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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톡] 위축된 바이오 투자, 기술이전으로 해법 찾을까
제약 및 바이오 산업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강세를 보여온 분야입니다. 투자 건수만 살펴봐도 지난 한 해 동안 엔터프라이즈 및 보안이 158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5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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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및 바이오 산업은 국내 벤처투자 시장에서 전통적으로 가장 강세를 보여온 분야입니다. 투자 건수만 살펴봐도 지난 한 해 동안 엔터프라이즈 및 보안이 158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가 53건, 모빌리티가 76건이었던 것과 비교해 바이오·의료·헬스케어 분야는 무려 258건에 달할 정도로 여전히 높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는 “바이오 투자가 예전 같지 않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다른 산업 대비 투자 건수는 많지만 전성기에 비해 속도는 둔화했고 금액 자체도 큰 폭으로 줄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2021년과 2022년만 해도 연간 3조원을 넘나들던 바이오 분야 투자액은 2023년에 1조원대로 급감했고, 지난해에도 1조3000억원 수준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투자 흐름이 위축된 가장 큰 이유는 '회수길'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 스타트업들은 기술특례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입성하는 사례가 많은데 매출 실적이 부족해 상장 후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거나 상장폐지 리스크가 불거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상장 심사도 갈수록 깐깐해지면서 IPO를 통한 회수가 사실상 어려워진 것입니다.
회수가 막히면 VC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돌려줄 길이 막히는 만큼, 새로운 펀드 결성을 위한 출자자 모집도 어려워집니다. 결국 투자 심사 기준은 더욱 보수적으로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 시장 전체의 투자 건수와 투자금액이 동반 감소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 VC 업계의 중론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IPO만을 바라보기보다는 먼저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해 기술 개발 성과 및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기술이전(라이선스 아웃)은 신약개발 성과를 해외에서 인정받아 현금화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일 뿐 아니라 기업가치 자체를 크게 끌어올리는 계기가 됩니다. VC 입장에서도 지분가치 상승에 따른 세컨더리 매각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고 IPO 가능성도 더 높아진다는 겁니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술수출 규모는 12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라이선스 아웃을 통해 받은 계약금과 마일스톤(개발 단계별 성과금), 로열티 수입 등이 안정적 현금흐름을 만들어 주는 만큼, 기업의 재무구조도 좋아지고 후속 투자나 상장 시 기업가치 책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다만 기술이전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단순히 아이디어나 가능성만으로는 해외 빅파마가 돈을 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경쟁 기술과 비교해 차별성을 입증해야 하고 임상이나 비임상 데이터를 통한 ‘데이터 패키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게 VC들의 주장입니다. 한 바이오 전문 VC 심사역은 “기술이전에 성공하려면 경쟁사 대비 명확한 기술적 차별성과 이를 뒷받침할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효능이 있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반복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로 기술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 다른 심사역은 “최근 중국 바이오 기업들이 기술이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며 “중국 기업들은 개발 초기부터 글로벌 제약사에 팔 것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고, 데이터를 치밀하게 쌓으며 협상력을 키웠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올해 1월부터 5월 중순까지 중국에서 성사된 기술이전 계약 규모는 무려 33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렇다면 VC는 국내 바이오 스타트업의 성장과 기술이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여러 심사역들은 국내 바이오 기업을 해외 투자자나 빅파마와의 네트워크를 연결해주는 ‘브릿지’ 역할은 물론 초기 단계부터 글로벌 기준에 맞춘 연구개발 계획 수립, 임상 설계 조언, 협상 전략 수립까지 다양한 형태로 지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기업이 준비만 됐다면 라이선스 아웃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신약개발에는 막대한 자금과 오랜 시간이 필요한 만큼, VC가 단순한 ‘돈줄’ 이상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VC가 적극적으로 변화를 주도하고 스타트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이야말로 지금 한국 바이오 투자 생태계에 필요한 모습이 아닐까요.
김가영 기자 kimgoing@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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