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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 저PBR 금융업 저평가 탈피 계기 되어야
립 서비스 아닌 법·제도적 장치로 신뢰 회복 필요
주식시장이 연일 저평가주 찾기 열풍으로 뜨겁다. 최근 들어 소위 대표적 저PBR 업종으로 분류되는 은행 보험 등의 주가상승률도 아주 가파르다. 주식시장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의 저평가 이슈가 어제 오늘일만도 아닌데 요즘 시장반응이 유난스러운 것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설 계획이라는 발표 때문이다. 기업가치에 대한 시장의 상대적 평가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가 주가순자산비율(PBR, Price to Book-value Ratio)이다. PBR은 기업의 회계장부상의 순자산(자본)가치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해당회사 주식의 시장가치(시가총액) 비율이다. 이번에 정부가 나서서 장부가치보다 낮게 거래되는 저PBR 기업들의 시장가치를 끌어올려보겠다는 것이다.
소위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추진해 저평가된 기업가치를 바로 잡겠다는 것으로, 2023년 3월 일본의 도쿄증권거래소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1배를 하회하는 기업들에게 ‘기업경영 변혁 촉진책’을 공시하도록 요구했던 정책이 참고가 된 것 같다. 일본에서 추진했던 주요 방안은 주주이익환원 확대, 미래성장전략 추진, 자본효율성 개선 등 세가지 측면이었다. 일본경제의 펀더멘탈이 강화되고 있는 시점에 기업의 장기성장과 주주 친화적인 정책추진을 독려함으로써 외국인 투자자들의 일본 증권시장에 대한 관심을 높여 외국인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는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받고 있는 저평가 요인을 개선하여 제값을 받도록 하자는 데는 누구도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낮은 PBR이 지속돼 온 원인이 몇 마디 말과 한 두개 제도 변경으로 해소될 상황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회사가 시장 투자자들의 평가를 잘 받으려면 다른 회사보다 돈을 더 잘 벌고 성장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기업가치의 상대적 비교지표인 PBR은 자기자본수익율(ROE)과 주가수익비율(PER)로 구성된 산수식에 지나지 않는다. 회사가 돈을 잘 벌면 자기자본수익율(ROE, Return on Equity)이 높아진다. 아울러 지금 돈을 잘 벌고 있는 회사의 사업전망이 다른 회사보다 앞으로도 더 좋다는 평가를 받게 되면 주가수익비율(PER, Price to Earning Ratio)을 높게 받을 수 있다.
돈 잘 버는 회사가 장기성장 가능성도 높다면 투자자들의 관심도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수익성과 성장성 좋은 회사의 PBR은 상승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러나 PBR이 낮다고 반드시 저평가되었다고 볼 수 없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수익성이 낮으면 자기자본수익율(ROE)이 낮아진다. ROE 개선은 기업 스스로 경영 노력을 통해 해결해야 할 영역이다. 주가수익비율(PER)은 사업 자체의 성장성 뿐만 아니라 사업을 통해 얻는 수익을 향유하는 투자자 몫의 성장성이 현실적으로 더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늘어난 수익은 배당 등을 통해 주주이익으로 환원시키거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사용되어 자본이 효율적으로 잘 관리되도록 해야 실질적인 PBR 상승을 이끌어낼 수 있다. 기업이 번 돈을 투자자들과 나누고 지속성장을 위해 투자하는 활동이 배당성향과 자본관리 정책으로 나타난다. 문제는 기업이 번 돈을 투자자들과 나누는 과정이 합리적이지 않거나 불확실성이 커지면 장부가치가 아무리 높아도 투자자들이 싫어하고 잘 사지 않게 된다. 액면으로 나타난 주가순자산비율(PBR) 수준도 중요하지만 PBR을 낮추는 요인이 주가수익비율(PER)에서 기인한다면 배당이나 자본관리의 정책과 제도운영 측면에서 개선의 여지가 그만큼 많은 것이다.
자본시장과 회계정보가 큰 문제가 없는데도 회사가 보유한 순자산(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자본)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가치보다 낮은, PBR이 1보다 작은 경우를 정상적인 상황이라 볼 수는 없다. 회사가 영위중인 사업을 접고 부채를 다 정리한 후 남은 돈을 투자자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의미이다. 2023년 12월말 기준 코스피(KOPSI) 거래기업 전체의 PBR은 0.96배다. 이는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에서 거래되는 상장회사 전체 시가총액이 모든 기업의 장부가 총합을 밑돈다는 뜻이다. 시가총액기준으로 대형주는 1.06배로 1배 수준을 겨우 넘겼지만 중형주와 소형주는 각각 0.5배 0.64배로 형편 없이 낮다.
업종별 PBR 수준을 보면 우리나라 금융업이 다른 업종에 비해 유난히 더 낮다. 2023년 12월 기준 배당수익율이 은행 5.15% 보험 3.40% 증권 3.41% 등으로 건설업 배당수익율 2.14% 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금융업 전체 PBR은 0.48배로 건설업 0.59 보다 더 낮다. 공공재 성격의 유틸리티 0.37배를 제외하면 은행 0.43 보험 0.44 증권 0.46 수준으로 모든 업종 중에서 가장 낮다. 세상 만인의 지탄을 받을 정도로 돈을 많이 벌고 배당성향도 상대적으로 낮지 않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업 PBR이 이처럼 낮은 이유는 금융업의 장기성장 가능성이 현저히 낮거나 직간접적인 규제영향으로 배당과 자본관리 정책을 효율적으로 가져 갈 수 없는 한국의 금융환경이 투자자들 생각에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2023년 12월 업종별 PER를 보면 보험 4.54배 은행 4.76 증권 6.57 자동차 6.75 건설 11.1 등으로 역시 금융업권이 최하위를 보이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금융시장에 투자하기 전에 중요한 체크 포인트로 금융당국과 정책의 신뢰성을 항상 묻는다. 이번에 정부가 추진중에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시장 투자자,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 역시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혹여나 4월 선거 이후 흐지부지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것이다.
2023년 5월과 9월에 ‘K-금융 세일즈’를 모토로 싱가포르와 런던에서 글로벌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사상 최초로 금융감독 수장이 주도하는 금융권 공동 해외 IR이 진행됐다. 이복현 원장은 개회사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강점과 기회 요인으로 신뢰성 혁신성 개방성”을 들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신뢰할 만한 투자기회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는 취지로 대대적인 IR을 진행했다. 또한 “한국 은행지주 등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다는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 “앞으로 정부나 금융당국에서는 일관되게 배당 등 주주 친화적인 정책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향후 충당금과 배당 관련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10월부터 은행 ‘종 노릇’ 논란이 일어나고 연이어진 ‘상생금융’ 드라이브로 한국 금융업은 유틸리티산업 정도의 ‘내셔널 서비스(National Servcie)’ 사업 수준임을 투자자들에게 재확인시켜줬다. 차리리 배당과 자본관리정책의 자율성 등 시장 친화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이상 양치기소년으로 비난 받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새로운 돈(New Money)’이 추가로 주식시장에 들어와야 의미가 있다. 물론 수익성 좋은 비지니스 영역과 경영을 잘하는 회사로 자본이 몰리면서 자본시장 기능이 효율적으로 작동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에 있는 돈이 단기 순환매로 고PBR 회사에서 저PBR 회사로 돌기만 하고 전체 주식시장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금융시장 혼란만 부추기는 부작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요즘 코스닥지수는 하락하고 코스피지수는 상승하는 모습이 이런 의구심을 구체화시키는 징후로 보는 시각도 있다. 2023년 12월 코스닥시장 거래기업들의 PBR은 2.02배로 코스피시장 0.96 보다 높다. 또한 중형주와 소형주의 PBR도 코스닥시장이 1.59배 1.05배로 코스피시장 0.64 0.50 보다 높아 주식시장에 신규 투자자금 유입의 긍정적 효과보다 쏠림 현상에 따른 시장 왜곡은 아닌지 우려된다. 코스닥시장은 기술주 등 성장가능성에 무게들 더 두고 평가를 받는 기업들이 몰려 있기 때문에 PBR이 높은 측면이 있어 단순히 상대적으로 PBR이 높다고 투자를 거둘 이유는 아닌 것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는 기업의 실질가치가 시장에서 올바르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시작점이다. 지정학적 외부환경을 논외로 하면 당연히 기업은 PBR을 높이기 위해 돈을 잘 벌고 자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자기자본수익율(ROE) 향상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ROE를 높이는 방법은 더 많은 돈을 벌어 분자를 늘리거나 순자산(자본)을 줄여 분모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배당가능이익을 활용하여 배당을 늘리거나 자기주식 취득을 통해 순자산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당장 취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성장 가능성 높은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번 돈으로 투자를 확대하여 지속성장을 만들어가야 한다.
배당성향과 자사주 처분 등 시장의 룰을 설계하고 관리 감독하는 당국은 기업이 경영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권이나 당국 수장이 바뀔 때마다 조령모개 하지 않도록 기본에 충실한 제도를 만들어 기업들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지원해야 우리 회사들이 시장에서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추진되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법과 제도’로 뒷받침되는 명실상부한 기업가치 회복정책으로 자리 잡아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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