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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재매각 ‘안갯속’…넘어야 할 산은?

Numbers_ 2024. 2. 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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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재매각 ‘안갯속’…넘어야 할 산은?

하림그룹의 HMM 인수는 애초에 리스크가 컸다. 등락이 심한데다 침체기가 긴 해운선사를 자금이 부족한 하림그룹이 인수하면 국내 해운업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번 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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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림그룹의 HMM 인수는 애초에 리스크가 컸다. 등락이 심한데다 침체기가 긴 해운선사를 자금이 부족한 하림그룹이 인수하면 국내 해운업계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우려가 팽배했다. 이번 매각이 무산되면서 '새우가 고래를 삼킬' 위험은 사라졌다. 

HMM의 최대주주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어깨는 여전히 무겁다. 재매각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언제 첫 삽을 뜰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해상운송업의 불황과 영구채 전환, 그리고 업계를 설득해야 하는 문제까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채권단은 이번 매각을 진행하면서 매각의 험로를 실감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운업, 2022년 하반기에 다운사이클 진입 


해상운송업황은 장기 사이클로 불황과 호황을 거친다. 업황이 좋으면 실적이 크게 개선되면서 현금 유입이 늘지만, 침체기에는 현금이 말라 오랫동안 불황을 견딜 체력이 필수다. 업황 주기는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0년이다. 

해상운송업이 다운 사이클에 진입하면 해운사 또는 모회사는 20년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릴 수 있다. HMM이 10조원이 넘는 유보금을 보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단위 유보금은 불황을 견딜 수 있는 실탄인 셈이다. 

업계에 따르면 해상운송업의 호황기는 2021년에서 2022년까지다. HMM등 컨테이너 주력 선사들은 이 시기에 실적을 올렸다. 2021년 HMM의 매출 규모는 연결기준 약 14조원으로 전년 대비 113%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1조원에서 7조원으로 폭증했다. 2022년 매출액은 19조원, 영업이익은 10조원에 육박했다. 증가율은 각각 36%, 43%다.  

해상운송업의 업황이 악화되기 시작한 건 2022년 하반기부터다. 글로벌 주요 항만의 적체 현상이 풀리고 새로 만든 선박이 인도되면서 컨테이너선 공급이 늘었다. 또 글로벌 거시경제가 악화한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갈등 고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소비가 위축되면서 해상물동량 수요가 줄었다. 

실제 HMM은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3분기 매출 규모는 6조원 수준으로 전년 동기대비 60% 가량 빠졌다. 영업이익은 5000억원 규모로 94%나 쪼그라들었다. 

 
사모펀드 투자 주기 3~5년, 해운업과 궁합 안맞아


나이스신용평가는 이같은 불황이 중장기화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컨테이너선사의 영업실적과 재무안정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해상운송업이 불황기에 진입함에 따라 관련 기업들은 호황기에 벌어놓은 자금으로 버티기에 돌입한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HMM과 같은 해운선사는 3년에서 5년마다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를 회수하는 사모펀드(PEF) 운영사의 생리와는 다소 성격이 먼 매물로 분류된다. 지난해 예비입찰에서 국내 PEF의 이름을 찾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 측면에서 하림그룹과 컨소시엄을 이룬 사모펀드 운용사인 JKL파트너스는 애초에 궁합이 맞지 않은 인수전에 뛰어들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결국 이같은 리스크는 하림그룹의 HMM 인수를 결렬시키는 핵심 변수가 됐다. 

채권단인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는 JKL파트너스의 투자 주기에 맞추기 위해 HMM의 지분 매각 제한을 5년에서 3년으로 줄여달라는 하림그룹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글로벌 대형 사모펀드 고위 임원은 “해운업은 수십년 단위의 장기 계약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고정비가 큰 산업군에 속한다”며 “호황기일 때는 실적이 좋아 매물의 매력이 높지만 불황에 돌입하면 높은 고정비를 부담해야 한다는 리스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황을 견딜 체력을 갖춘 기업이 진출해도 운영이 쉽지 않은 분야”라며 “사모펀드의 투자 주기와 비교하면 해운업의 사이클은 상당히 긴 편이다. 섣불리 투자를 결정하기 쉽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불어난 몸값과 업계 공감대도 과제

 

HMM의 높은 몸 값도 풀어야 할 과제다. 2021년 HMM이 매물로 나올 당시 지분가치는 1조5000억원에 불과했다. 하림그룹이 제시한 HMM 인수가는 6조4000억원이다. 3년 사이 4배 넘게 올랐다. 

해상운송업 경기 둔화세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예측하기 어려운 마당에, 대기업들이 수조원의 자금을 들여 HMM을 인수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업계에서 HMM이 지금과 같은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평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여기에 매각 측이 보유한 영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HMM의 몸값은 더 오를 수 있다. 현대차나 포스코 등 체급을 갖춘 국내 대기업들이 HMM 인수전에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이 때문으로 평가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업계에서는 자금력과 해운업 비즈니스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기업에 HMM을 매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왔다. HMM 매각과 관련해 업계의 공감대와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해운업은 복잡한 생태계로 이어져 있다. 선적 의뢰→육상 운송→선적→출항→바다 운송→하역→육상 운송 등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거친다. 각 과정마다 별도의 업체들이 존재한다. HMM과 같은 대형 해운사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해운업체도 충격을 받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업계는 이른바 ‘새우가 고래를 삼키는 격’인 하림 측의 HMM 인수를 반대해왔다.  

하림그룹이 HMM을 인수할 경우 단체행동을 예고했던 노동조합은 이번 M&A가 무산된 데 대해 환영의 입장을 밝혔다.

HMM 노조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해운은 우리나라를 책임지는 중요한 기간산업이기에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관리가 필요한 산업”이라며 “ 정부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를 중심으로 국가 해운업 발전 마스터 플랜을 재수립하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bloter.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