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대 5조원 규모로 예상되는 은행권의 부실채권(NPL) 매각 물량이 올해에도 대거 쏟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으로 태영건설 워크아웃 등의 사태가 빚어지면서 대출 회수가 더욱 어려워졌다. 은행권이 각자 관리하고 있는 소상공인 코로나 대출도 연착륙이 어려워질 경우 상매각을 고려할 수 있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의 NPL 매각 규모는 지난해 3분기 859억원에서 같은해 4분기 2162억원으로 151.7% 급증했다. 이 은행은 올 1분기에도 500억원 이상의 NPL 매각을 계획하고 있다. NPL을 지속 보유할 때는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 등 건전성 지표가 나빠진다. 금융감독원도 은행들에 연체·부실채권 정리 확대를 유도하고 있다.
올해는 부동산시장에서 부실채권 문제가 더욱 표면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금융업권별 건설·부동산업 기업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지난해 3분기 말 전체 금융권(은행+비은행)의 건설·부동산업 대출 잔액은 60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인 2022년 3분기(580조8000억원)보다 4.8% 늘어난 수치이자 역대 최대 기록이다.
문제는 연체율이다. 은행권의 건설·부동산업 연체율은 0.58%, 0.15%로 지난 2015년 3분기(3.65%), 2010년 3분기(2.63%) 이후 각각 8년, 13년 만에 가장 높았다. 고정이하여신비율도 건설업 0.92%, 부동산업 0.27%로 각각 2011년 1분기(10.23%), 2010년 3분기(6.35%)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코로나19 기간 늘어난 대출의 부실 위험도 올해 은행권의 실적을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경기 회복세가 미흡한 가운데 중소기업 등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 유예가 종료되고, 고금리 상황 지속과 부동산 가격 하락 등으로 상환능력이 취약한 한계차주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9월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부실채권은 총 3조2863억원으로 지난 2021년 6월(3조3577억원) 이후 2년 6개월 만에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부실채권이 늘어나면서 연체율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분기별 연체율은 지난 2022년 6월 말 0.20%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저점을 찍은 뒤 지속 상승해 지난해 9월에는 0.39%를 찍었다. 이는 지난 2020년 3월 말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은행권이 코로나19 국면에 올렸던 특수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다. 지난해 3분기 국내 은행들의 누적 이자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8.9% 증가한 44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3분기 누적 이자이익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을 보면 △2019년 2.3% △2020년 0.7% △2021년 9.4% △2022년 20.5% △2023년 8.9%를 기록하는 등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가파르게 증가했다.
태영건설의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 개시 확정으로 충당금 적립 부담도 커졌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12월 28일 태영건설 채권단 소집을 위해 보낸 문서를 보면 5대 시중은행의 태영건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채무(우발부채 기준)는 1조963억원이다. 여기에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보증채무를 더하면 은행권의 태영건설 PF 보증채무와 신탁업자로 참여한 사업장 보증채무를 합치면 총액은 3조원대로 치솟는다.
이병윤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024년 국내은행 경영성과 전망 및 경영과제' 보고서에서 "올해는 시장금리 하락 가능성이 높아 순이자마진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급증한 대출의 부실 위험 증대 및 부도 시 손실률(LGD) 상향이 대손비용을 증가시킬 가능성이 높아 국내 은행 수익성이 다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국내 은행의 건전성은 최근 부실채권 비율 및 연체율이 상승하는 등 악화되고 있다"면서 "올해에도 완만한 경기 회복과 고금리 지속에 따른 한계차주의 증가로 나빠질 가능성이 높아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정부가 '신용사면' 정책에 나선 것도 코로나19 대출이 그만큼 상환이 안 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이날 금융위원회는 2021년 9월 1일부터 올해 1월 31일까지 발생한 2000만원 이하의 빚을 오는 5월까지 전액 상환할 경우 연체 기록을 삭제해주기로 전 금융업권과 협약을 맺었다.
동지훈 기자 jeehoon@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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