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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안통한 김홍국의 나폴레옹 2각모자 마법 [CFO 리포트]

Numbers_ 2024. 2. 14.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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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안통한 김홍국의 나폴레옹 2각모자 마법 [CFO 리포트]

경영권 행사 못하는 프리미엄은 지불할 필요 없어“좋은 딜은 가격이 아니라 좋은 때를 사는 것”본업 경쟁력 높이고 장기적 지속가능경영 매진해야숫한 우여곡절 끝에 승리한 오스트리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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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권 행사 못하는 프리미엄은 지불할 필요 없어
“좋은 딜은 가격이 아니라 좋은 때를 사는 것”
본업 경쟁력 높이고 장기적 지속가능경영 매진해야


숫한 우여곡절 끝에 승리한 오스트리아와 ‘마렝고(Marengo)’ 전투 때 착용했다고 알려진 나폴레옹 1세 2각 모자의 마법이 통하지 않았던 걸까? 팬오션과 JKL 컨소시엄이 주도한 하림그룹의 HMM 인수협상이 협상기한 연장 등 양측의 거래 성사를 위한 막판 노력에도 불구하고 최종 결렬됐다. 농식품업 가치사슬(Value Chain) 전과정의 수직적 통합관리를 통한 글로벌 생산성 1위의 ‘식품생산 및 종합물류회사’를 만들어 가려던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의 성장전략 로드맵이 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당분간 하림그룹은 2015년 인수한 벌크선 전문 해운회사 팬오션을 기반으로 구축된 글로벌 곡물운송망을 더욱 강화하고 내수 기업인 하림을 글로벌 농식품 수출기업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본업 경쟁력 제고에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하림그룹이 HMM 인수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기대 보다는 걱정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무엇보다 인수자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보유한 HMM 지분율 57.87%(잔여 전환사채 전량 주식전환시 38.9%), 3억 9879만주를 인수하는데 필요한 6조 4000억원은 2023년 9월말 하림지주의 순자산 5조5000억원을 훌쩍 넘는 큰 규모였다. 게다가 하림지주가 동원 가능한 재무제표상의 현금성 자산은 최대 1조 3000억원 정도에 불과했다. 사모펀드와 금융권 인수금융 약속(LOC) 등을 최대한 감안해도 계열사 팬오션의 대규모 유상증자로 3조원 이상의 자금을 조달해야 겨우 맞출 수 있는 수준이었다. 승자의 저주가 우려되고 유일한 국적 해운사 HMM의 앞날 뿐만 아니라 하림그룹의 본업을 걱정하는 분위기가 강했었다.

그럼에도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이 지금까지 보여준 경영능력을 믿고 이번 빅딜에서도 특유의 위기 돌파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며 많은 사람들이 지켜봤다. 그러나 ‘1%의 가능성만 보여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추진해온 김홍국 회장의 불가능을 모르는 나폴레옹 2각 모자의 마법이 이번에는 걸리지 않았고 딜은 무산됐다. HMM의 현금배당 제한(3년, 연간 최대 5000억원), 일정기간 (5년) 지분매각 금지, 영구채 주식전환 유예, 매도자측 사외이사 지명권 등을 담은 주주간계약서(SPA)의 유효기간 제한(5년) 등에 대한 입장 차이로 딜이 무산된 것이다.

이번 딜 결렬의 가장 큰 원인은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듯이 근본적으로 인수할 돈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HMM이 보유한 10조원의 유보금 활용, 팬오션 유상증자 논란, 사모펀드 JKL의 투자금회수 유예기간 요구 등은 모두 자금조달에 대한 걱정 때문에 빚어진 논란들이다. 딜이 무산된 또 다른 요인으로 매도인측의 경영권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특히 산업은행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의 경영권 관여 의지가 강력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향후 재매각 추진시에도 인수자로 민간이 참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림그룹이 영혼까지 끌어 모아 획득한 경영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인수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딜 무산 직후 하림그룹측은 ‘실질적인 경영권을 담보해 주지 않고 최대주주 지위만 갖도록 하는 거래는 어떤 민간회사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토로한 바 있다.

어떤 연유이든 이번 HMM 딜 무산으로 하림그룹은 또 한 번의 성장기회를 놓쳐 아쉽기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하림그룹이 크게 손해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그룹의 본업에 집중하고 내실을 다지며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림그룹이 제시한 인수가격 6조4000억원은 2024년 2월 8일 기준 HMM의 시가총액 12조 6000억원에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반영한 금액을 기준으로 매각지분 38.9%에 해당하는 가치와 거의 동일한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시장가격 보다 경영권 프리미엄 30%를 더 주고 약 39% 지분을 인수하려 했던 것이다. 경영권 확보 대가로 지불한 프리미엄 30%의 가치가 거의 상실되는 계약조건을 하림그룹이 받아들이기 어려워 딜이 무산된 것이다.

또한 해운업 사이클 상으로 지금은 HMM의 시장평가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상황이기 때문에 우호적인 업황이 정점을 지나 인수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되면 가치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하림그룹은 2015년 벌크선 물류회사 팬오션을 인수하며 한국판 ‘카길(CARGILL)’이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했었다. 글로벌 종합식품회사로 성장해 나가기 위해 글로벌 곡물 물류공급망 확보를 통한 수직계열화가 경영 효율과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며 당시 상당히 무리한 인수였음에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하림그룹의 본업을 둘러싼 시장상황이 2021년을 정점으로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어 사업을 확장하기 보다는 본업 경쟁력 강화에 역량을 집중할 시점이라는 시각이 많다. 2021년의 경우 하림지주는 전년대비 매출 37.8% 영업이익 109.7% 당기순이익은 241% 증가했다. 이런 추세는 2022년까지 이어지며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년대비 각각 29.7% 26.9%증가했지만 당기순이익은 1.5% 소폭 감소로 반전했다. 그러나 2023년 들어서면서 성장성과 수익성 증가세가 모두 꺾여서 9월말 누적기준 전년동기 대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1.8% 35.2% 감소했고 전년도에 이어 당기순이익은 24.3%로 크게 감소하는 등 대부분의 경영지표가 역성장하고 있다.

HMM은 2016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며 산업은행 등 채권단 관리체제로 넘어온 이후 9년만인 2020년 처음 적자를 벗어났고 2022년에는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글로벌 거시경제 경기사이클에 민감한 해운 물류기업의 특성상 HMM의 경영실적은 언제든지 다시 하락 반전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특수 영향이 끝나가는 지금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HMM이 고평가된 시점일 수도 있다. 에프엔가이드 전망에 따르면 전 노선 운임 하락 등 전반적인 해운시황 악화로 2023년 9월 기준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모두 각각 58% 94% 92%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업의 M&A 거래도 개인의 주식투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좋은 딜은 가격이 아니라 좋은 때를 사는 것이라 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격 보다 좋은 투자시점을 판단하고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한화그룹은 2008년 10월 6조3000억원에 인수하려다 3개월만에 포기한 대우조선해양을 14년이 지난 2022년말에 2조원 남짓으로 결국 인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조달이 어렵고 경기 불확실성이 고조돼 어쩔 수 없이 포기했지만 결과적으로 투자시점을 변경한 것이 한화그룹에게는 오히려 큰 이득이 된 것이다. 막대한 투자손실로 궁지에 몰린 손정의 회장이 2020년 9월 ARM(영국 반도체 설계회사) 매각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차선책으로 2023년 9월 기업공개(IPO)를 한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돼 이후 주가가 거의 150% 가까이 상승하고, 손정의 회장을 어려움에서 구해주기도 했다.

이 번 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HMM 매도자 측의 완고한 요구조건은 향후 적절한 매수인 찾기가 만만치 않을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일정기간 지분 매각을 금지하는 조항은 사모펀드 등 자금조달 후보자 물색을 어렵게 할 것이다. 배당제한과 사외이사 선임 등 자율경영을 저해하는 주요 쟁점들은 앞으로 매수자로 나설 사람들이 미리 고민해야 할 조건들이며 여기에 어떤 요구사항들이 추가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러나 향후 경기 사이클이 변하고 HMM 실적이 악화되거나 산업은행의 자본부담 증가 등 매도인 측의 처지가 바뀌는 경우에는 KDB생명의 경우처럼 매도인과 매수인의 처지가 뒤바뀔 수도 있다.

2024년 2월 현재 하림지주의 PBR은 0.27배 수준으로 매우 낮다. 비즈니스를 중복 상장한 우리나라 지주사들이 저평가 받는 상황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하림그룹이 본업 경쟁력을 높이고 주주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본업에 충실한 경영을 통해 글로벌 종합식품회사로서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룹의 주력인 물류 공급망을 더 효율화시키고 부진한 미국법인 정상화 등을 통해 수익성을 더 끌어올려야 한다. 하림지주와 그룹 계열사의 주주들과 성과를 나누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지배구조 리스크로 할인 받고 있는 기업가치를 정상화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HMM 인수 무산이 하림그룹의 성장전략 실패가 아니라 본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내실을 기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나폴레옹 1세의 2각 모자가 하림그룹 김홍국 회장을 운명의 마지막 승자로 만들어 ‘치킨 마렝고 (Chicken Marengo)’의 전설을 낳을 마법을 부렸는지도 모른다. 소부재근(小富在勤) 대부재천 (大富在天)이라 했다. 작은 부는 노력해서 이룰 수 있지만 큰 부를 이루는 것은 하늘의 뜻이다. 하림그룹이나 김홍국 회장이 이번 HMM 딜이 무산됐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기회는 앞으로 얼마든지 다시 온다.

 


허정수 전문위원 jshuh.jh@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