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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열리는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부터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이사 선임이 가능해졌다. 이날부로 '집중투표제는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정관에서 삭제됐기 때문이다. 이번 임시 주총에서 최대주주 영풍이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발을 묶은 것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전례없는 주총"…주주들 5시간 넘게 대기
23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그랜드 하얏트 서울에서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가 열렸다. 당초 9시에 시작하기로 한 주총은 양 측에 중복으로 접수된 위임장이 일부 발견돼 주주에게 확인하는 절차가 늦어져 점심 이후 개회했다. 중복된 위임장은 4000여장 정도로 미미해 이를 제외해도 결과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이는 1주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양측이 팽팽하게 맞섰다는 뜻이다.
일부 주주가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과 관련해 항의하자 주총 진행을 맡은 관계자는 "중복 위임장 개수가 생각보다 많이 발견됐고 주주에게 개별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길어져 죄송하다"며 거듭 사과했다.
오후 2시가 넘어도 확인이 덜 돼 결국 출석 주식 수 보고없이 개회가 선언되는 전례없는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절차상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지적이 들어오자 휴정했다 재차 시작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결국 오후 3시께 출석 주식 수가 확인됐다.
영풍 발 묶기 전략 적중
이날 주총 맹점은 고려아연이 영풍의 의결권 행사를 막을 수 있느냐 여부였다. 고려아연의 호주 법인 선메탈코퍼레이션(SMC)는 22일 영풍 지분 10.3%를 취득했다. 지분 거래는 장외에서 이뤄졌으며 영풍정밀을 비롯해 유중근 씨,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최창근 고려아연 명예회장, 최정운 씨 등 최 씨 일가가 영풍 지분 일부를 SMC에 매각했다. 이번 블록딜은 23일 임시 주총을 앞두고 긴박하게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고려아연-선메탈홀딩스(SMH)-SMC'로 이어지는 지분 고리로 SMC는 고려아연의 손자회사이며 영풍 입장에선 증손자회사에 해당한다. 상법에선 손자회사, 증손자회사를 모두 자회사로 칭하며 모회사와 자회사가 상호 10% 이상 지분을 보유하면 서로 각 회사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돼 있다. 이를 '상호주 제한'이라 한다.
영풍이 고려아연 지분을 25% 보유하고 있고 SMC가 역으로 영풍의 지분 10%를 보유한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해 영풍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발을 묶으려 한 것이다.
영풍그룹은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가 금지 돼 있다. 하지만 이런 상호출자 제한은 국내 법인 사이 거래만 해당하기 때문에 호주 회사인 SMC가 영풍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MBK 측은 "상호주 규제는 국내 법인 '주식 회사'간 거래시에만 의결권이 제한된다"며 SMC가 호주 법인인 것을 꼬집었다. 유한회사인 SMC의 지분 취득으로 상호주 의결권 제한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그러나 이날 출석 주식 수 가운데 고려아연이 보유한 자사주와 경원문화재단, 영풍 등이 보유한 물량이 행사할 수 없는 의결권으로 공지됐다. 영풍은 주총에서 29%에 해당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고려아연의 최대주주다.
영풍 측은 시가 기준으로 총 4조원 규모의 지분을 갖고도 힘을 못 쓰자 주총을 미뤄달라며 항의했다. 영풍 측 대리인은 "영풍의 의결권은 모든 안건을 좌우할 수 있는 지위에 있다"며 "주총 바로 직전 거래로 인해 아무런 조치도 못하는 상황이라 황당하다"며 불만을 표했다.
영풍 측은 주총 연기를 요청하고 일부 주주는 주총 속개를 요구하며 장내가 한번 더 소란해졌다.
MBK·영풍 연합은 상호주 제한으로 의결권을 박탈당한 것과 관련해 법적 조치를 취할 것으로 관측돼 분쟁의 불씨를남겼다.
집중투표제 주총 문턱 넘었다
영풍이 의결권 행사를 못하게 되자 집중투표제 도입도 급물살을 탔다. 최대주주를 무력화하는 시도에 영풍 측을 지지한 주주 가운데 동요하는 움직임이 있었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법원이 근거 규정의 부족으로 집중투표제 방법을 통한 이사 선임을 금지하면서 이날 임시 주총에선 이사 선임은 기존처럼 단순 투표로 하되,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문구를 정관에서 삭제하는 '정관 변경 안'은 그대로 진행됐다.
집중투표제는 1주당 선임하고자 하는 이사의 수만큼의 의결권을 부여된다. 총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주총에서 60주를 보유한 A가 이사 3명을, 40주를 보유한 2대 주주가 1명을 각각 추천했다 가정하면, 단순 투표시 A가 추천한 이사 3명에 각 60주씩 표를 주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반대로 집중투표제는 주식 수에 선임하는 이사 수 3을 곱한 만큼 의결권이 생긴다. A는 180주, B는 120주를 부여받는다. B는 이사 1명에게 120주를 몰아주면 되지만 A는 180주를 균등하게 나눠 60주씩 3명에게 표를 주면 이사 선임이 어려워진다.
이런 속성때문에 의결권이 MBK·영풍 보다 부족한 최 회장 일가가 집중투표제를 '회심의 카드'로 내민 것이다.
집중투표제도 도입에 대한 의장의 설명과 안건을 제안한 유미개발의 찬성 독려를 끝으로 표결에 들어갔다. 감표 위원에는 유미개발, MBK파트너스 측이 세운 대리인이 선정됐다.
집중투표제 도입을 위한 정관 변경 건은 '3% 룰'이 적용되는 특별결의 사항이다.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3% 룰을 적용하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주식 수를 제외한 출석 주주의 의결권은 총 901만6432주다. 이 가운데 총 689만6228주를 보유한 주주가 찬성했다. 이는 총 참석 주식수의 76.4%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특별결의는 출석 주주의 의결권 3분의 2 이상의 동의만 얻으면 통과시킬 수 있는데 이 기준을 넘어선 찬성표를 얻어냈다. 반대한 의결권 주식 수는 206만7456주(출석 기준 22.9%)로 집계됐다.
현재 이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았다는 점을 미뤄볼 때 최 회장 측은 3월 정기 주총에서 집중투표제 방식으로 재선임 또는 신규 선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임시 주총 직전 이사회 구성원 11명 가운데 절반인 5명이 3월 임기의 마침표를 찍는다. 임기가 종료되는 이사 5명은 △사내이사 박기덕 고려아연 사장 △기타비상무이사 최내현 켐코 대표 △사외이사 김보영·권순범·서대원 이사 등이다.
김수정 기자 crystal7@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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