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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제약사인 한미약품그룹이 고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 사후 비제약 전문가에게 휘둘리고 있다. 남편 사후 경영에 참여한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송 회장과 손잡은 이우현 OCI 회장, 한미약품그룹 주요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회장 모두 비제약 출신이면서 한미약품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준다. 송 회장이 영입한 배경태 부회장과 삼성 출신 임원들 또한 비제약 출신이면서 한미약품그룹 경영에 관여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은 지난 2020년 임성기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한 이후 한미약품그룹 경영에 나섰다. 이전까지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미사진미술관장 등 제약업계와 무관한 활동을 해왔던 송 회장은 2020년 임시주주총회에서 딸인 임주현 한미약품 글로벌전략·HRD담당 부사장과 함께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송 회장과 손잡은 이우현 OCI 회장 또한 제약업계와 무관한 인물이다. OCI는 2022년 부광약품 최대주주로 올라선 바 있지만, 경영에 관여하진 않았다. 제약·바이오 분야 진출을 넘봤던 OCI는 제약사 경영에 직접 뛰어드는 방식 대신, 한미약품과 공동경영 체제를 구성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만약 이우현 회장의 계획대로 공동경영 체제가 완성됐다면 한미약품그룹은 비제약 출신 오너 등극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공동경영 체제 시도에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발하면서 형제 측은 미국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대규모 투자유치 협상을 진행했다. 형제는 KKR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아 오너일가의 상속세를 해결하고 신약 연구·개발(R&D)에 사용할 자금을 마련할 예정이었다. 동시에 한미약품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을 보장받아 제약바이오 분야 국부유출을 막는 구조였다.
창업주 일가의 경영권 보장은 한미약품그룹의 정체성을 이어간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제약업계 출신의 형제가 경영에 참여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형제는 고 임 회장에게 경영수업을 받으면서 제약업계 관련 전문성을 키운 바 있다.
주주총회 당시 한미사이언스 지분 12.15%를 보유하고 있던 신동국 한양정밀회장도 제약업계와 무관한 인물이다. 고 임 회장의 고향 후배인 신 회장은 고 임 회장의 권유로 2010년 10월 한미사이언스 주식 113만1692주를 매입했다. 투자 목적이었고, 당시만해도 신 회장은 한미약품그룹의 경영에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신 회장은 송 회장과 형제 측의 경영권 갈등 속에서 KKR과 진행하는 거래 구조에 공감해 형제 측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형제 측은 주위의 예상을 깨고 그룹 경영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OCI와 한미약품그룹간 통합안에 반대하며 형제 측 손을 들어줬던 신 회장은 주총 승리와 이후 이어진 KKR과의 투자유치 협상 과정에서 갑작스럽게 마음을 바꿨다. 결국 KKR과의 단독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신 회장은 송 회장과 송 회장 딸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과 7월초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했다. 비제약 출신 인물이 한미약품그룹의 지배구조와 미래 사업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 인물이 된 셈이다.
비제약 출신 대주주를 보좌하는 임원진 또한 비제약 출신들로 채워졌다. 송 회장은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 'L사'의 소개로 삼성전자 출신인 배경태 부회장을 영입한 적이 있다. 2022년 7월 한미사이언스에 합류한 배 부회장은 전략기획실장으로 임명돼 한미약품그룹의 경영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배 부회장은 전략기획실장 취임 이후 삼성 출신 인물들을 전략기획실로 영입했다. 2023년 1월 한미사이언스에 합류한 김성훈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 이사는 삼성전자에서 경영관리를 담당한 바 있다. 같은 시기 합류한 양경택 한미사이언스 경영관리본부 전무이사도 삼성SDS 아메리카 북미·중남미 지원총괄(COO·CFO)을 담당했던 재무통이다. 배 부회장과 김 이사, 양 전무 모두 제약업종과 무관했던 인물들이다.
반면 한미약품 성장의 주역이자 제약업계 잔뼈가 굵었던 올드 멤버들은 한미약품그룹을 떠났다.
고 임 회장 사후에도 우종수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와 권세창 한미약품 대표이사, 이관순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등 3인의 경영진이 기존 경영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2022년 말부터 순차적으로 그룹을 떠나기 시작했다. 배 부회장이 한미사이언스에 합류한 이후 한미사이언스 임원진은 오너가와 사외이사를 제외하고 전부 교체됐다. 한미약품 또한 임원의 3분의 1이 한미약품을 떠났다.
한미약품그룹 고위 관계자는 "5년 동안 회사를 유지하라는 선대 회장의 유언을 무시한 회사 경영, 그리고 외부 인력(비제약)의 의존도 높은 인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대 회장의 유지와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그룹 경영권을 통째 매각하려 하는데, 선대 회장이 이 사실을 안다면 한탄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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