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vernance/지배구조 분석

[박종면칼럼] 김태현의 경고와 최정우의 선택

Numbers_ 2024. 1. 1. 19:20

김태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2년 9월 예금보험공사 사장에서 국민연금으로 옮겨갈 당시 관가에서는 영전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영예로운 자리지만 관의 수장으로 컴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료 사회에서 김 이사장은 실력과 추진력 글로벌 감각 등 모든 면에서 장관감으로 손색이 없다고 평가받는 인물입니다.

 

그런 김태현 이사장이 포스코 차기 회장 선임에 대해 공정하고 투명하지 못하다며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김 이사장은 “포스코홀딩스의 회장 선임도 KT처럼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야하고, 내부와 외부가 공정하게 경쟁함으로써 최적의 인사를 찾아야 주주 이익에 부합한다”고 했습니다.

 

김 이사장이 이 정도로 말했다면 최정우 회장의 3연임에 대해 ‘절대 불가’의 시그널을 보낸 것입니다. 또 KT의 사례와 내·외부 인사 간 공정 경쟁을 강조한 대목에서는 포스코 차기 회장 역시 KT 김영섭 대표처럼 포스코 출신보다 외부 인사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됩니다. 정권 차원에서 이미 낙점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포스코의 대응입니다. 특히 회장 선임을 주도하는 포스코홀딩스 이사회와 최정우 회장의 입장입니다.

 

김태현 이사장 발언 이후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심야에 입장을 밝혔습니다. “포스코홀딩스의 CEO 후보 추천위원회는 독립적으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진행하고, 외부 저명인사들로 구성된 인선자문단의 자문을 받을 것이며, 최정우 회장이 3연임을 위해 지원한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국민연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당초 계획대로 회장 선임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입니다. 이런 자신감의 배경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KT 이사회는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수석을 지낸 김대유 사외이사와 국민의힘 정부에서 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유희열 이사가 있었던 데 비해 포스코 이사회는 편향적이지 않습니다. 참여정부 출신의 김성진 사외이사가 있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던 유영숙 이사와 역시 이명박 정부에서 조달청장을 했던 권태균 이사가 있어 좌편향적이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주주 구성에서도 KT와 포스코홀딩스는 차이가 많습니다. KT는 국민연금 10.4%를 비롯 현대차(7.7%) 신한은행(5.6%) 등 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기관투자가들이 있지만 포스코홀딩스는 국민연금 6.7%를 빼면 5% 이상 과점 주주가 없습니다.

 

75.5%가 소액 주주들입니다. 이 같은 주주 구성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임 작업을 진행해 여론과 소액 주주들의 지지를 받고 정부와 국민연금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다면 회장 후보 추천위에서 뽑은 사람을 주총에서 승인받을 수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최정우 회장의 선택입니다. 최 회장은 내성적이고 언론 노출을 꺼리는 스타일로 아직 공개적으로 거취를 밝힌 게 없지만 포스코 내부에서는 3연임에 도전하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으로 모두 알고 있습니다. 포스코홀딩스는 최근 이사회 규정을 바꿔 현직 회장의 의사 표명과 상관없이 차기 회장 선임 절차를 가동하기로 했습니다. 최 회장이 거취를 밝히지 않고도 자동으로 3연임에 도전하는 길이 열렸습니다.

 

최정우 회장이 3연임을 결심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지주사 전환과 이차전지 배터리 소재산업의 호황 등에 힘입어 계열 상장사들의 시가총액 합계가 취임 당시의 30조원 수준에서 지금은 94조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미래가 암울했던 철강기업에서 이차전지 소재와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일등 공신은 단연 최 회장입니다. 게다가 최 회장이 보기에 포스코 내부에 경쟁력 있는 인물이 없다고 판단한 것도 이유인 듯합니다.

 

그러나 최정우 회장이 3연임에 성공할지는 대단히 비관적입니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연금의 압박이 가장 큰 부담이지만 포스코홀딩스 CEO 후보추천위원회의 박희재 위원장이 “최정우 회장이 3연임을 위해 지원한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일 뿐이라고 밝힌 대목도 곱씹어 봐야 합니다. 회장 추천위는 당연히 정치적 변수까지 감안해 후보를 고를 것이기 때문에 최 회장으로서는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 회장은 포스코 내부에 인물이 없다고 판단할지 몰라도 최 회장이 3연임 도전 시그널을 보내면서 대부분의 내부 후보들이 도전을 포기하는 작금의 상황을 그는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최 회장이 설령 3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유사 이래 어떤 정권보다 거칠고 그립이 셉니다. 연임해도 최 회장 본인은 물론 포스코그룹이 치러야 할 코스트가 너무 큽니다. 최정우 회장의 선택지는 안타깝지만 하나뿐입니다. 하루빨리 3연임 포기를 선언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외부에서 자질 미달의 인사가 오는 것을 막으려면 이 길 밖에 없습니다.

 

국민연금은 더 이상의 개입을 중단하는 게 정답입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을 전제로 회장 후보 추천 작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를 믿고 맡겨야 합니다. 운용자산이 1000조원을 넘고 적립금 규모 기준 세계 3위인 국민연금이 개별기업 CEO 인사나 챙기는 것은 너무 작아 보입니다.

 

최정우 포스코 회장. (사진=포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