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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대통령이 바뀔 때 금융업에 생기는 일

Numbers 2025. 2. 5.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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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면칼럼] 대통령이 바뀔 때 금융업에 생기는 일

농협 강호동회장 ‘정권교체’ 베팅 이찬우 선택야당대표-은행장 회동 ‘상생’·금리인하 예고편새정부 초기 강도높은 압박, 인사개입 가능성도금융은 규제산업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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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 강호동회장 ‘정권교체’ 베팅 이찬우 선택
야당대표-은행장 회동 ‘상생’·금리인하 예고편
새정부 초기 강도높은 압박, 인사개입 가능성도

금융은 규제산업입니다. 게다가 대한민국 금융산업은 내수산업입니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글로벌 비중을 30~40%까지 늘리겠다는 목표지만 아직은 10%대에 불과합니다. 규제산업일수록, 국내 비중이 클수록 외부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금융당국은 물론이고 특히 정치권 변화에 민감합니다. 우리 금융산업이 ‘관치금융’, ‘정치금융’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불법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정권 유지든 정권 교체든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올 상반기 중으로는 마무리될 전망입니다. 당연히 금융권에도 큰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새 정부 탄생을 전제로 변화는 이미 시작됐습니다.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 심사를 마치고 오늘(3일) 취임하는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인사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습니다. 이찬우 신임 회장은 NH농협금융 회장으로 선임되기 한 달 전인 지난 12월 1일 수협은행 사외이사로 선임됐습니다. 친정인 기획재정부가 그를 수협은행 사외이사로 추천했습니다. 

그런데 이틀 뒤 비상계엄 사태가 터지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한 달도 못 채우고 수협은행 사외이사에서 농협금융지주 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비상계엄과 탄핵 사태가 없었다면 이찬우 회장은 수협은행 사외이사로서 공직을 마무리했을 것입니다. 초유의 국가 위기 상황에서도 이찬우 농협금융 신임 회장은 2024년 최고의 관운을 타고 난 사람입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탄핵 사태로 가장 고민이 많았던 사람은 농협금융지주 회장 인사권을 쥐고 있는 강호동 농협중앙회 회장이었습니다. 금융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강 회장은 이찬우 후보 외에도 김용범 전 기재부 1차관, 손병두 전 거래소 이사장 등을 놓고 고심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용범 전 차관은 호남 출신으로 문재인 정부 시절 금융위 부위원장과 기재부 차관을 역임했고, 지금은 블록체인 관련 리서치 회사 대표로 재직 중입니다. 대우도 좋아 이직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손병두 전 이사장은 서울 출생으로 역시 문재인 정부에서 금융위 부위원장과 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고 지금은 핀테크 기업 토스의 금융경영연구소 대표로 일합니다. 경제관료들 사이에서는 정권이 바뀌면 두 사람 모두 입각할 수 있는 유력 후보군으로 꼽힙니다. 이들이 공직에서 물러난 후 로펌으로 가지 않은 것도 높은 평가를 받습니다.

이찬우 신임 회장은 부산 출신으로 이용우 전 민주당 의원의 친동생입니다. 김경수 경남 도지사 시절 경남도 경제혁신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 금감원 수석부원장을 맡았습니다. 이찬우 김용범 손병두 세 사람 모두 민주당과 관계가 깊은 전직 관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농협중앙회 강호동 회장은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에 베팅해 농협금융 회장 인사를 단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관료로서의 급을 따지자면 기재부 차관 출신인 김용범 대표나 거래소 이사장 출신의 손병두 대표에 비해 금감원 수석부원장 출신인 이찬우 회장은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그럼에도 강호동 회장이 그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경남 합천 출신의 강 회장과 부산 태생인 이찬우 회장이 PK(부산·경남)로 동향인 데다 온화한 스타일이고, 이석준 전임 농협금융 회장과 NH투자증권 사장 인사 등에서 갈등을 겪기도 해 이래저래 함께 일하기 편한 사람을 고른 것으로 보입니다.

#탄핵 사태 이후 여론 조사를 하면 여야 정치인들 가운데 지지율이 제일 높게 나오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최근 조용병 은행연합회 회장을 비롯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은행 등 6대 은행장을 만났습니다. ‘민생경제 회복을 위한 민주당-은행권 간담회’로 명명된 이날 모임에서 이재명 대표는 상황이 어려운 만큼 소상인과 자영업자 지원방안들을 충실하게 이행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당초 은행 가산금리 인하와 이재명 대표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상생금융’ 추가 확대를 요구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조기 대선을 앞둔 정치 행보’라는 비난을 의식해서인지 의례적 얘기만 하고 갔습니다.

이날 기념 촬영한 ‘파이팅’ 사진만 봐도 행사를 주관한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을 빼고는 은행장들은 하나같이 어둡고 굳은 표정들입니다. 이재명 대표와 은행장 간담회 후 민주당은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 제고를 위한 지원방안과 제도·규제 개선 방안, 금융의 기업 지원 활성화 등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지만 금융권 입장에서는 정치인들과 엮이는 자리 자체가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차기 대선의 제일 유력 후보인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은 알려진 대로 2023년 금융사들이 벌어들인 이익의 최대 40%까지 환수하는 이른바 ‘횡재세’ 법안을 추진한 전력이 있습니다. 금융권의 반발과 부정적 여론 때문에 횡재세 법안은 흐지부지됐지만 윤석열 정부는 대신 ‘상생금융’으로 2조원,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에 대한 투자손실 보상을 빌미로 2조원 등 총 4조원을 은행권에서 강탈해가다시피 했습니다. KB 신한 하나 등 3대 금융그룹은 이 가운데 총 2조5000억원을 부담했습니다. 지난해 초 벌어진 일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인용되고 후임 대통령이 선임돼 새 정부가 출범하면 상생금융과 횡재세 논의는 다시 부활할 것입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더 그렇겠지만 국민의힘이 다시 권력을 잡아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올해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에 계엄·탄핵까지 덮쳐 풍전등화의 상황입니다. 올해와 내년 1%대 저성장이 예고된 상황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위협이 현실화하면 성장률은 더 떨어질 것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고한 대로 캐나다 멕시코 중국에 대한 보편적 관세를 4일부터 단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은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1.2%까지 낮췄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일하게 호황인 곳이 금융업, 특히 은행업입니다. 게다가 연초 주요 은행들은 실적 호조를 이유로 성과급 잔치까지 벌였습니다.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갖은 명분을 내세워 은행권을 압박할 것입니다. 상생금융이든 횡재세든 가산금리 인하든 뭐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입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6대 은행장들의 회동은 바로 이를 예고하는 신호탄일 뿐입니다.

#불법 비상계엄 선언으로 2년 반 만에 사실상 종언을 고한 윤석열 정부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의 교훈 때문인지 민간 금융사 인사에는 노골적으로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상생금융과 ELS 손실 보상 등 시장 논리와는 맞지 않는 정책 추진으로 금융업을 후퇴시켰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치적이라 할만한 ‘기업 밸류업’ 정책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비상계엄 선언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는커녕 해외 투자가들에게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다시 한번 더 각인시키고 말았습니다. 비상계엄령으로 추락한 국가 신인도를 회복하고 기업들의 주가를 제자리로 돌려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비단 윤석열 정부만이 아닙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어윤대 이팔성 강만수 김승유 등 이른바 ‘4대 천왕’을 내세워 금융계를 지배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여권의 실세 의원과 금융위 고위 당국자를 통해 금융권 인사를 쥐락펴락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인사개입은 하지 않았지만 ‘적폐 청산’을 빌미로 한 ‘채용 비리’, 금융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펀드상품 불완전 판매 관련자 문책 등으로 임기 내내 금융권을 괴롭혔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끝나고 상반기 중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면 불확실성 해소라는 측면에서는 큰 힘이 되겠지만 보수·진보 정권 불문하고 금융권은 또 한 번 시련의 시간을 맞을 것입니다. 상생금융을 빌미로 몇조 원을 내라고 요구할 수도 있고,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노골적으로 인사에 개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정권 초기에 강도가 더 강할 것입니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 말까지 힘든 시기를 각오해야 합니다. 그렇더라도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비즈니스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랍니다. 

 


박종면 발행인 myun041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