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l/PE

'오너일가 백기사' 구원등판 라데팡스…재벌들은 왜 휘둘리는가?

Numbers_ 2024. 3. 6. 11:24

▼기사원문 바로가기

 

'오너일가 백기사' 구원등판 라데팡스…재벌들은 왜 휘둘리는가?

최근 증권가를 달군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한 복판에는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La Défense Partners)'가 있다. 라데팡스는 2021년 KCGI 출신 김남규 대표가 세운 곳으로 오너일

www.numbers.co.kr

 

 

최근 증권가를 달군 한미약품그룹 경영권 분쟁의 한 복판에는 신생 사모펀드 운용사 '라데팡스파트너스(La Défense Partners)'가 있다. 

라데팡스는 2021년 KCGI 출신 김남규 대표가 세운 곳으로 오너일가의 자문업을 주력 사업으로 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기업간 경영권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등 잡음도 적지 않다.

 

상속세 문제 해결 나섰지만…경영권 분쟁 불씨

 

5일 업계에 따르면 라데팡스는 OCI그룹 지주사 OCI홀딩스가 한미약품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 27.03%를 7703억원에 매수하고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이 OCI홀딩스 지분 10.40%를 취득하는 지분 맞교환 계약을 주선했다. 

다만 한미약품 창업주 고(故) 임성기 회장의 장남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과 차남 임종훈 한미정밀화학 대표가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룹 통합이 완결될지 미지수다.

당초 라데팡스는 상속세로 속을 앓던 한미약품그룹 오너가로부터 한미사미언스 지분 11.8%가량을 약 3200억원에 인수하려 했다. 하지만 출자를 결정했던 새마을금고가 유동성 위기로 투자를 철회하면서 자금 조달 계획이 틀어졌다.

계획이 무산되면서 라데팡스는 IMM인베스트먼트, KDB인베스트먼트 등과 함께 지분을 공동 인수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투자 규모, 조건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무산됐다.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통합 작업도 라데팡스가 제안했다. 라데팡스는 올 초 입장문을 통해 "선진 지배구조 완성을 위해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의 통합을 주도했다"며 "이번 통합이 참조할 만한 모범이 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그룹 통합 작업에서 임종윤·종훈 형제가 배제되면서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으로 번졌다. 임종윤 사장은 OCI그룹과 한미약품그룹 통합을 저지하기 위해 신주발행에 대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지난달 21일 입장문을 통해 "송영숙 회장 단독으로 한미약품 그룹의 전문성과 무관한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요식적 결의로 강행된 OCI홀딩스와의 밀약을 을사늑약에 비유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한미약품그룹의 상속세 문제가 경영권 분쟁으로 번지면서 이번 거래의 승자는 자문 수수료를 챙긴 라데팡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라데팡스의 한미약품그룹과 OCI그룹 통합 작업이 '이종 결합'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동시에 일부에서는 라데팡스의 자문사로서 역량에 의문을 제기한다. 오너일가의 상속세 문제를 해결하려다 지분 매입 계획이 틀어진 가운데 이후 자문 과정에서 경영권 분쟁이 불거지면서 일이 커진데 따른 것이다.

라데팡스의 이번 한미약품그룹 상속세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도 뒷이야기가 무성하지만 과거에도 아워홈 경영권 분쟁을 명확하게 매듭짓지 못했다.

2016년부터 불거진 구지은 아워홈 부회장과 구본성 전 아워홈 부회장간 남매의 난은 지난 2022년 구본성 전 부회장이 장녀 구미현 씨와 손잡고 보유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다시 불이 붙었다. 앞서 2021년 구본성 전 부회장은 보복운전으로 실형을 선고받고 부회장직에서 해임된 상황이었다. 당시 지분은 구본성 부회장이 38.56%, 구미현 씨가 19.28%, 차녀인 구명진 씨가 19.60%, 삼녀인 구지은 부회장이 20.67%를 보유하고 있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의 지분을 합치면 57.84%로 절반이 넘었다. 당시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 자문사가 라데팡스였다. 라데팡스는 구미현 씨에게 동반 매각을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분 매각에 동참하는 듯했던 구미현 씨가 2022년 열린 임시 주총에서 구본성 전 부회장과 반대되는 입장에 섰고 결국 동반 지분 매각도 무산됐다. 

당시 라데팡스는 "구본성 전 부회장의 경영 복귀 시도는 추측에 불과하다"고 말했지만, 구본성 전 부회장이 임시 주총에 올린 안건은 구지은 부회장이 선임한 이사 21명을 해임하고 48명을 신규 선임하는 내용이어서 '추측에 불과하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졌다.

구미현 씨가 돌아서면서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 건도 흐지부지됐다. 라데팡스와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 계약도 현재 종료된 것으로 파악됐다.


그레이스홀딩스 시절 '한진칼 딜' 악연


신생인 라데팡스가 국내 재계 오너일가의 경영권 분쟁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라데팡스는 KCGI 출신인 김남규 대표가 이끌고 있다. KCGI는 국내 대표적인 행동주의펀드다. KCGI가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인 것은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주도하면서다.

당시 KCGI는 '땅콩 회항'으로 대한항공 기업 이미지를 무너뜨린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반도건설과 함께 3자연합을 꾸리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의 분쟁을 주도했다. 당시 3자연합이 산업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한진칼의 제3자 배정 신주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지만, 법원이 기각하면서 결국 한진칼의 승리로 끝났다.

다만 KCGI는 그 과정에서 매입한 한진칼 지분을 호반건설에 매각하면서 두 배 가까운 차익을 남겼다. 2022년 2월 호반건설은 KCGI가 보유한 한진칼 주식 940만주를 5640억원에 취득했다. 주당 6만원 수준이다. 앞서 KCGI가 특수목적회사(SPC) 그레이스홀딩스를 통해 2018년 11월 한진칼 주식 238만3728주를 주당 2만4557원에 추가 매입한 것을 감안하면 호반건설에 두 배 가깝게 매각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그레이스홀딩스 대표가 현 라데팡스 대표인 김남규 씨다. 김 대표가 라데팡스를 설립한 이후 오너일가의 자문업을 주력 사업으로 삼을 수 있는 것도 KCGI 시절 쌓은 신뢰관계가 바탕이 된 것으로 관측된다.

경영권 분쟁은 증시에 호재로 작용하는 것으로 적지 않다. 경영권 분쟁은 결국 지분 싸움이어서 상대보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 등 대량의 주식 매입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에 사모펀드운용사들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거나 발생시켜 차익을 남기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한 사모펀드운용사들이 단기 수익만 추구할 경우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거나 해당 회사의 손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라데팡스 같은 행동주의펀드의 입김은 국내 자본시장 내에서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를 이끈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3~4세 경영 시대를 맞으면서 상속세 부담으로 지분이 잘게 흩어졌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주식을 대량 매입하는 행동주의펀드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다. 

라데팡스 측은 "국내 기업들은 상속 문제 해결을 위해 기업가치를 일부러 낮추고 상속세 납부로 오너의 지분이 감소하면서 지배구조가 취약해지고 기업 경쟁력도 약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반면 글로벌 선진 기업들은 과거 대주주 가족들만의 밀실 경영을 혁파고 대주주와 독립된 이사회간 견제와 균형을 바탕으로 한 기업의 발전과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한새 sae@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