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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케미칼은 왜 제약사업부 매각 철회했나

Numbers 2024. 2. 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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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측부터)경기도 성남시에 위치한 SK케미칼 사옥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사진=SK케미칼)


SK케미칼이 제약사업부 매각을 철회한 이유는 실적 악화와 행동주의펀드의 개입 가능성, 아스트라제네카를 통한 안정적인 수익원 확보,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일군 사업이라는 상징적인 요소 등이 거론된다.


알짜 제약사업부 팔다간 주주 행동주의 공격 거세질 가능성


SK케미칼은 지난해 4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고 일주일 뒤인 14일 글랜우드PE에 제약사업부 매각 철회 의사를 밝혔다. 글랜우드PE 관계자는 “거의 매각 협상이 완료된 시점이었는데 SK케미칼 측에서 매각을 철회한다고 알렸다”고 설명했다. 제약사업부에 대한 밸류 측정과 가격 등은 이미 합의가 된 상황이었다는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뤄봤을 때 SK케미칼은 화학부분과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매각을 제고했을 가능성이 크다. SK케미칼이 지난 7일 밝힌 잠정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매출은 4316억원, 영업이익 64억원이다.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전년대비 9.6%, 85.7% 감소했다.

SK케미칼 4분기 실적 부진의 원인은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와 그린케미칼 사업부의 실적이 부쩍 나빠졌기 때문이다. 그린케미칼 사업부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7% 줄어든 1979억원, 영업이익은 46.3% 줄어든 179억원을 기록했다. 자회사인 SK바이오사이언스 4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35.4% 줄어든 906억원,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돼 84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SK케미칼이 보유한 사업부에서 외형과 이익이 성장한 사업부는 제약사업부가 유일하다. 제약사업부의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2.3% 증가한 1058억원, 영업이익은 23% 늘어난 80억원을 기록했다. 

부진한 실적을 받아든 SK케미칼 입장에선 섣불리 캐시카우인 제약사업부를 매각하기 어려워졌다. 알짜배기 사업부를 헐값에 매각해 SK케미칼 주주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SK케미칼은 안다자산운용 등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이 활발하다. SK케미칼이 SK바이오사이언스를 물적분할해 2021년 3월 상장하고, 이후 ​유틸리티 공급 사업부문을 떼어낸 SK멀티유틸리티까지 물적분할하는 과정에서 SK케미칼의 주가가 급락했다. 이후 안다자산운용이 SK케미칼에 대해 행동주의 투자에 나서며 주주가치 제고에 적극 나섰다. 안다자산운용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SK케미칼이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나 SK바이오사이언스 주식의 현물 배당 등을 요구한 바 있다. 

SK케미칼이 제약사업부 매각을 강행할 경우 소액주주들의 비판과 주주활동이 활발해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SK케미칼 이사회에서도 이와 같은 점을 우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업부, SK케미칼 실적 이끄는 선봉장 역할


SK케미칼 입장에서도 제약사업부 매각 철회가 나쁜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아스트라제네카와의 협업으로 인해 안정적인 매출을 기대할 수 있고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일군 사업이라는 상징적인 요소를 지켜낼 수 있다.

SK케미칼은 지난 2020년 아스트라제네카와 시다프비아(성분명 다파글리플로진/시타글립틴) 생산 계약을 맺은 바 있다. 시다프비아의 개발은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생산은 SK케미칼, 판매는 HK이노엔이 담당한다.

시다프비아는 SGLT-2 억제제 계열 국내 매출 1위 다파글리플로진 성분의 오리지널 제품 '포시가'와 DPP-4억제제 계열 국내 매출 1위 '시타글립틴(오리지널 상품명 자누비아)'의 복합제다. 포시가는 한국아스트라제네카, 자누비아는 한국MSD 제품이다.

시다프비아는 작년 6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았다. 이후 HK이노엔이 지난해 10월 출시해 매출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시다프비아 제조는 SK케미칼 청주 공장에서 이뤄진다. 품목 허가를 받은 의약품은 중대한 환경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제조소를 변경하지 않는다. SK케미칼 입장에선 꾸준한 매출을 기대할 수 있는 부분이다.

SK케미칼은 향후 시다프비아를 통해 매출을 확대할 기회도 잡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본사에서는 청주공장에서 만들어진 시다프비아를 글로벌에 공급할 계획도 갖고 있다. 글로벌 공급량 증가에 따라 청주 공장 가동률과 마진이 늘어날 수 있는 요소다. 

심지어 청주 공장은 숙련된 인력이 그대로 남아있다. SK케미칼 청주 공장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2006년 글로벌 제약사인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SK케미칼이 청주 공장을 사들였는데, 앞으로 100년 후까지도 운영 가능한 공장”이라며 “내부 직원들의 자부심도 대단하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SK그룹은 이번 매각 철회로 인해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이 일군 사업이라는 상징성도 지키게 됐다. SK케미칼 제약사업부는 최 선대회장의 '사업보국(事業報國)' 경영 철학이 녹아든 사업부다. 최 선대회장이 직접 아이템을 발굴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등 최 선대회장의 애착이 녹아 있는 사업부이기도 하다.

한편, 제약사업부 매각 철회 이유에 대해 SK케미칼은 “대내외 여러 변수와 급변하는 경영 환경 속에서 현재의 사업 포트폴리오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치영 기자 acy@bloter.net