지주 리스크의 진원지로 ‘지주회장 중심의 낙후된 은행권 지배구조’를 지목했다. 대규모 금융사고뿐 아니라 인수합병 등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이사회의 견제와 감시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것도 상명하복의 폐쇄적 조직문화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한다.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과정에서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사회 개최 20분 전에 리스크관리위원회가 졸속으로 열렸고 금융당국의 불승인으로 거래가 실패해도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없는 조항이 포함된 주주간계약(SPA)이 증거로 제시됐다.

금융업 M&A는 금융당국 승인이 필수적이므로 승인 실패시 계약금 상환이 보장되는 것이 보통의 계약구조다. 금융당국의 승인여부를 불가항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금융이 계약금 몰취조항을 수용한 것은 경영판단에 의한 인수전략으로 볼 수도 있다. 한국시장 철수의지가 강한 중국 다자그룹은 거래성사가 가장 큰 목표였다. 거래성사 가능성을 높여 매도인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대신 인수가격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끌어내려는 우리금융의 M&A 협상전략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의 물리적 시간차이가 20분으로 짧다는 지적도 상황에 따라 시시비비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에 정식 안건으로 부의하기 전에 사전설명회를 통해 이사들에게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토의가 이루어진다. 또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의 구성원은 대부분 중첩된다. 금감원도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자본시장 상장사인 우리금융은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선택한 손태승이나 임종룡 개인 소유가 아니다. 금융당국이 금융회사 경영에 감독권을 발휘하는 이유는 개별 금융사의 경영 리스크가 시장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경영진이 사적인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행하는 무리한 경영조치나 불법행위는 엄정하게 처벌해야 한다. 하지만 경영진과 이사회가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위해 결정한 경영판단은 최대한 존중돼야 한다. 금융지주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노력은 일회성으로 완결되는 과제가 아니다. 운영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보완하고 바꿔가야 할 ‘무빙 타깃’이다.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해 경영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승인하지 않는 것이 옳다. 부실한 보험사 인수를 우리금융 자본력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이면 역시 승인해서는 안된다. 인수자격에 법적 하자가 있는지 대주주 적격성은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치유가 가능한 하자는 치유를 조건으로 예외승인도 가능하다고 본다. 치유가 불가능한 치명적 불승인 사유가 명확이 제시돼야 한다. 판단기준은 금융산업 발전과 국민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될 것이다.

2024년 우리금융의 당기순이익은 3조 860억원으로 전년대비 23% 이상 증가했지만 은행 비중이 99%에 달한다. 그룹 순영업수익 10조4400억원의 85%는 이자이익이다. 비은행 비즈니스를 확대해 수익구조 안정화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동안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의 경영개선과제로 지적해온 사항이기도 한다. 보통주자본비율(CET1)은 올해 목표 12.5%에 미치지 못하지만 12.08%로 2023년말 대비 0.09%포인트 개선됐다. 하지만 고정이하(NPL) 비율이 0.57%로 0.2%포인트 상승하고 NPL커버리지비율이 153%로 67%포인트 하락했다. 자산건전성 개선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상황이지만 금융당국이 보험사 M&A를 중단시킬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다.

우리금융이 동양생명과 ABL생명을 인수하면 금융시장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이 기대된다. 우리금융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가 안정화되고 건실해지면 회사뿐 아니라 금융의 중개기능이 강화돼 금융산업과 국민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M&A시장에 매물로 쌓여 있는 보험사가 정비돼 보험업 경쟁력을 높이는 견인차가 될 수도 있다. 외국자본의 불투명한 경영 리스크에 노출된 보험사를 국내 금융지주가 인수해 안정적으로 경영하면 금융시장 시스템 리스크도 줄일 수 있다. 우리금융이 비은행부문 확대를 통해 금융그룹간 경쟁에서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면 금융시장 안정과 금융산업 경쟁력 제고 측면에서는 대단히 긍정적이다.

우리금융은 올해 8월28일까지 동양생명과 ABL생명 인수거래를 종결해야 한다. 2024년 6월 26일 우리금융은 중국 다자그룹과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개월간의 실사와 협상을 거쳐 지난해 8월28일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자회사 편입심사 신청서가 금감원에 접수된 날은 5개월이 지난 올해 1월15일이다. 그동안 금감원이 접수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청서가 접수되면 2개월 이내에 심사결과를 알려줘야 하기 때문에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접수를 미룬 것이다. 금감원이 검사종료 후 결과를 내놓는 기간이 보통 정기검사는 6개월, 수시검사는 5개월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지난 4일 기자설명회 형식을 빌어 발표한 2024년 정기검사결과는 예년과 달리 상당히 서두른 셈이다. 이원장은 우리금융 보험사 인수심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이번 달 내로 결과를 금융위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경영실태평가등급(rating)은 검사 후 보통 1년이 지나서 발표하고 제재 건은 2년 정도가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회사 경영활동의 기준(standard)과 규칙(rule)을 만들어 운영한다. 금융당국의 기준과 규칙은 개별 금융사뿐 아니라 금융산업과 국민경제 전체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금감원을 정부조직인 금융위에서 분리해 운영하는 것은 금융감독의 전문성과 독립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전문성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금융감독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공정성과 객관성이 담보된다. 감독권 행사가 사사로움이나 정치적 편향성을 벗어나지 못하면 소탐대실 할 수 있다. 금융당국이 우려하는 내부통제와 계약내용 부실 등의 개선을 조건으로 우리금융의 보험사 인수를 승인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금융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지원할 수 있는 전향적 감독권 행사가 필요하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