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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우리금융 내부통제 실패와 ‘표적 검사’

Numbers 2025. 2. 17.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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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우리금융 내부통제 실패와 ‘표적 검사’

금감원 겉으론 ‘무관용 원칙’…“상줄 생각없어”“앞당긴 우리금융 정기검사·등급 발표등 정치적”계엄·탄핵 여파 ‘부당대출 사태’ 미봉적 마무리정권 바뀌면 무더기 인사청탁 실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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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겉으론 ‘무관용 원칙’…“상줄 생각없어”
“앞당긴 우리금융 정기검사·등급 발표등 정치적”
계엄·탄핵 여파 ‘부당대출 사태’ 미봉적 마무리
정권 바뀌면 무더기 인사청탁 실체 드러날 수도

지난해 8월 금융감독원 발표로 시작된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의 전모가 6개월여에 걸친 특별검사와 정기 검사,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금감원이 우리금융에 대해 경영실태평가 등급을 산정하고 CEO 등 관련자들을 제재하는 것입니다. 금감원의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나오면 금융위원회는 우리금융이 추진 중인 동양·ABL생명 인수에 대해서도 인허가 여부를 결정합니다.

금감원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태로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지난 4일 발표한 ‘손태승 전 회장 관련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은 그 규모가 지난해 8월 발표한 350억원에 비해 2배 이상 늘어 총 730억원으로 확인됐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61.8%인 451억원이 임종룡 회장이 취임한 2023년 3월 이후 취급됐습니다. 전체 부당대출 가운데 이미 46%가 부실화됐고 부실 규모는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금감원의 지적입니다. 

금감원 검사와는 별개로 언론에 공개된 손태승 전 회장 공소장을 보면 손 전 회장은 재임 기간 중 처남의 부당대출과 관련해 당시 은행장 등 주변 사람들의 잇단 보고와 지적에도 철저하게 이를 무시했습니다. 오히려 처남의 부당대출을 도와준 은행 직원들을 인사상 우대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블로터>가 지난해 여러 차례 기사와 칼럼으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금감원이 밝힌 손태승 전 회장 관련 불법 대출 730억원은 천억원대의 금융사고가 하루가 멀다하고 터지는 금융계 현실을 감안하면 규모가 큰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이 6개월여에 걸쳐 뒤지고 검찰까지 나선 것은 회장이 직접 연루되고, 갈등을 조장하고 기업문화를 타락시킬 뿐 아니라 ‘부실 내부통제’의 전형적 사례로 봤기 때문입니다. 금융그룹 회장의 처남과 부인이 관련된 부당대출 사건은 40~50년 전에나 있을 법한 대단히 후진적인 사건입니다. 종교적 표현을 빌리면 ‘성령을 모독하는’ 질이 나쁜 사건입니다. 

우리금융 전임 회장 관련 부당대출 사건에 대해 금감원과 이복현 원장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무관용 원칙’입니다. 이번 검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이 원장은 ‘매운맛’을 보여주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했습니다.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이번 사건이 손 전 회장뿐만 아니라 이를 통제하지 못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원장은 “부실한 내부통제나 불건전한 조직문화에 상을 줄 생각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이복현 원장은 초지일관 단호합니다. ‘뒤끝’이 보통이 아닙니다. 금융권에서는 이 원장이 2022년 6월 취임 전후로 주변에서 금융지주 지배구조와 지주 회장들의 전횡에 대해 잘 살펴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는데 우리금융이 제대로 걸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이번에 부당·불법·부실 대출과 상관없는 우리금융의 생보사 M&A 과정에서의 절차 미흡과 관련 규정을 소홀하게 취급한 점도 지적했습니다. 지난해 8월 우리금융은 동양·ABL생명 인수를 위한 1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당일 이사회와 리스크관리위원회를 20분 간격으로 여는 등 충분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의 주인인 중국 다자보험그룹과 계약을 체결하면서 우리 금융당국이 인허가를 승인하지 않을 경우 계약금 1500억원을 받지 못하는 ‘몰취(沒取) 조항’이 포함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합니다. 더욱이 이 조항이 공식 이사회에서는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금감원 입장에서는 계약금 몰취 조항이 당국에 생보사 인수 허용을 압박하는 수단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 임종룡 회장이 과거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시절 증권사 인수 성공 사례에 고무돼 이번에도 재임 기간 중 성과를 내기 위해 서둘러 무리하게 보험사 인수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건전성이나 리스크 관리, 이사회 절차 등 내부 견제 장치를 경시했다는 시각입니다.

감독규정에 따르면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을 인수하려면 이달 중으로 결과가 나올 경영실태 종합평가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합니다. 금감원 평가 등급을 기초로 생보사 인수 허용 여부를 최종 결정하는 곳은 임종룡 회장의 친정인 금융위원회입니다. 금감원이 3등급으로 하향해도 자본금 증액이나 부실자산 정리 등을 전제로 금융위가 조건부 승인을 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리금융의 동양·ABL생명 인수는 금감원의 경영실태 등급 평가와 금융위의 정무적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전임 손태승 회장의 부당대출과 관련해 우리금융은 그동안 여러 차례 대국민·대고객 사과를 했고 임종룡 회장은 특히 검사 결과가 나오면 책임질 일은 뭐든 책임지겠다고 말했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최근에만 해도 임종룡 회장과 그룹사 대표들 간의 ‘윤리경영 실천 서약식’을 비롯 금감원 금융연수원 은행연합회와의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 등 온갖 대책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억울해하는 모습도 역력합니다. 전임 손태승 회장의 이해할 수 없는 개인적 일탈은 부인할 수 없지만 임종룡 회장의 거취에 영향을 주고, 생보사 인수에까지 지장을 줄 정도의 사안이냐는 항변입니다. 그렇다 보니 지난해 하반기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으로 임종룡 회장의 사퇴설이 나왔을 때 “한두 명도 아니고 무더기로 ‘용산’ 쪽에서 인사 청탁을 했고, 이를 거부한 게 화근이 됐다”는 얘기가 금융계에 퍼지기도 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되고, 이복현 금감원장은 임기 만료로 오는 6월 물러나고, 야당이 대선에서 이겨 새 정부가 출범한다고 가정하면 윤석열 정부의 우리금융에 대한 무더기 인사 청탁 및 압박에 대한 ‘진실’이 드러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에 대한 금감원과 이복현 원장의 대응은 정치성이 다분한 ‘표적 검사’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금융계에서는 금감원과 이복현 원장이 더 이상 임종룡 회장의 거취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것도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같은 정치 지형의 급변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금감원의 전임 회장 부당대출과 관련한 특별·정기 검사와 결과 발표, 이를 근거로 한 경영실태 등급 발표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 금융계 일각에서 나오는 표적 검사 주장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닙니다. 단적으로 금감원은 지난해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이 터지자 이를 빌미로 올해 받아야 할 정기 검사를 1년 앞당겼습니다. 검사가 끝나면 결과는 대개 5~6개월 뒤 발표하는 관례를 깨고 두 달여 만에 서둘러 공개했습니다. 금감원은 경영실태평가 등급 발표도 검사 후 1년 뒤 하는 관행을 깨고 이달 중으로 끝내겠다고 합니다. 금감원은 우리금융의 생보사 인수와 관련해서도 지난해 8월 말 이사회 승인 후 5개월이 지나도록 신청서 접수를 거부하다가 지난 1월에서야 신청서를 받아줬습니다. 모든 과정이 이례적이다 보니 ‘표적 검사’라는 주장이 나오고, 이달 중 나올 경영실태 평가 등급은 ‘표적 등급’이 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금융은 이번에 금감원이 발표한 내용 가운데 특히 생보사 M&A와 관련한 지적에 강하게 항변합니다. 우리금융은 계약금 ‘몰취 조항’은 우리금융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다자보험 측에도 적용되는 쌍방 계약이어서 한 쪽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M&A 전략 측면에서도 몰취 조항을 둠으로써 가격을 깎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볼 만하지 않으냐는 지적입니다.

금감원이 생보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20분 간격으로 여는 등 제대로 안건을 심의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는 것에 대해서는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입니다. 이사회 멤버들 중에서 일부가 리스크관리위원회 위원을 맡는 데다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논의한 후에 회의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금융이 생보사 M&A 관련 내용에 특히 예민한 것은 여기에 그룹의 미래는 물론 올 연말 임기 만료되는 임종룡 회장의 승패가 달렸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든 동양·ABL생명 인수가 무산되면 우리금융은 절대 KB·신한·하나금융을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임기가 끝나는 임종룡 회장도 내세울 게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금융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지난 13일 금융연수원에서 열린 사외이사 양성 및 역량 강화를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이복현 원장과 임종룡 회장은 모처럼 환하게 웃고 손잡고 대화를 나눴습니다. 의례적일 수도 있지만 최근의 정치상황 변화를 반영한 장면으로 보입니다. 비상계엄 선언과 탄핵 심판으로 윤석열 정부가 사실상 끝나고 있는 상황을 대입해보면 우리금융 부당대출 사건에 대한 문책과 경영실태평가 등급 발표, 생보사 M&A 허용에 대한 답도 나온다는 것을 이복현 원장이나 임종룡 회장 같은 고수들은 너무 잘 압니다. 

1년 가까이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을 흔들었던 전임 회장 부당대출 사건과 생보사 인수 이슈가 정치 지형의 급변과 함께 마무리 단계로 들어갑니다. 금융감독원과 이복현 원장은 내부통제 실패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한다는 식으로 기강과 체면을 세우고, 우리금융과 임종룡 회장은 재발 방지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한편 생보사 인수라는 실리는 챙기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대한민국 금융업에서는 역시 정치 변수가 제일 중요합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