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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씨소프트가 2023년 연간 및 4분기 실적발표에서 투자자들에게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외치는 악수(惡手)를 뒀다. 2009년 1분기 실적 IR 자료를 공개한 지 15년 만에 게임별 매출을 공개하는 그래프를 감추면서다. 연간 기준 매출은 5년 만에, 영업이익은 11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이 발단이 됐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8일 진행한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통해 신작 개발 상황이나 플랫폼 및 수익화 모델(BM), 비용 절감 계획 등을 밝혔음에도 코끼리, 즉 공개되지 않은 게임별 매출에 대한 궁금증이 뇌리에 박혔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변화경영위원회를 신설하고 가족경영을 내려놓는 등 변화를 위한 자구책을 모색하고 있지만서도,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모습에 지난 노력은 물거품이 될 뻔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1373억원…전년 대비 75% 감소
엔씨소프트는 2023년 연결기준 매출 1조7798억원, 영업이익 1373억원, 당기순이익 213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31%,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75%, 51% 줄었다. 연간 기준 영업이익의 경우 상장 첫 해인 2011년 1357억원을 제외하고 최저치며, 매출은 5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경영악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히는 모바일 게임 매출은 2023년 1조2004억원으로 전년(1조9343억원) 대비 37.9% 감소했다. 엔씨소프트의 모바일 게임 매출 비중은 전체의 67.4%다. 엔씨소프트는 2017년 6월 대표 IP(지식재산권) '리니지'의 모바일 버전 게임인 '리니지M'을 출시한 후 연 매출 1조원을 돌파하며 승승장구한 바 있다.
플랫폼별 연간 매출은 모바일 게임 1조2004억원, PC 게임 3651억원, 로열티 매출 1445억 원이다.
또 2023년 4분기 실적은 매출 4377억원, 영업이익 39억원, 당기순이익 252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0.1%, 91.9%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흑자전환했다.
'리니지'의 굴욕…게임 매출 사라진 IR 자료
주목할 만한 점은 엔씨소프트의 2023년 IR 자료다. 바로 '게임별 매출 그래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엔씨소프트는 2009년 1분기부터 IR자료를 공개하면서 15년 간 한 차례도 빠짐없이 게임별 매출액을 공개해 왔다. 2009년 리니지, 리니지2, 길드워, 아이온 등의 라인업을 보유한 PC 온라인 게임 시절부터 2017년 모바일 게임 리니지M이 나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전 2023년 3분기 IR자료까지는 모바일 게임(리니지M, 리니지2M, 블레이드 & 소울2, 리니지W)과 PC 온라인 게임(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 길드워2) 플랫폼 별 게임의 상세 매출이 공개됐다.
엔씨소프트는 회사의 중요한 기점으로 판단되는 시기에 IR 자료 디자인 또는 그래프 내용을 변경했다. 상장을 앞두고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을 채택한 2011년 1분기나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을 달성한 2014년 4분기, 글로벌 매출 다각화로 또 다시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운 2016년 4분기 등이다.
게임별 매출 그래프와 관련해서는 2015년 4분기 한 차례 큰 변화를 줬다. 게임별 매출을 쌓아 연도별 게임 매출을 기록한 기존의 세로 막대 그래프 대신, 리니지와 리니지2 등 각 게임별 분기 매출 그래프를 별도로 공개하면서다.
당시 IR 자료에 따르면 리니지와 블레이드 & 소울은 콘텐츠 개발 및 글로벌 진출로 출시 이래 최대 연 매출을 갱신한 때다. 또 모바일 게임이 라인업에 포함된 2017년 2분기부터는 모바일 게임과 PC 온라인 게임의 매출별 그래프를 게시했다.
엔씨소프트의 2023년 3분기 보고서의 누적 매출 실적에 따르면 모바일 게임 매출은 리니지M 3775억원, 리니지2M 1990억원, 리니지W 3155억원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6.5%, 38.5%, 60.3% 감소한 수치다.
이번 IR 자료에서 게임별 매출이 공개되지 않은 탓에 4분기, 혹은 연간 매출은 이보다 악화됐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2023년 연간 기준 주요 모바일 게임 매출은 리니지M 5164억원, 리니지2M 3915억원, 리니지W 9708억원이다.
같은 이유로 지난해 12월 출시된 신작 'TL(쓰론 앤 리버티)'의 성과도 공개되지 않아 '신작 효과' 여부를 알 수 없었다. 홍원식 엔씨소프트 CFO는 이번 TL의 국내 성적보다는 향후 글로벌 실적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홍 CFO는 콘퍼런스콜에서 "TL은 콘텐츠 난이도와 조작 편의성, PvE(이용자 대 환경) 콘텐츠 밸런스 등의 이슈로 초반 리텐션 지표가 기대에 못 미쳤다"며 "TL은 해외 실적을 통한 새로운 지표 창출이 굉장히 중요하다. 서구권 이용자들의 기대감이 확대되는 것을 확인했고, 올해 (서구권에)출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행하는 공시 수준에 우려"…컨콜서 질타받아
한편 이날 콘퍼런스콜에서는 엔씨소프트의 '방만 경영'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문준기 베어링자산운용 연구원은 "엔씨소프트가 (위기극복을 위해)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지만, 공시나 IR 자료를 보면 역행하는 것 같다. 국내 상장사가 밸류업을 위해 자체적으로 거버넌스(관리체계)를 개선하는 상황이지만 엔씨소프트는 그 반대인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고 말했다.
문 연구원은 먼저 이번 IR 자료부터 게임별 매출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실적이 창피하다고 해서 이를 숨기는 건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려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가 최악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120억원대 연봉과 성과급을 가져갔다"며 "내부 계산 방식이 있다고 하지만 대표이사가 100억원 이상을 가져가는 상장사는 거의 없으며 경영자 대부분이 주주로서 배당을 받아가고 있다"고 꼬집었다.
문 연구원은 또 엔씨소프트가 유동성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M&A(인수합병)나 주주환원 등 ROE(자기자본이익률)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쓰지 않는 점도 지적했다. ROE는 기업이 투자된 자본을 활용해 어느정도의 이익을 올리고 있는 지를 나타내는 이익창출 능력 지표다. 엔씨소프트는 2023년 9월 기준 은행 단기예금 등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은 1조4439억원에 달한다.
이에 홍 CFO는 "내부에서도 이런 지적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 중"이라며 "주주총회를 통해 말하겠다"고 해명했다.
그는 앞서 "어제(7일) 확인한 현금 밸런스는 1조9000억원 정도며, 현금 외에도 비핵심 자산, 부동산 등 유동화 자산이 굉장히 많다"며 "주당 가치가 증대될 수 있는 인수, 합병 또는 IP(지식재산권)를 취득하는 여러 방면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M&A와 관련해서도 "올해 투자 방향성과 관련해 실질적인 결과를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강조했다.
안신혜 기자 doubletap@bloter.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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