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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공시 대해부] 컨트롤타워 없는 재계 1위…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

Numbers 2025. 5. 13.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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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공시 대해부] 컨트롤타워 없는 재계 1위…삼성의 보이지 않는 손

삼성은 지주회사가 없다. 그룹 정점에서 모든 투자와 인사를 조율하는 공식 컨트롤타워도 없다. 그럼에도 삼성은 올해 600조원에 달하는 자산으로 국내 재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계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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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수원 삼성전자 본사 전경.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은 지주회사가 없다. 그룹 정점에서 모든 투자와 인사를 조율하는 공식 컨트롤타워도 없다. 그럼에도 삼성은 올해 600조원에 달하는 자산으로 국내 재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계열사 수를 늘리지 않은 채 자산만 22조원 넘게 불린 결과다. 겉으로 드러난 정점은 없지만 분산된 지배구조 안에선 '보이지 않는 손'이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으로 이어지는이른바 삼각편대 체제가 그 중심축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삼성의 공정자산총액은 전년(566조8220억원)보다 22조2900억원(3.9%) 늘어난 589조1140억원으로 집계됐다. 계열사 수는 3년 연속 63개로 변동이 없었다.

흥미로운 건 삼성이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92개 공시대상기업집단 중 계열사 수를 늘리지 않고 자산을 크게 불린 몇 안 되는 그룹이라는 점이다. 현대자동차, LG, 포스코홀딩스, 한화, HD현대 등 대다수 그룹이 신사업 확장과 지배구조 개편에 따라 계열사 수에 변화를 줬다. 삼성의 사례는 기존 기업집단의 성장 공식과는 다른 접근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삼성은 핵심 계열사들이 일정 지분을 교차 보유하며 각 이사회 중심으로 전략과 투자를 판단하는 지배구조를 갖췄다. 지주사처럼 일원화된 의사결정 체계는 아니지만 계열사 간 분업과 견제를 통한 다핵 운영 체계가 실질적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평가다.

과거에는 이같은 분산형 구조가 '책임소재 불명확',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컨트롤타워 부재' 등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배구조의 다핵화가 오히려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복원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의 이러한 구조적 특성이 향후 리스크 대응에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반도체·전장 부문에서의 사이클 변동성, 미국 투자 확대에 따른 글로벌 규제 리스크 등이 본격화될 경우 중앙집중형 지배구조보다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은 오너가 직접 전면에 나서지 않더라도 각 계열사 이사회 중심으로 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라 경영 판단과 리스크 관리 모두 분산된 시스템에서 작동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분산 구조가 가진 유연성과 자율성이 재무 측면에선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해외 자회사 배당금 수익의 감소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의 순이익이 전년보다 2조7000억원 감소했으며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해외 자회사 배당금 수익 축소'를 명확히 지목했다. 

특히 미국, 유럽, 삼성디스플레이 말레이시아 등 해외 자회사로부터의 배당 흐름은 전반적으로 둔화됐다. 이들 해외 자회사들은 현지 수익을 본사로 송금하며 그룹 전체의 유동성을 뒷받침해왔지만 최근 들어 이 흐름이 약해지는 양상이다.

이같은 배경에는 일시적 실적 부진만이 아니라 글로벌 산업 정책 변화와 ESG 기조 확산에 따른 구조적 환경 변화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은 자회사 입장에서 본사 배당보다 현지 재투자에 더 큰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그 결과 배당 여부는 본사의 지시보다는 각국 이사회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구조로 굳어졌으며 이는 그룹 차원의 자금 조율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재계 일부에서는 이러한 배당 감소 흐름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변화일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한다. 향후에도 이 같은 경향이 지속된다면 '재무 주체는 한국 본사, 수익 주체는 글로벌 자회사'라는 이원적 구조 아래에서 그룹 전체의 투자 여력이나 전략적 인수합병(M&A) 추진 역량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