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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또 ‘대한항공 조력자’ 자처하나

Numbers_ 2024. 3. 2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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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또 ‘대한항공 조력자’ 자처하나

KDB산업은행은 과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도록 조원태 한진칼 회장 측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당시 산업은행은 8000억원의 혈세로 재벌가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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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은 과거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할 수 있도록 조원태 한진칼 회장 측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해 왔다. 당시 산업은행은 8000억원의 혈세로 재벌가에 특혜를 줬다는 비판과 함께 국책은행으로서 기업 경영권에 개입해 중립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불명예를 안았다.

아시아나항공 여객기 (사진=아시아나항공)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선결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화물기사업부 매각을 추진 중인 가운데 산업은행의 중립성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정책당국인 산업은행은 매각 대금을 중시할 대한항공과 달리 경영지속성 등의 정성적 평가가 고려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특명을 안고 있다. 시장에서는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의 의중대로 거래가 진행되도록 수수방관할지 주목하고 있다.

22일 투자은행(IB) 및 항공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 적격인수후보자들은 다음달 예정된 본입찰에서 인수희망 조건을 제출할 것을 안내받았다. 적격인수후보자들 본입찰에서 구주·신주 비율과 가격 등을 제시해 매각자 측에 제출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의 매각 작업이 분할 뒤 구주 매입과 신주 발행 방식으로 진행되는 셈이다. 인수 후보자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의 전체 지분 구주를 사들이고 증자 후 신주를 발행하는 식이다. 구주를 팔아 나온 대금은 아시아나항공으로 들어가고 신주 자금은 1조원가량의 부채가 있는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데 쓰이게 될 전망이다.

적격인수후보자들은 본입찰 전까지 구주를 얼마에 사들일지, 신주 발행에 얼마를 써야할지 등을 결정해야 한다. 구주와 신주에 어떤 비율로 가격을 써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은 부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자의 입장에 따라 인수전의 향방이 크게 달라지게 되는 셈이다.

실질적 매각 주체인 대한항공은 구주의 가치와 신주 대비 구주의 비중을 높게 받기를 희망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한항공은 화물기사업부 매각대금으로 아시아나항공의 재무 안정성 개선 등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대한항공이 희망하는대로 인수 후보자들로부터 신주 대비 구주 가치를 높은 비중으로 받을 경우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의 경영 지속성을 장담할 수 없다. 구주 비중을 높일 경우 인수 뒤 회사 경영 정상화의 마중물이 되는 투자금인 신주의 비중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책당국인 산업은행과 국토교통부 입장에서는 잠재적 인수 후보자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 인수 후에도 지속 가능한 경영 상황을 유지할 수 있게 신주의 비중을 크게 고려해야 할 필요가 있는 셈이다. 더욱이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를 매각한 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기업으로 만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해야 한다. 매각 후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가 경영을 지속하지 못해 이에 따른 책임 공방이 벌어진다면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황용식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사업 추진 의지 및 장기적인 운영 능력, 사업 전문성 등의 정성적인 요소를 중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산업은행은 대한항공이 EC로부터 승인을 받을 수 있게 적합한 인수자가 선정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 기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인수 후보자들 역시 구주 매입 대금을 최대한 낮추기를 원하고 있다. 새로 발행된 신주 인수 대금을 아시아나항공의 화물기사업부를 정상화하는 데 써야 경영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수 후보자들 입장에선 신주 인수 대금 비율을 높이고 구주 인수 대금을 낮추는 게 가장 유리한 선택지다.

인수에 나서는 원매자들은 정량 및 정성평가에서 경쟁 후보를 압도해야 할 셈법을 두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구주와 신주의 비율 등이 주요 평가 사안이 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실질적 매각 주체이자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의 이번 거래에 있어 역할에 눈길이 모인다.

산업은행은 아시아나항공 화물기사업부 매각 과정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거래의 영역은 산업은행의 관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번 거래의 주체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으로 산업은행이 별도로 관여하지 않고 있다”며 “산업은행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 성사를 돕는 역할”이라고 말했다.


남지연 기자 nj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