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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공시 대해부] LG, 내실로 견딘 '186조 제국' 반등의 기로

Numbers 2025. 5. 1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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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집단 공시 대해부] LG, 내실로 견딘 '186조 제국' 반등의 기로

국내 재계 순위 4위인 LG가 공정자산총액 186조원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계열사 수는 대기업집단 평균을 밑돌며 무리한 확장보다는 슬림한 지배구조와 보수적 재무 전략에 방점을 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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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LG 본사 전경 /사진 제공=LG

 

국내 재계 순위 4위인 LG가 공정자산총액 186조원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계열사 수는 대기업집단 평균을 밑돌며 무리한 확장보다는 슬림한 지배구조와 보수적 재무 전략에 방점을 찍은 내실 경영 기조를 유지했다.

다만 실적은 뚜렷한 한계를 드러냈다. 전자·화학·통신 등 주력 사업 전반의 부진으로 LG는 4대 그룹 가운데 유일하게 순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안정된 지배구조와 재무 기반에도 불구하고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 대한 대응력은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외형 키웠지만 수익성은 '글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정 결과에 따르면 LG그룹의 지난해 공정자산총액은 186조600억원으로 전년(177조9000억원) 대비 약 8조원(4.6%) 증가했다. 자산 규모에서 3위인 현대차(306조6170억원)와 약 121조원 차이가 나며 3위권 진입에는 거리가 있었지만 5위인 롯데(143조3316억원)와는 한층 격차를 벌렸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같은 외형 성장이 계열사 급증 없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LG의 계열사 수는 총 63개로 지난해(60개) 대비 단 3곳 늘어나는 데 그쳤다. 신규 편입된 계열사는 LG화학과 이탈리아 ENI가 공동 설립한 바이오오일 합작사인 LG에니바이오리파이닝, LG유플러스와 카카오모빌리티의 합작 플랫폼 법인인 LG유플러스볼트업 등이다.

SK(198개), 한화(119개) 등 100개 이상의 계열사를 거느린 그룹들과 달리 LG는 대기업집단 평균(84.7개)보다도 적은 숫자의 계열사를 유지하며 슬림한 지배구조를 고수하고 있다. 전자(LG전자), 화학(LG화학), 통신(LG유플러스) 등 '삼각편대'를 중심으로 핵심 사업에 집중해 온 LG의 경영 기조가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재계 한 관계자는 "LG는 외형상으로는 4위지만 핵심 사업들의 독립성과 책임경영 체제가 뚜렷해 시장 효율성 측면에선 높은 경쟁력을 갖췄다"며 "지주회사 체제의 높은 숙성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평가했다.

다만 경영 성과 면에서는 뚜렷한 아쉬움이 남았다. LG그룹 전체회사 기준으로 총매출은 약 140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소폭 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870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2023년 2조1410억원의 영업흑자를 기록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한 실적 후퇴다.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순이익 마이너스를 기록한 곳은 LG가 유일하다. 삼성(4조1600억원), SK(1조8448억원), 현대차(2조3771억원) 등이 주요 그룹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익성을 방어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같은 실적 부진은 일회성 변수가 아닌 주력 계열사들의 업황 악화가 누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LG디스플레이와 LG에너지솔루션의 부진이 수익성 저하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LG디스플레이는 전방 수요 부진과 패널 가격 하락에 직면하며 2024년 한 해 동안 영업손실 5606억원을 기록했다. 액정표시장치(LCD) TV 사업을 접고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체질 개선에 나섰지만 기대했던 수요 회복은 지연됐고 원가 절감 효과도 제한적이었다. 여기에 디스플레이 패널 평균 판매단가는 지속 하락했고 수익성 회복의 발목을 잡았다.

LG에너지솔루션 역시 글로벌 전기차 수요 둔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주요 완성차 업체들의 생산 조정과 소비 심리 위축이 이어지며 2024년에는 9376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전년(-657억원) 대비 적자 폭이 크게 확대됐다. 전방 산업인 전기자동차 시장의 수요 위축은 시차를 두고 이차전지 수요 감소로 이어지며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혔다.

실제로 공정위도 '디스플레이 시장 및 전기차 시장의 업황 악화'를 LG그룹 수익성 둔화의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기술 경쟁력 약화, 글로벌 공급 과잉, 고금리 환경에 따른 수요 위축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다.

'지배구조 안정성'은 여전히 LG의 무기?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체제 하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2018년 구 회장 취임 이후 큰 계열분리 없이 핵심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으며 지주회사 ㈜LG를 정점으로 한 구조가 확립돼 있다. 2021년 LG상사 등 일부 비핵심 계열이 LX그룹으로 분리된 이후로는 추가적인 그룹 재편도 없었다.

지주회사 ㈜LG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 집중형 지배구조가 투자 및 리스크 관리 효율성을 높였다는 평가다. 여기에 동일인(총수)도 구 회장으로 변동 없이 유지되고 있어 일부 대기업집단과 달리 경영 승계 리스크도 적은 편이다.

재무 건전성 측면에서 LG는 여전히 양호한 수준을 유지 중이다. 2024년 말 기준 전체회사 부채비율은 약 86.4%로 집계됐다. 이는 삼성(126.6%), 현대차(92.6%), 롯데(113.7%), 한화(332.5%) 등 주요 그룹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주회사 체제를 기반으로 한 자금 운용 효율성과 재무 투명성이 리스크를 일정 부분 상쇄한 것으로 평가된다. 자체 수익창출력과 보수적 재무관리 기조 역시 재무구조 안정에 기여했다는 분석이다.

재무 구조가 견실하고 지배구조가 안정적인 만큼 일시적 실적 부진보다는 장기적 투자와 혁신에 집중할 여력이 있는 셈이다. LG는 인공지능(AI), 바이오, 클린에너지 등 이른바 'ABC' 신사업 분야에 향후 5년간 1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히는 등 공격적인 미래 준비에 나서고 있다. 구 회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전에 없던 가치를 만든 많은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LG가 되었듯 우리가 앞으로 가야할 길도 분명하다"며 "도전과 변화의 DNA로 기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최지원 기자 frog@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