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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판결]⑧ 안진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법원 "평가 결과 조작, 사실 아냐"

Numbers_ 2024. 6. 2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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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1심 판결]⑧ 안진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법원 "평가 결과 조작, 사실 아냐"

자본시장 사건파일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1대0.35의 비율) 당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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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사건파일 

/그래픽=박선우 기자, 자료=게티이미지뱅크·뉴스1


지난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1대0.35의 비율) 당시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은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 사건의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안진은 삼성물산의 합병 실무를 맡았다.

통상 상장사 간 합병 비율은 기준 주가를 토대로 자본시장법령에 따라 산정되기 때문에 산정된 비율의 적정성 검토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도 "실제로 주권상장법인 간 합병의 경우 합병 비율 검토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실무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삼성 측이 합병 발표 전 삼성물산 주가가 저평가 돼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고, 양사의 기업 가치를 평가한 결과가 주가 기준 합병 비율에 부합한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안진 측에 합병 비율 적정성 검토를 의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허위로 합병 비율이 적정하다는 보고서를 마련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삼성 측이 안진 측에 먼저 검토 보고서를 의뢰한 것도, 평가 결과를 조작한 것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알아봤다.  

 

안진 측이 먼저 '합병 비율 검토 업무' 제안


 2015년 5월 삼성물산 합병 태스크포스(TF)와 안진 측의 첫 회의가 있었다. 재판부는 당시 안진 측이 삼성 측에 합병 비율 검토 업무를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와 관련해 안진 관계자는 법정에서 '보고서 작성 업무는 안진 측의 제안으로 진행됐다'고 진술했고, 또 다른 관계자 일부도 '(제안을 받은 삼성 관계자가) 상장법인 간 합병인데 이런 업무가 꼭 필요하냐고 반문했다'고 밝혔다. 

검찰 조사 과정에서 회계사 일부는 합병 TF 관계자 A씨가 회의 도중 언성을 높이며 주가 기준에 맞춘 합병 비율 보고서 작성을 요구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법정에서 이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재판부는 당시 A씨가 화낸 이유를 안진 측이 보고서 작성 일정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판결문에 따르면, 회계사들은 '주가 수준에 맞춰오라는 얘기까지는 하지 않은 것 같고, 왜 회계법인이 이슈 얘기만 하느냐, 회계법인이 검토한 의견을 갖고 오라며 질책했을 뿐이다', '삼성에서 누가 시켰다거나 시켜서 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때까지 보고서가 안 나와서 굉장히 난처한 상황이었다'는 등의 진술을 했다. 

그러자 검찰은 "검찰 조사에서 안진 회계사들이 일부 착각에 의해 한 진술이 있더라도 기억의 한계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며 "사건 발생 시기에 보다 근접한 검찰 조사 당시의 기억이 법정 진술 당시의 기억보다 더 정확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안진 회계사들 중 가장 먼저 검찰 조사를 받은 인물의 첫 검찰 조사가 합병 이후 3년 이상이 지나 이뤄졌고, 회계사들이 검찰에서 충분히 자료를 제시받고 기억을 정확히 환기해 진술했는지 여부도 불분명하다"며 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 측이 삼정 자료 전달했지만...안진, 참고 안 해


보고서와 관련된 또 다른 쟁점은 안진 측이 보고서 초안에 삼정회계법인의 평가 결과를 반영했는지 여부였다. 

검찰은 삼성증권이 안진 측에 삼성물산의 가치를 축소한 삼정 측의 조작 자료를 제공하면서 삼성물산 가치의 축소를 요청했고, 안진 측이 초안 작성 과정에서 삼정 측 논리에 따라 삼성물산의 가치를 낮추는 방식으로 평가 결과를 조작했다고 주장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에 대해 재판부는 삼성증권 관계자가 안진 관계자에게 삼정 측의 '가치평가 요약' 자료를 전달한 건 맞지만, 안진 측은 자체 평가 방안에 따라 초안을 작성했다고 봤다.

우선 삼성증권이 전달했던 자료는 삼정 측이 그때까지 평가한 부문별 수치값만 작성된 간단한 표에 불과했고, 부문별 최소·중간·최댓값만 있었다. 

안진 회계사들이 위 자료를 초안에 반영했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회계사들은 '삼정 방식으로 진행하려고 했어도 세부적인 가정 등을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정확하게 진행하기는 어려웠다'는 등의 취지로 진술했다. 실제로도 두 회계법인의 자료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다만 안진 측은 초안을 합병 TF에 전달한 후 사업부별 평가 금액을 다시 검토하면서 세부적인 조정을 했고, 그 과정에서 삼정 측의 부문별 평갓값과 비교한 적은 있었다.  

/자료=이 사건 1심 판결문


이에 대해 안진 관계자는 법정에서 '결괏값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면 어느 한쪽이 과다하게 평가했다는 등의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빠트린 것이 없나 점검하는 차원에서 삼정 측 결괏값을 참고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더불어 재판부는 "안진 보고서 최종본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평가 항목과 삼정 보고서의 해당 평가 항목을 비교해 보면 영업 가치 등 각 항목에서 수천억원의 차이가 발생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B씨의 재검토 요구로 안진 측이 평가 결과를 조작했다는 검찰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검찰은 안진 소속 C씨가 법정에서 'B씨가 한번 더 합병 비율이 나오는지 검토를 해달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을 근거로 위와 같이 주장했다.

하지만 C씨는 '제 기억에는 합병 비율 맞추라는 뜻은 아니고 B씨는 한번 해보라는 정도의 의견이었지 저한테 강요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C씨와 보고서 초안 작업을 했던 안진 관계자도 법정에서 초안 작성 무렵 '삼성에서 누가 시켰다, 시켜서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재판부는 "안진 측은 시장 주가를 염두에 두고 여러 평가방법론을 검토 및 적용해 평가 업무를 수행했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안진 측이 평가 전반에 걸쳐 가치 평가 원칙에 반해 보고서를 조작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9편>으로 이어집니다.

박선우 기자 closely@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