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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독립성 중요하지만 힘이 너무 세면 부작용
“획일적 기준보다 후임자 제대로 키우는 게 중요”
#포스코홀딩스가 그랬던 것보다 더 심하게 소유분산 기업 KT는 지난해 CEO 선임을 둘러싸고 홍역을 치렀습니다. 구현모 대표가 연임을 시도하고, 이게 어려워지자 최측근을 다시 차기 대표에 앉히고, 이에 국민연금과 여권이 개입하기에 이릅니다. 진통 끝에 이강철 김대유 등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를 포함한 사외이사들이 모두 물러나고 이사회를 새로 구성했습니다. 새 이사회는 LG그룹 출신의 김영섭 대표를 선임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KT 이사회와 지배구조는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이사회 구성에서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이 빠진 자리에 최양희 윤종수 등 보수정권에서 장·차관을 지낸 사람들이 사외이사로 들어왔습니다. 김영섭 대표는 취임 당시부터 여권실세 연계설에 휩싸였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가 취임한 뒤 검사 출신 등 정치권 연계 인사가 잇따르는 것을 보면 전면 부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지난해 8월 취임 후 6개월밖에 안돼 평가가 이르지만 이전 경영진에 비해 더 혁신적이고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것도 아닌 듯합니다. 만약 3년 뒤 정권이 교체된다면 KT 김영섭 대표는 어떻게 될까요?
#소유분산 기업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은 최근 엄청난 일을 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선임된 최정우 회장 임기 만료로 새 CEO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KT와 마찬가지로 국민연금과 경찰이 나서는 등 온갖 압박을 받았지만 외부 후보를 물리치고 꿋꿋하게 내부 출신의 장인화 전 사장을 새 회장으로 선임했습니다. 이 정도의 외압을 받고도 이사회의 독립성을 지킨 사례는 흔치 않습니다. 기업 역사에 남을 일입니다.
그럼에도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습니다. ‘호화 이사회’ 논란입니다. 현직 최정우 회장을 단칼에 후보군에서 제외하고 정치권력의 압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막강 사외이사들이다 보니 그들은 많은 것을 누렸습니다. 해외 출장 때 비즈니스석를 이용하고 호텔에 묵고 골프 라운딩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세 비행기와 전세 헬기까지 띄웠습니다. 이사회가 독립성을 넘어 절대 권력이 되면 그때부터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그럼에도 3월 주총을 앞둔 포스코홀딩스 사외이사들 가운데 도의적 책임을 느껴 자진사퇴를 선언한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이사회는 부패하더라도 독립성만 지키면 되나요? 포스코 사외이사들은 독립성을 지켰기 때문에 모두 물러난 KT 사외이사들 보다 높게 평가받아야 하나요?
#금융권의 소유분산 기업인 4대 금융그룹에서도 포스코홀딩스 못지않게 막강 파워를 자랑했던 사외이사들이 있습니다. 바로 KB금융 입니다. MB정부 시절 금융계 4대 천왕 중 한 사람이었던 어윤대 KB금융 회장조차 사외이사들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특히 그가 추진했던 생보사 인수가 사외이사들 반대로 진전이 없자 화가 난 어 회장은 2012년 중국 현지법인 개소식 만찬에서 폭발하고 맙니다.
KB금융 사외이사들의 독립성과 막강 파워는 2014년 KB사태 당시 최정점에 이릅니다. 당시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회장 은행장 감사가 정면 출동했습니다. 이때 KB금융과 국민은행 사외이사들은 이에 대한 검토와 감사보고서 접수 등을 묵살함으로써 사태를 확산시킵니다. 더욱이 사외이사들은 고액 보수와 별개도 자신들과 관련 있는 단체가 KB금융과 국민은행으로부터 수억원의 후원금을 받게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막장 이사회’였습니다.
#KB사태 이후 금융당국은 잠시 사외이사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쪽으로 갔습니다. 그러다 일부 금융지주 회장들의 ‘셀프 연임’ ‘참호구축’ 등의 논란이 빚어지자 다시 사외이사들의 권한과 독립성은 강화하고 CEO의 힘은 빼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 최정점이 최근 이복현 금감원장이 발표한 ‘지배구조 모범관행’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금융지주 CEO의 연임 관행이나 제왕적 리더십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만들겠다는 의지입니다. 이를 위해 부회장제를 폐지하고 외부 인사에게도 회장이 될 수 있는 기회를 공정하게 주도록 했습니다. 은행장 선임시 금융지주 회장 마음대로 지명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지배구조 모범 관행’의 원칙들은 CEO와 내부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도록 사외이사들의 권한을 최대한 강화한 것으로 요약됩니다.
이제 유사 이래 최고의 권한을 갖는 금융지주 이사회와 사외이사들이 활동할 토대가 마련됐지만 벌써부터 우려가 나옵니다. 단순히 KB금융의 ‘막장 이사회’나 포스코홀딩스의 ‘호화 이사회’ 정도가 아닙니다. 외부의 힘을 등에 업은 사람이 회장으로 영입되고, 과거 우리금융에서처럼 회장과 은행장이 원수처럼 갈등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회장과 은행장을 지지하는 권력이 서로 다르면 두 사람의 충돌은 필연입니다.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은 지난해 9월 후임으로 양종희 회장을 선임한 뒤 퇴임 전 가진 마지막 기자간담회에서 지배구조와 관련해 아주 중요한 말을 했습니다. “지배구조에 정답은 없다. 획일적 기준 대신 후임 CEO를 제대로 키우는 게 중요하다. 재임 기간 중 지속 가능한 경영성과를 내는 것 다음으로 좋은 CEO가 나와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 역점을 뒀다. 지배구조가 중요한 것은 회사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범적인 지배구조의 요소로는 독립성 전문성 다양성이다. 내부에서 CEO 후보를 발굴하고 육성하며 이들이 사외이사들의 눈에 들도록 하는 것은 현직 CEO의 책무지만 최종 선택은 사외이사들이 하는 것이다.”
소유 분산 기업의 이사회와 지배구조에 관한 정답은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이 말한 바로 이것입니다. 더 붙일 것도 뺄 것도 없습니다. 금융당국은 그가 내부 출신 양종희 회장을 후임자로 골랐다고 못마땅해 했지만 소유분산 기업의 이사회와 지배구조에 관한 한 윤종규 전 회장 만큼 고민하고 실행에 옮긴 사람은 아직 없습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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